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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담은 헐어야 합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8-06-17 (일) 05:37 5년전 2392  

막힌 담은 헐어야 합니다

2:3~18

중세기의 어떤 수도원에서 신부복을 입은 낯선 구도자 한사람이 찾아와서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수도원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나가서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낯선 구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평화를 찾습니다.”

바로 이 구도자의 이름이 신곡을 지은 단테입니다. “평화를 찾습니다.” 라는 이 한마디의 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가슴속에 크고 중요한 음성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 모두가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평화롭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심각할 정도로 막힌 담은 높고 두텁게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튼튼하게 막힌 담을 헐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메시야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첫째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입니다.

이 두 관계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막힌 담이었습니다. 이 장벽은 너무 심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장사도 같이 안합니다. 심지어는 밥도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서로 결혼도 하지 않습니다. 만일 유대인 청년이 이방인 처녀와 사랑하여 결혼하면 그들에게는 결혼식 날이 장례식이 되는 날이 되어야했습니다.

어쩌다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이방인들이 성전을 찾아오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큰 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고 담장 둘레에는 유대인들, 그것도 제사장들이 칼을 들고 이방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벽이 두터웠고 막힌 담은 심각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은 아무도 허물 수 없는 무서운 장벽이었습니다. 불행한 세상입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매우 경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은 지옥불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창조하였다는 심한 말을 하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인 산모가 산고로 고통 받을 때 그녀를 도와주는 것도 율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다른 이방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세상이었습니다.
둘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막힌 담입니다.

한 동족이면서 지역감정, 지역적 장벽, 지역 간에 막힌 담이 있었습니다.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무서운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왜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이런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까? 그것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사마리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포로로 끌려가지 아니하고 남아서 이방인들과 결혼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역사적으로 이런 혼혈아들이라고 해서 무서운 차별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아니하고 갈릴리 지방으로 내려가는 길목이지만 사마리아 땅은 밟지도 아니하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한 동족이면서 한나라이면서도 지역적인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먼 거리를 빙빙 돌아다니면서도 저 더러운 땅은 밟지도 말아야 된다!’ 생각하며 한 동족 간에도 무서운 장벽, 막힌 담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세상입니다.

셋째는 의인과 죄인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죄인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아주 왕따로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것을 보자마자 비난했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도다.” “어떻게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저렇게 죄인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느냐? 어떻게 죄인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은세리와 죄인의 친구" 가 되었습니다.

아주 철저한 흑백 논리로 죄인과 의인의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너는 죄인이고 나는 의인이다.” 자기는 더 큰 죄인이면서도 그렇게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회에서 멸시받던 죄인들과 만나주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시고 음식도 함께 나누심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의인과 죄인의 막힌 담은 무서웠습니다.
넷째는 남자와 여자의 장벽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성차별 문화에 따라서 선진국과 후진국이 구별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오랫동안 5,000년 역사 가운데 성차별을 해온 국가 중에 하나입니다. 이 장벽은 유대인 문화와 한국인의 문화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한국 사회는 평등을 넘어서서 역차별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기까지 합니다. 한국에 여성해방은 전적으로 예수님 덕분입니다.

대전에서 예배석이 남자와 여자 좌석이 구분된 것을 최초로 허문 교회가 어느 교회인줄 아십니까? 대전에서 최초로 예배당 안에 의자를 놓았던 교회가 어느 교회인줄 아십니까? 바로우리 대전장로교회입니다.

유대 나라는 성차별이 어찌나 심했는지 여자는 사람 숫자에도 못 들어갔습니다. 성경에도 여자와 아이 외에 몇 명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은 여인의 인격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남성과 여성의 막힌 담을 예수님께서 허물어 주셨습니다.

다섯째는 어른과 아이들의 장벽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을 제자들이 심하게 꾸짖었을 때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너희도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18:3). 어린 아이들이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막힌 담을 주님께서 허물어 주신 것입니다. 어른과 어린아이의 막힌 담도 심각했습니다.
여섯째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막힌 담입니다.

