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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말씀의 기갈과 생명력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7-12-18 (월) 04:53 6년전 1922  

하나님말씀의 기갈과 생명력 아모스 8:11-13, 히브리서 4:12-13

20171217

 

1. 아모스 선지의 이야기

아모스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고 세상에서 진정 살 길을 전하던 때에, 부유층과 권력층에 밀착한 왕궁의 선지자 아마샤가 여로보암 왕에게 아모스를 밀고하여 아모스는 우리 이스라엘 가운데 들어와 왕을 모반하나니 이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습니다”(7:10). 그리고 아모스에게는 이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7:11-13)고 했습니다.

그때 아모스의 답변은, 자기는 양떼를 모는 농부에 불과하나 하나님께 잡힌 자로 그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전하는 것이라며 이제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7:16)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그대들은 비록 큰 종교의 행사를 하며 헌화하나 네 가족들과 네 농토, 네 백성은 사로잡혀 고국을 등지고 떠나리라고 경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선포한 말씀이 아모스의 고장에서 물과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기갈이라며 통분한 것입니다.

2. 초대 교부들의 역사에서 진리 말씀의 증언자, 시대의 예언자

초대 교부들의 역사에서 서방을 대표한 암브로시우스와 동방을 대표한 요한 크리소스톰의 하나님 말씀의 용기 있는 증언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시대의 중심에 서서 용기 있는 자세와 행위로 진리와 정의를 외친 교부들이었습니다.

밀란의 감독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7-397)는 새 주교로 임명을 받고 먼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자신의 임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수사학자이며 동시에 논리성, 명료성, 호소력을 갖춘 설교가였습니다. 어거스틴도 젊은 시절 수사학을 배우고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서방교부로서 융통성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한번은 어거스틴이 밀란의 예전이 로마와 다르다고 지적하자, 암브로시우스는 예배방식은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고 밀란에 오면 밀란의 법을 따른다”. 바로 그의 이 조언이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른다!”(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는 유명한 경구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작고 가냘픈 체구였지만 강한 의지의 사람으로 권력 지향적인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독신의 우월성을 가르치며 평생 홀로 살았고 수도사처럼 청빈했으며 연회도 즐기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많은 예산을 구제에 힘쓴 그는 가난한 시민들의 존경받는 친구였고 또 권력자의 불의를 용기 있게 지적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지지했던 동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잘못도 질타하였습니다.

390년경, 그리스 데살노니가에서 최고 인기의 전차 경주자가 동성연애 협의로 투옥되자 군중들은 석방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렸고 총독까지 살해 하였습니다.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즉시 군대를 보내 전차 경기장을 봉쇄하고 무려 7천명이 넘는 시위대를 처형 하였습니다. 그릇된 폭력시위에 대해 너무도 과한 처벌이었습니다. 황제의 조치에 대한 비난이 컸지만 절정의 권력을 가진 황제에게 감히 누구도 함부로 질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공식서한을 보내 큰 죄를 지적하며 교회로부터 파문하였으며,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폐하가 신앙의 정열은 있으나 천성이 급하여 흥분하면 인내할 줄 모릅니다. 당신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니 회개해야 합니다. 눈물의 참회만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황제가 회개하기까지 대면하는 것도 성찬을 베푸는 것도 거부하였습니다. 파문은 무려 8개월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버티던 황제는 굴복하여 황제 복 대신 베옷을 입고 교회당에 나와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후 황제는 의미 있는 법규 하나를 제정했습니다. 사형판결을 받고 30일 동안은 그 형을 집행하지 못하고 재심청구도 받는 법이었습니다. 성급한 사형선고와 즉각 집행을 명했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또한 백성들의 추후 억울한 죽음을 줄이려는 의도였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어거스틴, 제롬, 그레고리 대교황과 함께 서유럽 그리스도교 기틀을 세운 네 대교사”(the Four Great Doctors)로 추앙되었습니다. 역사와 시대의 주요한 잇슈의 뒤안길로 물러나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당시 역사의 한 복판에 서서 용기 있게 진리와 말씀의 증언자로 충성한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분의 교부는 궁궐과 광야의 대결을 한 안디옥의 감독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349-407)이 심히 그리워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시리아 안디옥 출신으로 일찌 기 수사학과 철학, 신학에 심취하였고 수도사가 되어 극단의 수련도 한때 받았습니다. 안디옥의 사제가 된 후에는 곧 뛰어난 설교자로 이름이 났습니다. 그의 설교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사람들은 그에게 황금의 입”(golden mouth)이란 뜻의 크리소스톰별칭을 붙여주었고 이는 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신학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의 우의적인(allegorical) 성서해석과 안디옥의 문자적 성서해석을 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백성들에게 성서를 실천적인 규범으로 가르쳤습니다.

