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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8-06-19 (화) 21:05 5년전 2661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9:50

아폴로 11호가 처음으로 달나라에 착륙했을 때 암스트롱과 알드린은 달에 기를 꽂아놓고 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 인류를 위하여 평화를 가져오러 왔노라 이 세상에 평화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세계 2차 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탄의 위력은 세계가 함께 놀랐습니다. 원자탄 하나로 순식간에 히로시마에 30만 명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원폭피해자들의 가족들은 그 후유증으로 평생 질병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 원자폭탄 제조를 총지휘했던 과학자 로버트 오펜 하이머씨가 미국 국회에 출석해서 증언을 했습니다. 위원들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원자탄 무기를 방어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때 과학자는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평화라는 무기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오펜 하이머씨는 평화라는 무기는 원자탄보다 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평화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를 사용치 못한다면 세상은 불행과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평화라는 무기를 소유하지 못하는 세상은 파멸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의 말을 남기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2차 대전 때 사용했던 원자폭탄이나 그 후에 만들어진 수소폭탄보다도 더욱 무서운 코발트라는 폭탄이 있다고 합니다. 50년 전에 원자탄이나 현재의 수소 폭탄 보다도 몇 천배의 위력을 가진 것이 코발트탄이라고 합니다.

이 코발트 탄 하나만 가져도 지구촌 안에 인구의 99%를 살생시킬 수 있는 무서운 폭탄이라고 합니다. 이 코발트탄이 투하된다면 100년이 지난 후에도 더욱 심각한 후유증으로 생명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이 코발트탄은 아직 생산은 안 되었지만 언제든지 생산할 수 있게 준비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원자탄을 만들었던 과학자 로버트 오펜 하이머씨가 미국 국회에 출석해서 증언했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핵무기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세상을 파멸해서 구원해줄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평화라는 무기뿐이라고 예언자처럼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평화라는 무기를 준비하지 못하면 피차가 파멸할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끝없는 무기 경쟁과 전쟁준비로 세상은 파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생존의 방법이 오직 핵무기라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무장을 해제시키려고 세계가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힘이나 압력과 무기의 경쟁으로는 참된 평화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북한의 핵무기를 막는 길도 무엇인가? 화목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평화를 만들어내는 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햇볕정책을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비판했지만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관계가 대화의 끈조차 쥐지 못하고 냉전체제로 돌아가고 있으며 개성공단의 폐쇄로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의 투자했던 기업인들이 한 순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평화라는 무기가 없다면 세상은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평화는 바로 화목함을 통하여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의 이웃과 화목함과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화목하게 살지 못하는 가정도 많고 이웃들도 많이 있습니다. 화목을 깨트리는 신자도 있고 화목하지 못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화목을 이루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가정불화 이웃과 불화 속에 산다면 행복한 생활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성령도 탄식하고 근심하십니다. 왜 화목하게 살아가지 못할까요?

옛날에 공작새 부부가 예쁜 외동딸 공작새를 곱게 키워 숲으로 시집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시집 간 딸이 얼마 되지 않아 잔뜩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엄마 공작새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딸이 하소연을 했습니다. “엄마! 숲의 새들이 다 저를 따돌려요.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남편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경험이 많은 엄마 새는 마음속에 집히는 것이 있어서 물었습니다. “너 숲 속에서 아무 때나 꽁지를 활짝 펴서 다른 새들 앞에서 뽐냈지. 내 말 맞지!”

딸이 깜짝 놀라 말합니다. “엄마! 우리 꼬리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조금 펼치면 어때요?” 엄마가 말해줍니다. “얘야!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남을 부끄럽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야! 남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고 덕을 세우라고 준 것이란다.”

엄마는 딸에게 이어서 골프 치는 사람들의 예를 들어서 말했습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젠틀맨 골프 상식이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야기하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골프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골프 얘기를 안 꺼내는 것이야! 그 의미를 알겠니?”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집으로 날아가서 그 때부터 숲의 새와 잘 어울려 지냈다고 합니다.

