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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적 현존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8-05-22 (화) 14:30 5년전 2071  

성령의 역사적 현존

-2018년 성령강림절

사도행전 2:1-13, 로마서 8:28-39

2018527, 63

 

1. 성령의 역사(act)란 무엇이며 성령을 받은 증거로 나타나는 역사적 현존은 어떤 것일까?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문제는 그 성령이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역사(役事)의 도구로서 자연계와 인간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미 창조활동에 참여하여 물위를 운행했습니다(1:2). 성령 또는 영이라고도 하는데 선지자들을 영의 사람이라 하며(9:7) 이들이 받은 영감과 놀라운 지혜, 통찰력, 황홀한 가운데 행하여지는 초인적 모든 힘을 영의 작용이라 하였습니다. 그 영은 하나님의 영입니다(1:2, 33:6, 51:11, 63:10).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이 인간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2:7). 성령은 하나님 자신의 영이며 곧 하나님이시다(63:10). 즉 하나님은 스스로 직접 행동하시고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행동하시고 나타나시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 자신의 능력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은 다분히 종말적인 것으로 종말의 날에 나타나는 종말의 징조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마음이 새로워지며(36:26, 39:29) 예언과 기사와 이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2:28). 영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ruah’는 원래 바람을 의미합니다.

신약성서에서 희랍어의 프뉴마(Pneuma)’는 이미 70인 역에서 사용하는데, 구약의 ‘ruah’의 개념을 더 확장한 개념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와 바울서간, 그리고 요한복음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공관복음서의 경우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표현하였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에 의하여 예수를 잉태한 것, 예수의 수세시에 성령이 그 머리에 임한 것,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성령이 수종한 것, 기타 예수의 일생을 통하여 일어난 기적과 역사는 모두 성령을 통하여 이룩되었습니다.

바울서간의 경우, 성령은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존재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도와 그 공동체 안에 계시고, 또 신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러한 존재양태는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은 곧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하나의 양태라고도 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부활한 그리스도와 성령을 거의 동일시하리만큼 밀접한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아버지와 그리스도에게 결부시킵니다. 죄와 사망과 율법에서 인간을 해방하여 기쁨을 주는 것은 성령의 양식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달리 우리를 돕는 주’(14:16,26)로서 이해하였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예수 자신으로부터 발출하는 보혜사입니다. 요한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일종의 새로운 생활을 경험하는데, 특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가진 메시아의 백성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이 성령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가 됩니다. 또 성령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성을 증거합니다. 오늘 메시지는 2018년 성령강림절을 맞아 나누고 싶은 성령의 역사적 현존에 대하여입니다.

 

2. 바울은 복음전파의 선교활동을 하면서 친히 경험한 내용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우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고후6:4-5), 심지어 자기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과 같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도무지 꺾이고 지쳐 넘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라고 하면서 오히려 더 담대하고 꿋꿋하며 기쁨으로 정진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이는 그가 성령의 은총을 받고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통해 바울은 동족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로마제국의 핍박을 능히 이기며 이방세계에까지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또한 성령의 역사적 현존을 대하여서도 증언합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4-6) 계속하여 증언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8-11) 바울은 그가 어떻게 육과 세상의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망인 육의 생각을 좇아내고 모든 시련을 이기며 승리의 생으로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로마서 8장에서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6,28).