398, 크리소스톰은 전격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초빙되었습니다. 가장 영예를 얻은 그는 가장 화려한 도시에서 가장 청빈한 수도사의 모습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병원을 세워 빈민 환자들을 치료하고 자선을 강화하였습니다. 대중들은 대주교를 환영했지만 모두가 크리소스톰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황족들과 귀족들 그리고 고위 사제들은 대주교의 질책적인 설교를 듣고 모두 적대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향락과 사치에 중독된 여인 황후 유독시아(Eudoxia)는 대주교를 싫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소스톰은 호사스런 방종을 견책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제국 내에 굶어죽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들은 매일 잔치를 벌이며 헐벗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실크 로 치장하고 다닙니까?”

대주교는 끝내 그 직책에서 5년 이상 버티지 못하였습니다. 403년 황후와 귀족들은 주교단을 장악하여 크리소스톰을 파면하고 귀양을 결정했습니다. 그때 콘스탄티노플에 갑자기 지진이 발생하자 이를 하늘의 진노로 여긴 황제는 크리소스톰을 복귀 시켰습니다. 황후 유독시아는 교회당 앞에 자신의 석상을 크게 세우자 대주교는 여지없이 이를 비판하였고, 강직한 크리소스톰의 모습은 부패한 황궁에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달 만에 황제는 크리소스톰을 끌어내리고 변경으로 귀양 보냈습니다. 크리소스톰의 귀양지는 수도에서 가장 먼 아르메니아 코카서스였습니다. 407년 두 명의 젊은 병사가 낮에는 뜨거운 날씨로 밤에는 매서운 추위로 일관한 일기 속에 60세의 대주교를 학대하며 두 달 동안을 끌고 갔습니다. 크리소스톰은 결국 이송 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 한 문장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Glory be to God for everything!).

크리소스톰은 60년의 생애가운데, 97개월 동안 풍파의 세월을 견디며 영웅적인 삶으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직을 수행했습니다. 그중 33개월간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주교직을 박탈당한 채, 외지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영웅적인 순교자처럼 혹독한 여정의 시련 속에서 그렇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먼 타향에서 소박한 무덤에 묻혀 27년 동안 보냈습니다. 하지만 칭송받을 의인은 영원히 기억 된다”(잠언10:7)는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말씀처럼, 그 어떤 먹구름이 몰려와도 태양을 영원히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구름은 흩어지고 태양은 다시 빛납니다. 이렇듯 요한 크리소스톰도 대주교로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빛날 것입니다...

동방정교회는 127일을 성인의 유해이장을 기념하는 축일로 삼아 신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표현합니다. 결국 요한 크리소스톰은 콘스탄티노플로 유해로 귀환하였습니다. 그것은 승리의 행렬이었습니다! 성인의 유해가 지나가는 곳마다 수많은 인파, 사제들, 수도자들이 몰려나와 길을 가득 채웠습니다. “믿음의 버팀목이었고 겸손의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분,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가난함 속에서도, 풍요를 누리신 분이며 회개의 상징이 된 분! 그분을 다시 곁에 모시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찬양합니다.”라고 합니다.(요아니스 알렉시우, <성 요한 크리소스톰> 2014, 정교회출판사)

요한 크리소스톰은 대바질(Basil the Great),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등과 함께 동방교회에서 위대한 세 교사들"(three Great Hierarchy)로 추앙되었습니다. 동방지역의 교회 건축물에는 빈번히 이들 세 교부들의 성화가 그려졌습니다.

