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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그릇 비유'(딤후 2:20~21)

신솔문 (전북노회,전주갈릴리교회,목사) 2018-07-10 (화) 13:04 5일전 49  

1.

 

행정고시 1차 시험(PSAT) 초기에 한신대에서 이 시험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완성도가 2% 부족한 문제라고 학생들에게 지적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시문에서 추론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문제입니다. 수능 언어영역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기도 하는데요. 질문의 취지는 정확히 제시문에서 (명시하고 있는 진술에서 타당하게) 추론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일상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그리고 명시된 제시문만을 가지고 추론하지 않습니다. 배경지식을 결합하여 추론하기도 하고 제시문이 말하는 것을 넘어서는 귀납추론을 하기도 합니다(설교학에서 말하는 소위 귀납적 방법은 귀납에 관한 매우 오래된 정의와 관련되어 있는데 현대 논리학에서는 이것을 포괄적인 정의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의(恣意)적인 전제를 추가하는 일상적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면 거의 오답에 빠지게 되지요. 출제위원들이 이 방식을 이용하여 함정을 파놓기 때문입니다. 함정을 파놓기 전에, “제시문에서 명시하고 있는 진술에서 타당하게 추론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물어야 출제가 비겁하지 않는, 온전한 문제라는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2.

 

자의적인 전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하는 전형적인 구절이 디모데후서 2:20~21 아닌가 싶습니다.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짧은 비유가 이끄는 추론은 거의 반사적입니다.

 

(1) 금 그릇과 은 그릇은 귀하게 쓰는 것이고, 나무 그릇과 질그릇은 천하게 쓰는 것이다.

(2) 금 그릇과 은 그릇처럼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금 그릇과 은 그릇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물론, 구약 성경 곳곳에서도 금 그릇과 은 그릇을 귀하게 여기므로 즉각적으로 금 그릇과 은 그릇이 귀히 쓰는 그릇으로 분류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한발 짝 한발 짝이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류의 첫 번째 후속 조치는 질그릇을 폄하하는 것입니다. 난점은 그렇게 하려고 하니 성경에서 질그릇이나 나무 그릇을 천한 것으로 여기는 구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후 4:7 말씀이 걸립니다.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또한 21누구든지20절에 근거한 분류 자체를 대놓고 부정합니다. “어떤 그릇이 되었든지라는 의미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고전 12:22~23귀한 것덜 귀한 것(비교적 천한 것)” 경계를 없애고 있네요.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흔히 이 본문을 쉽게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성서주석>에서 토마스 C. 오덴은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은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잘못 밟으면 폭발합니다.

 

 

 

3.

 

제가 보기에, 이 비유를 적절하게 해석해내는 관건은 귀하게천하게라는 번역을 명예롭게불명예롭게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요.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 그릇도 있어 명예롭게 쓰는 것도 있고 불명예롭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명예롭게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은 로마서 921절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로마서에서는 질그릇만을 말하지만 디모데후서는 그릇 종류를 확대하였지요.

 

로마서에서 나오는 귀히천히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 구절은 예레미야 18장에 나오는 토기장이 비유와 문맥이 같습니다(이사야 45:9은 약간 다른 분위기입니다). 로마서는 예레미야의 토기장이 비유에 귀히천히를 추가하였는데 예레미야나 로마서의 문맥에서 이 두 단어에는, “귀천이라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피아(彼我)”를 구별할 정도의 강한 판단이 들어있습니다. “명예로운(honor)”불명예로운(dishonor)”가 문맥에 맞는 것 같고요, 영어 성경 대부분도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21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런 것은 무엇일까요? 피아를 구별할 정도의 사안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러한 추정을 가지고 근접 문맥을 읽을 수 있어야설명력이 있는 가설이 되겠지요.

 

() ‘이런 것이라는 지시어가 있기 때문에 근접 문맥은 22절 이하가 아니라 21절 이상이며 그 시작은 8절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이 구절의 키워드 예수 그리스도13절까지 이어지며 그리고 이 키워드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 14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이 일이라는 지시어를 통해 이 키워드는 계속 됩니다. 그렇다면 14절에 나오는 말다툼은 교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언쟁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심각한 논쟁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말다툼의 결과로 제시된 파멸”(망함)이 그런 논쟁임을 방증(傍證)합니다. 교인들끼리 사소한 언쟁을 했다고 망하지는 않지요.

 

() 15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도 신앙의 본질에 관한 논의라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 16절의 망령되고 헛된 말도 소소한 잡담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17절에서 그 결과가 악성 종양이라고 하는데 소소한 잡담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합니다. 18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역시, 쟁점이 심각한 사안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바로 제시된 사례 역시 신앙의 본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주석 상의 이러한 가설이 맞다면, 디모데후서 2:20~21각종 그릇 비유헌신 봉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단에 빠지지 말아야 명예로운 신자, 인정받는 일꾼이 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인정받는 일꾼의 기본 조건입니다.

 


4.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0~11)

 

 

 

 

[추신] 527일 주일 설교 원고를 정리한 것입니다. 딤후 2:1~21 말씀을 가지고 "인정받는 일꾼"으로 2회 전했습니다. 이런 복잡한 내용의 설교에도 집중하시는 교인들에게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7월 11일 예배당 옥외 주차장에서 담은 폰사진입니다. 한 20분 마음껏 하늘 올려다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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