바울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구별이 없이 다 그 속에서 한 체험이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이보다 더 성령 역사의 현존을 잘 증언할 수 있겠는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으나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1-39). 바울이 친히 체험하고 증언하는 이것이 성령의 역사적 현존인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이런 성삼위 하나님 역사가 함께하심을 확신하고 체험할 때 우리의 신앙과 사랑의 생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현대 러시아 정교회(正敎會)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함께 3개로 나뉜 그리스도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17년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인해 교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큰 시련과 박해 속에서 살아남은 성령의 역사적 현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를 소개합니다. 1941년 독일과의 전쟁이 터지자 성직자들과 모스크바의 시민들은 조국의 승리를 위해 기원했습니다. 레닌그라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2백 년 동안 소련의 수도요, 혁명 후 모스크바로 수도가 옮겨졌습니다. 이 레닌그라드는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북구의 도시일 뿐 아니라 네바다 강을 중심으로 갖가지 문화재와 보물, 교회당, 박물관들로 가득한 보석 같고 가슴 설레게 하는 고풍스런 도시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도시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히틀러의 나치 군에 의해 3백만 시민이 9백일 동안이나 포위되었던 사실입니다(194198-1944127). 육해공군의 공격과 모든 통신 차단과 식량공급의 중단으로 약 66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1941-1942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워 화씨 영하 40도나 되었습니다. 도대체 레닌그라드 시민은 어떻게 그 긴 3년을 싸우며 살아남아 독일군을 물리쳤을까요? 여기에는 한 비밀에 있었습니다. 레드가호(Lake Ladoga)의 얼음 속으로 외부와 통하는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길’(Road of Life)이라 불리는 바로 이 비밀통로로 최소의 생필품이 공급되고, 3년여의 하늘과 땅의 공격에도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고 버텼습니다. 독일군은 3년째 더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고 떠난 것입니다. 전후 세계는 레닌그라드를 영웅도시’(Hero city)로 치하했습니다.

여기 우리의 관심은 비밀의 통로인 생명의 길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받고 갖가지 호된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비밀의 통로인 성 삼위 하나님의 영이라는, ‘생명의 길로 말미암아 얼음 속의 비밀의 통로를 통해 그 무서운 독일군의 9백일의 포위 속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갖가지 도전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공동체의 교회를 이룩하며 바른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울지라도 승리의 그 날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힘도 바로 이 비밀의 생명의 길인 성령의 역사적 현존을 체험하며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제 성령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기초적인 가르침을 종합하여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령의 역사(役事)를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동시에 성령의 역사는 예수가 우리 주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게 하고, 인류의 구원과 참 생명이 그에게 있음을 믿게 합니다. 따라서 성령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생을 우리 마음속에 되새기는 역사를 합니다. 창조와 역사 섭리의 하나님, 인간이 되어 인류를 구원하시려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여전히 성령은 성도들을 감화·감동케 하여,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의와 진리를 따라 살도록 역사하시기에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을 성도들에게 다시 일깨우는 영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심을 뜻합니다. 허물 진 인간이 죄악으로 기울 때엔 그 길을 막고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바울이 선언했듯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5:15-16). 죄 많은 인간 속에서 이들이 서로 대적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5:16).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듯이 성령도 우리에게 임재하시기에 하나님과 예수를 믿고 따르듯 성령을 믿고 받아 그의 뜻과 역사를 따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도리요 우리가 이 세상을 훌륭하게 사는 길입니다. 믿음의 모든 훌륭한 선배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문제는 성령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령 받았는가 여부 문제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요한1서는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의 주장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악령인지 시험해보라 했습니다(1:4). 갈라디아서도 이 점을 더 분명히 합니다.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 말하더라도 그 인격과 삶이 더럽혀지고 제 육체의 소욕이나 따르며,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핀잔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성령 받은 자가 아닙니다. “음행과 더러운 호색만을 따르고 사람을 속이고 기만하며 시기, 분쟁으로 패를 만들고 이웃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원수 짓고 용서 못하여 나뉘고 분내고 성내며 참지 못하고 술 취하고 방탕하여 제대로 생을 못 산다면, 이런 자들은 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5:19-21). 즉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 신앙과 인격과 삶이 잘못되어 있다면 성령 받은 자가 아닌 증거입니다.

 

4. 성령에 대한 오해를 막고 그 바른 이해를 위해 성령이 하는 일, 즉 성령의 역사 또는 사역(act)에 대한 기초적 가르침을 요약하며 그 의미와 성령 받은 증거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을 우리로 하여금 체험하게 합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여 진리를 알게 하고, 그의 정신과 삶을 같이 살도록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의 기초적 역사는 아주 분명합니다. 간단히 다음과 같이 요약해 봅니다.