로마역사에서 향락의 자리를 탐한 이들은 수없이 많았어도 황제들의 부도덕함을 꾸짖고 백성들을 대변한 이들은 적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나 요한 크리소스톰을 위대한 설교자로 부르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수사학이나 화술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대변하는 힘, 청빈의 삶, 그리고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굳어져가는 교회와 추락하는 로마제국을 직시한 시대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3. 오직 믿음, 오직 말씀, 평화 기도회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며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간증과도 같이 전했습니다. 개신교에서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은 교회와 신앙, 교세나 대소의 사제가 아니라,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못 듣는 여부가 영적 생명과 죽음을 판가름한다고 했습니다. ‘순수한 예언자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는 이것이 가장 슬프고 참을 수 없는 파괴적인 것이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열망해도 들을 곳이 없다면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아모스나 교부들이나 루터가 지적하듯 똑같은 현상을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물량적으로 대단하고 소비성향이 극심한 현실에서 축복을 받았다는 교회들이 오히려 이런 시대적 분별을 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밀려나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신앙의 선진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스런 진언에도 우리가 자본주의와 물량주의, 혹은 한국의 샤머니즘의 기복신앙에 눈이 가려 이런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슬프고 우리의 남은 생을 불행스럽게 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의 장엄한 건축을 한 인간들에게 신앙의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하고 큰 것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서로라고 선언하며 당시의 종교권력에 맞섰던 개혁자 루터의 선언은 더욱 어마어마한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1500년 동안 쌓아온 모든 전통, 제도, 권력, 그리고 신학에 대하여 그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이 프로테스탄트입니다. 새로운 개신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 니콜라이교회가 있습니다. 1165년에 건축된 교회인데, 1539년 루터가 그곳에서 여러 번 설교함으로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시작된 곳입니다.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1989년에 베르린 장벽이 무너졌는데, 니콜라이교회의 월요평화기도회가 그것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의 교회는 매주 월요일마다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1982년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5시에 모이는 평화기도회는 늘 감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유럽의 평화유지, 가난과 질병, 환경파괴 등의 주제를 갖고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모였고, 그러나 중단되지 않았고, 198994일에는 기도회가 끝났어도 참석자들은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 앞 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고 시민들이 합세 했습니다. 월요평화기도회는 월요데모가 되었고, 모이는 숫자와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1989119일 베르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루터의 정신을 이어받은 니콜라이교회는 지금도 평화의 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하나님나라 운동을 전개하는 교회들과 하나님의 새 백성들이 있습니다.

4. 현존하는 하나남의 인간성

말씀의 신학자인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형태를 말했습니다. 선포된 메시지 말씀, 기록된 성경말씀, 화육하여 인간이 된 예수의 계시된 말씀으로 그의 교의학에서 가르쳤습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잘 분간하고 이해와 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세상에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를 바로 이해하고 믿고 따라 살 때에 하나님의 말씀 또한 옮게 깨닫고 바른 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단의 말씀이 옮게 해석되고 선포될 때, 그 말씀을 바로 깨닫고 따라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생명은 약동하고 생명의 삶과 풍요로운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목마름을 채우고 그 생기를 맛보며 고백한 히브리서 저자의 말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4:12-13)라고 합니다. 누구나 그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살게 될 때 그 위력은 세상 그 무엇도 감당하지 못하며, 인간 심혼 골수까지도 꿰뚫고 감찰하며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불란서 작가 빅토르 유고가 영국은 셰익스피어와 성서를 가진 나라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았고 성서는 영국을 만들었다고 한 것은 성서의 이런 위력을 보고 체험한 고백입니다. 그는 영국이 그 후 혼란한 것을 보면서 이는 영국이 성서를 떠났기 때문이라 부연합니다. 이는 성서의 위력이 세계와 역사, 인간의 모든 것을 송두리 채 뒤흔들고 새롭게 함을 발견하고 믿었던 것이라 여깁니다. 문호 괴테가 독일의 위대함을 루터의 성서번역에 있다면서, 훌륭한 악성이나 문학가도 그런 덕이라 했던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같은 체험의 고백입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도스토예프시키의 <죄와 벌>도 다 성서정신의 영향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특히 시베리아의 그 추운 눈보라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 정신을 되찾고 저들 백성과 세계에 새로운 빛을 밝힐 수 있었던 것도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의 첫째, 둘째, 셋째 덕목을 겸손이라 했듯이 우리는 끝까지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오만이나 잘못된 집념을 벗어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함을 깨닫고, 그 말씀을 찾고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 참된 하나님말씀을 찾아듣고 깨달아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생을 살도록 기도하며 노력합시다.