힘을 가진 지배자인 로마와 힘이 없어 식민지가 된 피지배자와의 장벽도 심각했습니다. 원수처럼 서로 증오심에 불탄 채 미워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뿐입니까? 같은 유대인 혈통 중 에서도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의 장벽이 있어서 싸움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건강한 사람과 건강치 못한 사람의 장벽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 환자들은 격리 수용했고 저주받은 백성이라고 규정해 버리고 성 밖으로 내여 쫓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때 세상은 아주 갈래갈래 찢어진 만신창의 공동체! 건드리기만 하면 벌떼처럼 일어나고 모래성 같이 무너지는 조직체, 그게 유대 사회이었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기술문명이 발달해도 세상에 구석구석 막힌 담을 쌓고 살아가는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이 없습니다. 가정이 깨어집니다. 교회가 분열됩니다. 국론이 분열되어 싸웁니다.

예수님이 이런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막힌 담으로 평화를 빼앗긴 채 허덕이는 세상에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막힌 담을 헐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죽으심을 통하여 이 세상에 모든 막힌 담을 하나씩 헐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이 땅에 막힌 담을 헐고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가는 십자가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2:14~17).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 평화가 되어 주셨고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은 유대 사회처럼 갈기갈기 찢겨진 상처투성이 상태로 두터운 장벽과 막힌 담으로 피차 물고 뜯고 피차 망하는 길로 줄달음질치는 불행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막힌 담을 허시고 평화를 만들어 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막힌 담을 헐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평화라는 말이 400번 이상 반복됩니다. 신약 성경만 하더라도 88번이나 언급됩니다. 특히 바울 서신의 첫 번째 인사 메시지는 항상 어떻게 시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라는 말은 화해, 화목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재 연합을 의미합니다. 깨어진 관계가 다시 재결합된다는 뜻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기 22:21).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5:1).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20).

오늘 아침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다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속죄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세상에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화평을 깨뜨리는 다섯 가지 심리적 요인을 정리해줍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심리, 남의 칭찬만 기대하는 심리, 남이 내게 따라오기만을 요구하는 심리, 나의 책임을 남에게 지우려는 심리, 파당을 만들어 나를 따르게 하려는 심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힘에는 네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공격하는 힘(power against)입니다, 정복하는 힘(power over)입니다, 도와주는 힘(power for)입니다, 함께 하는 힘(power with)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네 번째 힘이 곧 화목의 비결입니다. 모든 세상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는 성도들, 평화를 만들어 가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서울 전철 안에서 경험한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50대 중반 여인과 한 남자분이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밀고 떠밀면서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말다툼이 감정싸움이 되어서 서로 고성이 오고 가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70대 어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데 여기가 교회인줄 아느냐 싸울라면 교회나 가서 싸우라고 야단을 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 한분이 정색을 하면서 할아버지 왜 저분들이 싸우는데 교회를 말씀합니까? 왜 교회가 싸움하는 곳입니까? 그랬더니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내가 보니 교회들이 싸움박질만 하더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여러분 교회가 세상에 막힌 담을 헐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막힌 담을 두텁게 하고 다투고 분열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면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야 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헐고 참된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어주시고 평화의 직책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이 화평을 깨트리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서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는 예수님의 정신을 본 받아 세상에 갈라지고 막혀있는 담을 헐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1948년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다음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기독교의 교단 대표자들이 모였습니다. 세계 교회 협의회를 창설하려고 모임을 가졌는데 44개국 147교단 대표들은 기득권을 내세우며 다툼이 있어서 제대로 협의회를 구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창립을 앞두고 개회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단상에 올라간 사회자는 강단에 놓여 진 검은 관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대회의 개회 예배를 시작하기 전 여기 강단에 놓인 관속에 있는 시체의 장례를 지내야 하겠습니다. 여러 회원들은 그 시체를 한사람씩 나와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자는 검은 관의 뚜껑을 열어 제쳐놓았습니다. 앞줄에 앉은 회원부터 차례차례로 강단 위에 놓여 진 관속의 시체를 들여다보고는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분위기는 매우 경건해졌습니다. 그 검은 관속의 시체라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관속에 거울을 깔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 교회협의회가 아무런 소동 없이 창설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각자의 고집과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화평을 이룰 수 있고 평화의 직책을 감당하는 자녀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는 인종의 차별도 없습니다. 계급의 상하도 없습니다. 남녀의 차별도 없애 주셨습니다. 십자가로 이 세상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통해 화평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누구도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족 간에 무섭고 비참한 전쟁을 치루고 또한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채 반세기를 반목하며 서로 적대하며 전쟁준비에 국력을 허비하며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이권전쟁에 휘말려 무력 증강을 외치며 남북한이 군사력을 키우고 무력 증강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의 전쟁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길이 열려진 것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대화를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 간의 막힌 담을 헐고 교류가 활발하게 재개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평화통일을 만들어 내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에서 육로와 철로가 열려서 서울에서 유럽여행을 떠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섬나라인 한국

