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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도 사랑을 갈망합니다

최윤식 (익산노회,울밖교회,목사) 2018-12-08 (토) 10:26 5년전 2816  

농촌교회에서 목회할 때이다. 연세 많으신 70대 권사님과 함께 심방을 가게 되었다. 보리가  누런색을 띄며 막 익어가던 계절이다. 논두렁길을 지나가는데 권사님이 물으신다.

    “목사님은 뭘 좋아해요?”

    먹거리 중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게 자라온 나는 농촌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외에 별미를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딱히 무얼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재차 독촉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해보라 하신다. 대답을 안 하면 좀 시달릴 것 같았다. 주변에 널려 있는 보리를 보며 대답했다.

   저는요 보리민대를 좋아해요.”

 

보리민대는 보리를 삶아 문질러서 껍질을 벗겨낸 알속 보리를 말한다. 삶을 때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 제법 고소하고 쫄깃쫄깃하여 맛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보리민대를 간식거리로 종종 먹었었다.

   권사님은 보리민대가 농촌에서 흔한 거라 하찮게 여기셨는지 다른 음식을 말해보라 하신다. 아마도 특별한 별미 말하기를 바라시는 듯 했다. 하지만 농촌에서 어렵게 살아가시는 권사님에게 부담을 안겨드릴 수는 없었고 딱히 떠오르는 음식도 없었다.

    정말 보리민대를 제일 좋아해요. 어렸을 때 어머님이 이맘때면 만들어 주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생각 간절하네요.”

 

  심방을 마치고 권사님과 헤어졌다. 해가 저물어 가고 땅거미 짙어가는 시간인데 권사님이 찾아오셨다. 하얀 사기그릇에 보리민대를 가득히 담아서... 주의 종이 먹고 싶다하니 심방 끝나고 곧바로 논으로 달려가 보리 이삭을 베어다가 보리민대를 만들어 오신 것이다. 사발을 내미는 권사님의 손을 보니 손바닥이 녹색으로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보리 껍질을 벗겨내느라 손으로 문질러 손바닥이 파랗게 된 것이다. 사발을 받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권사님의 정성과 주의 종에 대한 사랑이 그 보리민대 속에 그득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먹을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편이다. 하지만 권사님이 만들어 주신 보리민대는 혼자 다 먹었다. 그 보리민대는 음식이 아니라 권사님의 마음이요 정성이었기 때문이다. 보리민대를 먹으며 다짐했다. 이거 먹고 더 열심히 교인들 섬기고 사랑하자고. 그리고 성경말씀을 잘 요리해서 교인들의 영적 입맛을 만족시켜주자고... 연로한 교인이 목자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허리가 아프도록 보리를 베고, 땀 흘리며 삶고, 손바닥이 새파랗게 물들도록 문질러서 보리민대를 만들어 오셨는데 목자가 교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정성을 쏟지 않으면 되겠는가?

 

  교인들은 목자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실은 목자도 교인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은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만 자식은 자기 요구를 부모에게 거침없이 말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목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교인들 앞에 드러내지 못한다. 교인들에게 부담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며, 자칫 삯군 목자로 내 몰릴까 우려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목자는 교인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뭔가를 요구하는 일은 가능한 한 삼가야 한다. 그것이 목자의 덕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목자는 교인들로부터 받는 사랑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고 힘을 얻는다. 그리고 목자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운다. 목자가 교인들에게 바라는 사랑은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라 목자를 배려하는 교인들의 마음이다. 보리민대는 내가 요구한 것이 아니다. 다만 연로하신 권사님께서 목자를 사랑해서 정성껏 만들어 주신 간식이다. 값으로 따져 비싼 것도 아니다. 희귀한 물건도 아니다. 흔하고 싼 것이지만 거기에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간식거리를 넘어 값진 선물이 되었다. 그 보리민대는 목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것은 목자의 마음을 크게 기쁘게 했을 뿐 아니라 목회사명을 강화시켰다.

 

다윗이 불레셋과 전투 후에 목이 말랐다. 산성 아래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그리워했다. 우물이 있는 곳은 다윗의 고향이자 적군 불레셋의 요새이다. 세 장수가 다윗의 심중을 알아채고 목숨을 걸고 적진에 들어가 물을 길어 왔다.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땅에 쏟으며 이 물은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 인데 어찌 마실 수가 있느냐.”고 고백한다(삼하23:13~17). 다윗은 부하 장수에게 물을 길어 오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장수들이 다윗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자원해서 물을 길어 온 것이다. 대단한 충성심이다. 다윗은 타들어 가는 입술이었지만 물을 마시지 않는다. 부하 장수들의 충성에 감동되어 목이 메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제쳐두고 혼자만 물을 마실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비록 물은 마시지 않았지만 생명을 걸고 물을 떠다 준 부하들을 바라보며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군주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군주인 다윗과 부하 장수들의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얼마나 바람직한 관계인가?

  목회자와 교인 간에도 다윗과 장수들과 같은 관계이면 얼마나 은혜로울까? 일방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곳에는 원만한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상호 사랑을 주고받을 때 좋은 관계는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다. 목자가 교인을 사랑하고, 교인이 목자를 사랑하는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요 부흥될 수 있는 교회이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하셨다.(13:34)

 


김관영 2018-12-08 (토) 15:10 5년전
귀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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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식 2018-12-09 (일) 09:56 5년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사역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늘 함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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