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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그 오늘의 역사적 의미-마리아 찬가(Magnificat)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9-01-13 (일) 04:31 2개월전 150  

성탄 그 오늘의 역사적 의미 - 마리아 찬가(Magnificat)

누가복음 1:26-38, 46-56

2018년 성탄절

 

1. 여는 말

성탄, 한 아기의 거룩한 탄생이 어제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시대의 현실로써 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이유입니다. 위대한 존재의 탄생을 추모하듯 회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오늘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사건화 시킬 수 있는 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탄은 한해의 끝자락에 있지 않고 언제든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갖습니다. 교회력의 절기도 강림절부터 시작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태양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에는 옛 것과 새 것이 때로는 지나간 삶에 대한 부족감을 느껴서 이해의 남은 시간을 빨리 보내고 새해 맞기만을 바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12월의 남은 몇 날들은 이 해의 찌꺼기가 아니라 새싹을 잉태케 하는 그루터기와 같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있는 예수 탄생은 하나님의 자녀 될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리는 카이로스, 새로운 시간을 알리는 역사적이고 은총의 사건인 까닭입니다. 미국의 작가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 새의 그 한 잎 새처럼 시간의 끝에 매달려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입도록 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성탄은 이천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 정신 속에서 재현, 반복되어야 할 현재의 역사적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 주여! 이제는 여기에서 태어나소서!”라고 노래해야만 할 것입니다. 2018년 성탄절 메시지는 성탄 그 오늘의 역사적 의미 ? 마리아 찬가(Magnificat)’입니다.

 

2. 예수의 화육은 하나님의 경륜

요한복음 서사(1:1-5)에 따르면, 인간으로 태어난 예수는 말씀으로 존재했으며,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한 분으로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실은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요 그 안에 모든 사람을 비추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빛이 어두운 세상에 비치기에,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선재와 말씀으로서의 존재, 화육하여 인간으로 된 세상에서의 탄생을 말하며,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도 못하나 그를 이기지는 못했다고 밝힙니다.

마태복음은 마리아가 낳게 되는 아기 예수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이미 예언되었으며 하나님은 예수 탄생을 그의 인류 구원의 경륜 가운데 이미 작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1:21)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그가 동정녀의 몸에서 낳을 것으로, 미가는 그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되는 것까지 예언했습니다(미가5:2, 2:6). 마태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인용하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는 성탄의 기적들은 다 하나님이 구약의 예언된 말씀들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지적합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해 처음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데오빌로 황제에게 보고하려던 누가복음은 좀 더 상세히 전합니다. 마리아의 수태는 성령으로 된 것이요,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를 감싸줄 것이요.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불릴 것이다.”(1:35)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문안할 때, 성령으로 충만한 엘리사벳은 다음과 같이 마리아에게 외쳤습니다.

큰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 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받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1:42-45,개역 개정판)

엘리사벳에게서 이토록 놀라운 말씀과 축복을 받은 마리아는 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문 내용입니다.(1:47-56)

 

3. 기다림과 메시아 탄생의 역사적 진실

수백 년을 거쳐 민족의 고난을 경험해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로마제국하의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메시아 탄생을 간절히 염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 성서를 자세히 보면 이러한 기다림과 메시아 탄생에는 몇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메시아 대망이 민족 차원의 것이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메시아 탄생을 원치 않았던 부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정권에 빌붙어 자신들의 안락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소위 가진 자, 기득권층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당시 이스라엘 왕 헤롯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의 자리를 염려한 나머지 베들레헴 근처의 두 살 아래 어린 아이들 모두 다 죽였습니다.(2:15) 예나 지금이나 메시아를 기다리고 구원자를 바라는 사람들은 가난하며 억눌리고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질 것 다 가지고 부족한 것 모르고 자기 한계를 경험한 적이 없는 자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것입니다. 자신의 안정, 권위, 소유를 흔들어 놓는 위험한 존재일 뿐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보다 앞서려고 안달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하나님 신앙은 희미해지고 돈(물질)에 대한 신뢰만을 가슴에 가득 채우고 있는 시점에서, 네 것을 포기하라고, 너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씀하시며, 가난한 자, 낮은 자, 고통 받는 자를 위해 오신 메시아가 혹시 우리에게도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 기대에도 불구하고 메시아 오심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며 매일 그 뜻을 묵상하고 그 징조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어두운 시대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탄생 시점에 이르러 유일하게 메시아 비밀을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려고 추구하던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동방이라 함은 아라비아, 바벨론 또는 바사(=페르시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동방에서 온 방문자, 동방박사들의 방문기사는 메시아 탄생이 범세계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방문자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많은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드립니다. 유사한 이야기가 모세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 유대 전통 가운데 나옵니다.(2:1-10참조)

