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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30주년에 본 공주운동사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7-06-11 (일) 21:43 6년전 1816  

6.10항쟁 30주년에 본 공주운동사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운동이 극에 달했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는「4·13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사회 각계 인사들의 비난 성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해 5월 27일 재야세력과 통일민주당이 연대하여 형성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이후 국민운동본부는 6.10항쟁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6월 18일을 ‘최루탄 추방의 날’로 선포하고 최루탄 추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날 전국 16개 도시 247곳에서 일제히 시작된 이 대회에는 150여만 명의 민중이 참여하였다.


6월 24일 전두환과 김영삼의 여야 영수회담이 결렬되자, 6월 26일 국민운동본부는 ‘국민평화대행진’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이 날의 평화대행진은 사실상 유월항쟁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에서 130여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경찰은 전국적으로 10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했으나 효과적인 진압작전을 벌이지 못하였다. 전국적으로 경찰서 2개소, 파출소 29개소, 민정당 지구당사 4개소 등이 파괴 또는 방화되었으며 3,467명이 연행되었다. 이 날의 평화대행진은 당시 민주화투쟁의 열기를 한군데로 집약시킨 결과물이었다. 악한 정권은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구속수감하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민주화 투쟁은 가열차게 심화되어 갔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6·29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


우리 공주에서도 민주쟁취 국민운동 지부를 결성하고 최루탄을 맞으며 가열차게 민주화운동을 펼쳤었다. 사진과 자료를 통해서 당시 상황을 살펴보려고 한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곳 공주에서는 6. 26 오후 6시에는 경천교회 신두수 목사를 비롯하여 고종혁, 김기황, 김태신, 류태석, 박용규, 박춘삼, 변종섭, 석승기, 윤재천, 이상호, 조병권 목사와 100여명의 학생 청년들이 공주시장 입구 중앙약국 앞에서부터 박물관 4거리까지 평화행진을 하였다. 고종혁 석승기 목사는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였다. 참으로 역사적인 시위였다. 물론 10여분 만에 경찰의 제지와 석목사 외에 노동자 학생 등 7명이 연행되는 과정에서 석목사는 6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다시 7시에는 시장 - 전신전화국 앞에서 시위가 있었는데 공주사대 3학년 황우숙 외 4명이 추가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도 박물관 4거리에서 의료원까지, 중앙약국, 터미널, 수정약국, 현대슈퍼 앞에서 산발시위, 밤 10:40경에야 시위가 종료되고 반죽동 세광교회에서는 34명이 모여 평가회와 연행자 석방을 위한 농성에 들어가서 새벽 1시 30분 전원석방, 농성을 해제하는 일이 있었다.


7. 31일에는 교동성당에서 공주민주운동 청년연합 발기인대회가 있었고,

8. 15에는 공주민청, 공주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공주사대 민주실천제적생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8.15 민족해방절기념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9. 7일에는 중앙감리교회에서 연기. 공주인권위원회가 결성되고,

9. 26일에는 우리 세광교회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공주지부 창립대회를 가지던 중(강사/ 박형규 목사) 최루탄사건이 발생하여 오랫동안 투쟁하기도 하였다.

9. 27 대전노회 긴급 교회와 사회위원회가 세광교회에서 모이고

9. 28 기청대전연합회, 기청전국연합회, 충남인권선교위원회가 모여 대책을 논하고

10. 2 대전노회가 비상으로 세광교회에서 모여 여러 대책을 논의했으며

10. 13 대전시찰 목사들이 세광교회에서 철야기도를 드리고 귀로에 새벽 6:35 공주서에 연행되어 농성돌입 이상호 목사는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출석요구서 3회나 받았다.

10. 14 치안본부에 항의, 공주서장이 정보과 사무실에 와서 연행한 목사들에게 사과하므로 일단락되었다.

10. 19 금강, 공주인권위와 충남인권선교협의회가 세광교회에서 인권세미나 및 성전수호기도회. 강사/ 김동완, 이해학 목사

11. 8 대전동부시찰회 성전수호 및 공명선거를 위한 기도회. 강사/ 문익환 목사

11. 26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대전 중원교회당에서 성역수호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역자대회를 가진 후 도청 앞까지 가두시위


12. 16일 제13대 대선까지 가열차게 민주화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직선제 개헌은 이룩하였으나 김대중과 김영삼 양 김씨가 표를 갈라먹어 다시 군부가 이어갔다. 당시 세광교회 주보를 보면 온통 운동권 소식지를 방불하였다. 그리고 각계의 민이 주인되는 의식이 깨어나고 모아져 민주화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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