현대인의 삶이, 오늘의 교회가 왜 메마르고 생명력을 잃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옆에 있지만 오늘의 세태가 눈을 멀게 하고 우리를 목마르게 하는 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참으로 만나야 합니다. 복음서에 그려진 예수의 삶의 이야기에서 폴 틸리히가 묘사한 영원한 지금"(the eternal now)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분은 생명의 원천이며, 사랑의 원천이며, 존재의 근거로 이해된 하나님의 의미에 대한 인간의 초상화입니다. 본 회퍼 목사와 존 로빈슨 감독의 표현대로 예수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the man for others)이며 또한 하나님의 인간적 얼굴"(the human face of God)이었습니다. .

존 쉘비 스퐁 감독은 그의 책, <Why Christianity Must Change or Die,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에서 현대인의 삶의 의미와 하나님을 절박하게 찾고 있는 사회, 또한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공백상태에 처하게 된 사회에서 정직한 신앙 고백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용기 있는 교회 개혁을 진술하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유배지로 몰아 낸 몰상식함에 대해 고뇌하고 있습니다’. 스퐁 감독은 하나님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계시한 것은 바로 예수의 존재,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the full humanity of Jesus)이었다. 또한 우리를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의미와 연결시킬 것도 역시 우리 각자의 존재, 우리의 완전한 인간성(our full humanity)이다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충만한 삶을 통해서, 무진장한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잠재력을 용기 있게 표현함을 통해서,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을 모방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실재하시며, 생명의 잠재력, 사랑의 능력, 존재의 용기 속에서 발견되는 현존(presence)입니다. 예수는 그 생명력이 넘치는 분, 사랑이 충만한 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킨 용기를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존재의 근거인 하나님의 심장 속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신앙적 및 인간적 성실성을 지니고 우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며, 역동적 삶을 살게 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주,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며, “그리스도라 부르며, 내게 하나님을 보여 준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위에 성령이 내렸을 때(2), 그것이 세찬 바람, 루아흐처럼 불었으며, 그 결과 인간들의 모든 거짓과 위선으로, 오만과 미움으로 만들어진 장벽들이 무너졌고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초대 공동체가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기원후 4세기와 5세기에 그리스도교회가 그 신조들을 만들었을 때, 그들은 나는 성령을 믿사오니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루아흐네페쉬로서의 영은 항상 생명을 주시는 분(life-giver)을 의미 합니다. 아울러 예수는 영의 사람이었으며,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창문이었으며(a window into the holy), 하나님의 현존(a God presence)입니다.

하나님의 현존’, ‘영원한 오늘이란 것은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요, 성서가 하나님 말씀으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소중히 여기며, 저 세상보다는 이 땅의 세계를, 먼 훗날보다는 오늘을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예수는 이 역사의 현실 복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싸우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오늘의 하나님 말씀입니다.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라틴어는 하나님 앞에서일을 처리하듯 하라는 뜻입니다. 이 일을 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하는 것이고, 저 일을 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통찰력과 정직성, 책임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격의 눈은 양심입니다. 이 양심이 어두우면 전인격이 어두워집니다. 온세상을 비치는 주의 영광도 그에게는 암혹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양심이 허물어진 것은 아닌지 탄식되며 깊이 살펴봐야 합니다. 양심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하나님의 진리 생명말씀이 새겨진 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양심이 인격의 빛이라면 그리스도 현존의 교회는 사회의 양심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 그 근본부터 찾아야 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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