동방박사란 요즘 말로는 학자들, 특히 철학가, 신학자를 일컫겠지요. 본래 신학자란 위의 것, 하늘의 징조와 변화, 시대의 의미를 예민하게 듣기 위하여 명상하며 연구하는 존재입니다. 시대 변화를 무감각하게 느끼는 사람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활동무대는 인간이 숨 쉬고 먹고 살아가는 역사 한가운데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징조를 알지 못하느냐고 외치신 예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존문제, 질병, 가정 내의 대소사 등 실존적 문제에 사로잡혀 하늘의 변화, 역사의 징조들에 둔감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가 다반사입니다. 깊은 명상과 기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신문과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여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기회 한 번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한 시대를 향한 성서의 메시지가 실종될 때가 많음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오로지 하늘을 보며 진지(眞知)를 추구하던 동방박사들의 모습이 마냥 그리워집니다.

셋째로 성서 안에서 우리는 성탄의 비밀을 터득한 목자들의 활약상을 찾게 됩니다. 그것을 마치 예수탄생의 초라한 환경에 걸맞게 그 탄생의 소식도 당시에 거지들이나 심지어 도둑과 같이 천대받는 사람들인 목자들에게 맨 먼저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때는 아마도 건조기인 여름이었을 것이고, 양떼는 들판에 방목했을 것이고(2:8), 장소는 어딘가 다윗의 동네”(2:11) 베들레헴(2:4,15)과 가까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목자들이란 밤을 지새우며 양들을 이리떼로부터 보살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었습니다. 아마도 요즘 말로 하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더럽고, 힘들고, 보수도 적은 3D 직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누가 보지 않더라도 졸지 않았고, 게으르지 않았으며 양들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착하고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성실한 민중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모두가 자고 있던 밤에 이들을 통해 메시아 탄생의 징조가 드러난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가난한 사람들, 쉽게 남을 속이거나 적당하게 거짓을 섞어가며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 속에, 마음이 가난한 이들 속에서 하나님이 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메시아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목자의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꿈은, 믿음은 반드시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탄을 보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가짐, 삶의 실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고 실현되어진 사실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동방박사와 목자들마저도 성탄을 자기 밖에서 발생되는 객관적 사건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때, 그 메시아를 자신 속에서 잉태하여 낸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 예수 잉태 소식을 전해들은 마리아의 고뇌 곧 마리아의 성탄에 관한 내용입니다. 주지하는바 마리아는 목수인 요셉이란 청년과 약혼한 정숙한 여인이었습니다. 다윗의 족보를 지녔으나 가난했던 젊은 청년 요셉과의 결혼을 앞둔 마리아는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민족의 아픔, 메시아에 대한 대망도 잠시 잊은 채 자신의 결혼에 대한 생각만으로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네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게 되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1). 이는 처녀인 마리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한 일입니다. 당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처녀잉태란 자신의 인격적 죽음은 물론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족으로부터 등 돌림을 당하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다음처럼 외칩니다. 아무리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더라도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노라고!’ ‘그런 일이 자신에게서 일어날 수 없음을 거듭 항변했습니다.(1:34) 옛날 초대교회 대표적인 교부 어거스틴은 천사에 대한 마리아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처녀성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는 가부장제 시각에서 그리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외경에는 성령잉태를 듣고 난 마리아가 하나님이 혹시 인간으로 변신하여 잠자는 사이 자신과 동침한 것이 아닌가 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의 항변을 이런 시각에서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서 안에는 이런 거부 의사가 한두 번 완곡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수십 번 하나님 안돼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라는 마리아의 절규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1:34, 개혁개정판) 성령의 역사라 하더라도 한 여인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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