우리나라는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 섬나라로 살아 왔습니다.

남한은 삼면이 바다로, 그리고 나머지 한 면은 휴전선으로 사방이 고립되어 사실상 섬나라로 불행하게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런데 지난날 이 섬나라에서 반세기 만에 남북간에 통문이 열리고 철책이 열려져서 남북 간에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물류수송을 시작했고 육로가 개통되어 남북 간에 교류가 확대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의선 철도의 복원은 단순한 철도 연결이라기보다는 섬과 대륙을 잇는 연륙교(連陸橋 )의 의미를 가지는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울었습니다.
이젠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유럽여행을 하고 엄청난 물류수송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날이 눈앞에 다가오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철도를 타고 서울을 떠나 신의주에 도착하는 경의선 열차는 중국 국경도시 단동을 거쳐 중국횡단철도(TCR)몽골횡단철도(TMGR)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중국횡단철도는 단동북경서주정주를 경유하여 카자흐스탄의 알마타드루즈바모스코바베를린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었습니다. 총연장 12,971km입니다.

몽골횡단철도는 단동북경올란바토르울란우데를 거쳐 시베리아철도와 만나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지면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아닌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는 동북아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물류 거점으로 떠오르게 되어 역사이래로 크나큰 기회와 도전이 될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염원과 꿈을 깡그리 무너트리고 단절시키고 오늘의 남북간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애통하는 맘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대립과 무력경쟁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용서와 화해로 평화를 만들어 가라는 명령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셔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 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평화를 잃는 것 욕심 때문입니다. 평화가 깨어지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끊임없이 사랑을 담고 남의 허물을 덮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격려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평화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북한의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매주일 마다 한번도 빼놓지 아니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이 땅에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대결과 전쟁으로 해결할 수 없사오니 오직 십자가의 정신으로 화해와 평화통일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왔습니다.

모든 한국교회가 기도해 왔습니다.

이번 판문전 선언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이제 판문점 선언을 통하여 이 땅에 70여 년 동안 막혀있던 분단을 극복하고 전쟁이 종식되어지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좋은 기회를 그리스도인들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남북한의 문제는 십자가의 정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길입니다.

어떤 강력한 군사력과 무력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북한을 망하게 만들어서 흡수 통일론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정신이 아닙니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함께 망하는 길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평화를 만들어 가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갈 기 갈기 찢어지고 막혀있던 무서운 담들을 헐어주시고 평화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정신, 사랑과 용서와 화해로 평화를 만들어 가시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평화가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위대한 과학자도 필요합니다. 위대한 정치가도 필요합니다. 위대한 전술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인물은 바로 이 세상을 화평케 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막힌 담을 헐어 주셨고 평화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막힌 담을 헐고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가시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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