이웃에게 배려해주고 이웃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이웃에게 즐거움과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삶에 힘쓰면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공작새 새 색시처럼 왕따 당하지 말고 또 왕따 시키지 아니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렌스 굴드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보라. 많은 연주자가 불고 켜는 각종 악기의 소리는 하모니 된 아름다운 음률로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끼리 오케스트라의 분위기를 만들며 살아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악기는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내는데 의미가 있듯이 사람은 각자 개성은 달라도 그 사람 나름대로 창작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굴드는 각종 악기가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하나의 지휘자에 따라 하모니를 이루듯이 인생도 서로 배려하는 화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혼자 소리를 높이기보다 멋진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서로 화합하여 하루하루가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는 가정마다 그렇게 화목하고 성도들이 일하는 직장에도 그렇게 화목하고 우리 교회가 다양한 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예수님을 지휘자로 때로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화목과 평화를 이루어 가는 멋진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대전장로교회의 여신도들이 모인 곳에는 다양한 성품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멋진 화음을 만들어 가는 화목하고 화평하고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여신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로 좋은 화음을 내도록 노력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조금만 녹아지면 되는데 조금만 양보하면 되는데 조금만 희생하면 되는데 내가 좀 녹아져서 화목함을 만들어 내고 평화를 만들어 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 하셨을까요? 소금은 3가지 기능을 가졌습니다.

 

맛을 냅니다.

소금의 첫 번째 기능은 맛을 냅니다.

음식을 대접할 때 인사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잡수세요.”라고 많이 인사했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인사하면 욕이 된다고 한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많이 잡수시라 하면 빨리 가십시오.” 라는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병이 많이 먹어서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유식한 말로 인사하면 맛있게 잡수세요.”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좀 더 고상한 말로 인사하면 즐겁게 드십시오.”라고 인사한다고 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인사말씀이 간이 맞는가?” 물으셨습니다. 간이 맞아야 맛있는 음식입니다. 우리 집 음식이 간이 맞는가?”하는 말은 맛있게 드셨는가?” 하는 말과 같았습니다. 요즘 어떤 때는 집에서 아내가 정성껏 반찬을 만들어 주는 식탁이 너무 너무 간이 맞지 아니해서 맛이 없어 즐겁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싱겁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데, 그것은 짜게 먹지 말라는 이야기이지 맹탕을 해 놓으면 무슨 맛으로 음식을 먹겠어요. 음식은 간이 맞아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간은 무엇으로 냅니까 ? 바로 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의 맛은 없습니다. 소금이 없는 음식은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소금이 모든 음식에 맛을 내서 즐겁고 행복하게 음식을 나누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처럼 녹아져서 화목함을 만들어 내라는 말씀입니다.

화목함이 없으면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소금이 없는 음식은 맛이 없어 먹을 수 없는 것처럼 화목함이 없는 사람 화목함이 없는 가정은 살아가면서도 아무런 기쁨도 즐거움도 삶의 의미도 없는 무미건조한 허수아비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처럼 녹아져서 살 맛 나는 화목한 가정과 화목한 직장과 화목한 교회를 만들어 내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금이 뿌려 지는 곳에 좋은 결과가 일어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 화목함이나타나야 합니다. 문제를 계속 야기 시키는 문제의 인물은 어디를 가더라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문제 인물은 어디를 가도 문제 인물로 삽니다. 그러나 화목하게 하는 자는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을 받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자녀들이 불안합니다. 정치가 화목하지 못하면 국민이 불안합니다. 세계가 평화롭지 못하면 온 세상이 불안해합니다. 교회가 화목하지 못하면 교인들이 불안합니다. 은혜 없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화목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도 세상에 화목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화목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일을 위해 소금처럼 녹아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하여 소금처럼 자신이 녹아질 줄 알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어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소금은 녹아야 하는데 녹지 아니하고 돌덩이처럼 굳어져 녹지 아니하면 짠돌이가 됩니다. 소금이 좋은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짠돌이처럼 자신은 녹을 줄 몰라서 짠돌이로 살면 세상 어디를 가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짠돌이로 인색하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감사절에도 마음 한 구석에 짠돌이처럼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소금기둥처럼 짠돌이 신자가 되면 감사절에도 마귀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 없이는 음식의 맛을 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살맛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지쳐있는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들어가는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서 우리가 소금처럼 녹아짐으로 화목하고 평화를 만들어내고, 살 맛 나는 행복한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이루어 가시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방부제역할

두 번째 소금의 기능은 방부제 역할입니다.