1)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 그리스도임을 믿고 받아들이게 합니다(16:18). 2). 예수의 십자가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요 부활은 십자가의 생을 사는 자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게 합니다(고전2:29, 고전15:29-34). 3)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변화하여 새사람이 되게 합니다(3:4-9). 4)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불의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줍니다(10:17-20). 5)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주며(14:17, 15:13), 일할 수 있는 열심과 능력을 주고 증인되게 합니다(1:8). 6)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사와 가르침대로 사는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고, 인간과 세계를 위해 끝까지 봉헌·봉사케 합니다(2:1-47).

성령은 어떻게 받는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았느냐?”는 등의 말을 교회 안팎에서 흔히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나 같은 사람도 받을 수 있을까? 또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질문이 많습니다. 또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합니다. 어떤 핀잔의 대상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그런 성령은 받기 원치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은 깊은 산이나 기도원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다가 극적으로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더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매일의 성실한 삶과 신앙생활에서 받고 경험합니다. 집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을 마음 깊이 체험하거나,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의 임재를 느낍니다. 주어진 내 생업이나 가사를 성실하게 살며 주를 위해 지극히 작은 봉사지만 열심히 하면서 성령의 은총과 기쁨을 체험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면서 참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체험과 기쁨과 느낌의 확신들은 성령의 역사요, 성령을 받고 살고 있는 징표들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항상 기도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배우며 잘못된 심사언동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께서 분부한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 성도들이 참 쉼과 평화를 얻고 세상을 위해 더 활발하게 섬기며 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세계에는 허물 진 인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허물 진 인간들이 모인 교회이기에 거기에는 언제나 인간의 약점과 냄새가 나기 마련인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서로 용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하며 인내하며 끝까지 참을 수 없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과 세상이 원하는 교회를 이루지 못합니다. 성령의 역사만이, 즉 성령을 바로 받은 성도들만이 갖가지의 시험과 시련에도 불고하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와 그 뜻을 바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성령의 역사적 현존에 대하여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 그 역사적 현존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며,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열매를 맺는가로 알 수 있습니다. 내 삶에 대해 기쁨과 감사 가운데, 그 어떤 여건에서도 이웃들을 사랑하며 화평하게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허물에도 연민의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며 선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큰 시련에도 오래 참고 바라며 모든 맡은 일엔 책임감을 가지고 충성되게 살고 있습니까? 이런 마음과 자세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산다면 이는 성령 받은 역사적 현존으로 사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 받은 이런 역사적 현존을 아주 선명하게 요약해줍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 그 삶 속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self-control)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것들이 성령의 역사적 현존이라고 그 유명한 성령의 열매로 증언합니다(5:22-23).

 

5. 이제 본 메시지의 마감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20세기의 대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6)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회중’(ecclesia of God), ‘그리스도의 몸(body of Christ)’, 혹은 성령공동체(spiritual community)’ 등이 본래 의미에서 교회의 실재성에 잘 맞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성령 공동체는 성령의 현존에 의해 탄생된 새로운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새로운 존재이듯이 성령공동체는 새로운 공동체, 구원받은 공동체입니다. 아래의 이야기들은 (김경재, 틸리히 신학 되새김2018, ()여해와 함께,403-411)를 참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언제 처음 탄생했을까?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사건인데,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 16:16, 9:20)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 교회가 출현한 것입니다. 교회의 핵심 본질은 역사적 예수라는 인간이 그리스도(메시아,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이게도 베드로의 고백 직후,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그리스도 인지(recognition)가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 성령의 감동으로 가능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역설은 인간의 주체적 고백과 수용이 있어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 일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의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자율(自律)도 아니고 타율(他律)도 아닌 신율적(theonomous) 사건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 보도(2)는 성령공동체의 성격이 어떤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여행길 위에서 선택된 12제자와 그들의 스승 그리스도 예수 사이에 있었던 비공개적인 교회 탄생 사건은, 이제 오순절 다락방에서의 성령 강림 체험을 통해 공개적으로 만천하에 새로운 영적공동체로서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을 알려줍니다. 영적공동체로서 교회의 특징을 드러내는 오순절 사건의 요소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영적공동체로서 교회의 탄생은 황홀한 성격(the ecstatic character)을 지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현존이 있을 때 발생하는 일들이 오순절 사건에서 그대로 나타났는데 종교적 황홀 체험과 인간적 이성 구조가 하나 되는 일치 체험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황홀 체험은 자아를 잃어버리는 무아지경의 황홀체험이 아니라 신앙, 사랑, 일치, 보편성이 하나로 통전되는 그런 황홀 체험입니다.