지금이야 냉동시설이 잘돼있지만 옛날에는 생선을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소금에 절인 간 고등어 생선들이었습니다. 요즘은 냉동시설이 좋아서 철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김치 냉장고가 생겨나서 일 년 내내 가을 김장김치를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방부제 역할로 오르지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모든 음식물이 쉽게 부패했습니다.

소금은 부패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썩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부패가 있고 썩는 것이 있는 곳에는 화목함이 없습니다. 부패와 썩은 세상에는 평화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 부패를 방지해야 합니다. 죄악으로 오염되어 썩어가는 세습을 따르지 아니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소금은 녹을 수는 있지만 상하지는 않습니다. 소금 기운이 약할 수는 있지만 절대 부패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홀로 있을 수는 있지만 상하여 벌레나, 구더기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소금은 절대로 부패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부패를 방지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롯의 가족들을 소돔과 고모라에 거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패역한 그 사회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타락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하고 죄악으로 가득 채워지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방부제의 역할을 하지 못해 그 성이 심판을 받아 불타고 망할 때 소금기둥이 되어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고 방부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길가에 버림받아 사람들에게 밟힘을 당하게 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하고 병들어 가는 세상에 방부제 역할을 감당함으로 화목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살 맛 나는 교회와 세상을 만들어 가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르게 하는 역할

세 번째 소금의 기능은 고르게 하는 역할입니다.

오늘 여기에 중요한 메 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채소에 소금을 뿌리면 뻣뻣하던 것들이 다 고르게 됩니다. 흔히 숨을 죽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숨이 죽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잘난 것 못난 것 소금에 숨을 죽이면 다 하나가 됩니다. 소금은 바로 이렇게 고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구약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반드시 죽여야 했습니다. 살아있는 양을 죽이고, 살아있는 소를 죽이고, 살아있는 비둘기를 제단 앞에서 죽여야 제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싱싱하고 펄펄 살아있는 짐승을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 살아서 소리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숨을 죽인다는 것은 짐승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것과 똑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13절을 보면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제는 채소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동물이 아니라 채소라 할지라도 반드시 소금을 쳐서 뻣뻣한 채소를 숨을 죽여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숨을 죽인다는 말은 짐승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처럼 똑같은 의미가 채소를 바칠 때에도 적용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뻣뻣한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목이 곧은 사람은 목을 굽힐 줄 알아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고 희생할 줄 알고 섬길 줄 알아야 평화를 만들어 내며 하나님께 쓰임 받고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소금은 녹아져야 합니다. 녹아져야 맛을 냅니다. 녹아져야 숨을 죽일 수 있습니다. 형체가 없도록 녹아져야 합니다. 희생이 없으면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이나 분쟁과 분열이 싹트는 곳에는 녹아지거나 숨을 죽이거나 겸손하여 섬기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팽팽하게 자기의 주장과 생각과 고집만 내세움으로 분쟁을 극복하지 못하고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조금만 녹아지면 될 터인데 조금만 숨을 죽이면 될 터인데 조금만 고개를 숙일 줄 알면 될 터인데 어떤 때는 너무 아쉬울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막힌 담을 헐고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습니다. 죽지 않고는 평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려면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소금처럼 녹아져야 합니다. 교만도 거짓도 욕심도 질투도 미움도 모두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화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좀 녹아져야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서로 살려고만 하고 서로 높아지려 하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평화는 이룰 수 없습니다. 평화란 서로 용서하는 것, 서로 화해하는 것, 서로 이해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서로가 먼저 자신이 좀 녹을 줄 알면, 죽일 줄 알면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전쟁준비로 파멸을 향하여 달음박질 치고 있습니다. 평화라는 무기를 만들어 세상을 살려내고 살맛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금처럼 내가 좀 녹아져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참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6.6.26.)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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