두 번째 요소는 믿음의 창조(the creation of faith)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의 담지자로 여겼던 그들의 스승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눈으로 본 제자들의 신앙은 심한 회의감에 휩싸여 위협받았고 거의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의혹과 불안정 상태에 빠져서 갈릴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성령에 사로잡힌 경험을 통해 의심과 회의를 극복하고 새롭게 신앙을 창조 받은 것입니다.

오순절 사건의 세 번째 요소는 사랑의 창조(the creation of Love)입니다. 오순절 성령체험은 그들로 하여금 즉시 자발적인 상호 섬김과 봉사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낯선 떠돌이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 품에 안았습니다(2:42). 자발적으로 자기를 내주는 사랑이 없다면 성령공동체, 참 교회는 없습니다.

오순절 사건에 네 번째 요소는 모든 형태의 차별과 차이를 극복하는 일체성의 창조(the creation of unity)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개인들, 국적 차이, 오랜 관습의 차이를 모두 극복하고 거룩한 식탁 공동체(the sacramental meal)에 참여하고 모일 수 있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다른 사람들이 사도들의 첫 케류그마(복음선포)를 알아들었던 것은 바벨탑 설화(11:1-9)에서 증언된 인류의 혼란과 분열이 성령 현존 체험 안에서 극복됨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소외되고 찢긴 인류들의 궁극적 재 연합(the ultimate reunion)이 없는 곳에는 참된 성령 공동체, 참교회도 없습니다.

오순절 사건의 다섯 번째 요소는 보편성의 창조(the creation of universality)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현존에 붙잡혀 새로운 존재 체험을 한 제자 공동체는 그들이 듣고 체험한 진실한 생명적 실재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험한 새로운 존재의 능력과 의미로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영적체험이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존재’(the New Being)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이 보여주는 우주적 보편성의 빛에서 볼 때, 모든 개인과 집단과 사물과 사건을 그 새로운 존재의 실재에로 초청하고 이끌어 들이는 선교적 열정이 없는 곳에는 참다운 성령 공동체 곧 참된 교회는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오순절 사건 이야기에서 뚜렷한 요소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담지한 새로운 존재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드러난 새로움의 실재, 옛 사람과 옛 시대가 극복된 새로운 메시아 공동체의 원형이 오순절 첫 교회 공동체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공동체로서의 참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최초로 교회가 역사 속에 등장한 사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바 다섯 가지 필수요소는 언제나 담보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로서의 참 교회는 황홀 경지의 창조, 믿음의 창조, 사랑의 창조, 한 몸 일체성의 창조, 보편성의 창조가 그것이라고 틸리히는 정리합니다. 후대에 교회론이 발전하면서 교회의 네 가지 특징으로 하나의 교회, 사도적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 교회라는 특징도 오순절 성령 공동체로서의 참 교회 원형입니다. 교회의 네 가지 필수 기능으로 선교신학이 정리하는 케류그마(복음선포), 코이노니아(성도의 사귐), 디아코니아(섬김과 봉사), 디다케(진리의 교육) 또한 맨 처음 성령공동체 오순절 교회의 원형적 참 교회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성령강림절과 종교개혁 5백 주년을 보내면서 성령의 역사적 현존이 한국교회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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