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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예배] 내 평생에 가는 길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2-10-30 (화) 00:55 11년전 9336  
방금 “내 평생에 가는 길” 함께 불렀습니다.
 
이 찬송가에 대한 우리들이 일반적 느낌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아무런 걱정 없이
흥얼대는 찬송 같다 것입니다.
찬송가 선율도 잔잔하지만
특히 ‘평안’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지 않나 싶습니다.
 
이 찬송가의 가사에 해당하는 시를 쓴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상황에서 이 시를 적었을까요?
 
그런데 작사자가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썼는지 살펴보면
너무나 뜻밖입니다.
 
작사자 스팻포드(H. G. Spafford)라는 영국 출신 미국 변호사이자 사업가였습니다.
시카고의 무디교회에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註1]
부지런히 일도 해서 많은 재산도 쌓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인해 사업장은 잿더미로 변합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시카고시(市)의 복구와 어려운 일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를 썼던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 해에 큰 아이를 성홍열로 잃고 맙니다.
 
이런 역경 때문이었는지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어 의사로부터 휴양을 하라는 조언을 받는데요, 계절적으로 지금쯤인 1873년 11월에 가족 전체(네 딸과 아내 그리고 스펫포드)가 영국에 다녀올 계획을 잡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 영국을 배로 왕래했습니다. 증기선으로 약 12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11월 15일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 스팻포드에게 일이 생겨 아내와 딸들이 먼저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이 프랑스 선적 ‘빌 드 아브르’(VILLE DU HAVRE)였습니다.[註2]
 
이 배 이름이 이 찬송가의 원 제목입니다.
이 배와 찬송가 가사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겠네요.
 
항해한지 일주일이 지나서 빌 드 아브르 배는
안타깝게도 다른 배와 충돌한 후 침몰하고 맙니다.
226명이 익사하고 47명만이 구조된 사고였습니다.
스펫포드의 가족들이 5명이나 타고 있었는데요.
실신한 채 겨우 구조된 아내가 친 전보는 단 두마디였다고 합니다.
 
“혼자 살았음”
 
제가 보기에 스팻포드가 겪는 일이 구약의 욥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을 연거푸 겪고 있네요.
 
스팻포드는 참담한 심정으로 영국으로 가서 부인을 만난 후
다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오게 되는데요. [註3]
 
항해 중 배의 선장이 찾아와 이런 말을 건냅니다.
 
“스팻포드씨, 지금 우리는 당신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참고 참았던 슬픔과 왠지 모를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선실로 돌아온 스팻포드는 그 터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밤새 몸부림칩니다.
 
“하나님,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시련을 안겨주시는 것입니까?”
 
원망과 좌절, 분노가 섞인 기도로 밤새 몸부림치는데 . . .
얼마나 되었을까요, 선실의 창문 밖으로 먼동이 터 옵니다.
 
이 부분은 야곱을 연상하게 하는군요.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 ‘기도에 준하는 것’을 했는데
그때도 이렇게 동이 터 옵니다. 상황은 희망의 아침이 아니었습니다.
에서를 피해 재빨리 도망갈 궁리만 해왔는데
이제 엉덩이뼈가 부러져 다리를 질질 끌고 가야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 구절에 감지되는 야곱의 마음은 희망의 아침입니다.
여전히 막막하지만
묘하게도 당면 문제가 해결되어가고 있음을
야곱이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스팻포도에게도 그런 여명이었습니다.
이 찬송가의 관련 성구가 원래는 빌립보서 4장 7절인데요.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스펫포드가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때 적은 메모가 이 찬송가의 가사입니다.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에서 끄적거린 낙서가 아닙니다.
고통의 한복판에서 새긴 고백이지요.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가사에 이런 상황이 잘 안 나타 있는데다
후렴을 ‘내 영혼 평안하다’로 번역해서 이 찬송의 분위기를 오판하기 쉬운데요,
이 찬송가 가사에서 ‘평안’은 안락함을 함축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위로하심을 느낀다” 정도의 의미로 보여집니다.
 
1절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어떤 운명 속에 있든지 간에, 주님께서 이렇게 다짐하라고 하시는구나.
“신자로서 이 상황을 담담히 감내해내겠다”
 
직역을 하면 이런 다짐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2절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많은 고난이 닥쳐올 때 이 생각을 부여잡고 내 삶을 추스르겠다
“그리스도께서 속수무책인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다!”
이 생각을 부여잡고 주님께 의지하자.
 
오늘 주보글에 원 가사의 뉘앙스를 살려서 옮겨 놓았는데요.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註4]
 
[1절]
 
잔잔히 흐르는 강처럼 평온한 인생길을 가고 있을 때든지,
소용돌이치며 덮치는 험한 파도 같은 슬픔을 겪을 때든지,
 
그 어떤 ‘운명’속에 있든지 간에,
이렇게 고백하라고 주님은 가르쳐주셨습니다.
 
“신자로서 이 상황을 담담히 감내해내겠어!”
 
 
[2절]
 
사탄이 나를 괴롭히고, 많은 고난들이 닥쳐올 때
내가 가진 이 복된 확신으로 삶을 중심을 잡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어찌할 바 모르는 이 상황을 돌아보시고
나를 위해 주님의 보혈을 흘려주십니다.
 
 
찬송가 가사가 성경은 아니지만
찬송가에는 이렇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내공이 담겨있습니다.
이 믿음의 선배들과 마음을 합하며 찬송을 부르면
내 믿음이 그 믿음에 공명되고
그 찬송이 소중한 우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찬양예배 그렇게 드리시므로
신앙도 깊어가는 가을되시길 바랍니다. [註5]
 
[1] ‘손님’으로 가끔 예배 참여하시는 분이 시카고에 20여년 사셨고
      여기의 무디교회와 다소간 관련도 있으셨다고 공동식사 때 말씀해주셨습니다.
      세상이 좁아요.
[2] 설교시간에 이 프랑스 말의 뜻은 모르겠다고 했는데,
     예배 후 두 분이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프랑스의 항구도시 이름이 들어있답니다.
[3] 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 4권의 책을 참고했는데요,
     어떤 항해중이었는지 서로가 좀 틀립니다.
[4] 이 이야기와 직접 관련이 있는 가사는 1절과 2절인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원 가사를 여기에 적어 놓습니다.
 
1.
When peace like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2.
Though Satan should buffet, tho' trial should come
Let this blest assurance control,
"That Christ has regarded my helpless estate,
And hath shed his own blood for my soul"
 
[5] 10월 28일 주일예배를 찬양예배[청년부 주관]로 드리면서 전한 말씀증거입니다.
     최대한 짧게 했습니다.
 
 
 

김창환 2012-10-30 (화) 17:11 11년전
귀한 글, 감동입니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제 카페에 옮겨갑니다.
감사합니다.  신목사님!
주소
신솔문 2012-10-30 (화) 19:42 11년전
신앙생활에 요긴한 글은
평소에 김목사님께서 많이 제공해주시고 계시지요.
이러한 '복음유통사업'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려고 저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글의 미주에서 언급했듯이,
스펫포드의 "상황"은, 신뢰할 만한 책 4권을 참고하여 재구성했습니다.
두 분의 찬송가해설가와 두분의 신학자의 글입니다.

제가 추가한 것은
욥과 야곱과 연결시킨 것
무엇보다도 원래 가사를 직역한 것입니다.

직역을 하니
1절에 "이런 고백을 하라고 주님이 가르쳐주셨다"라든가
2절에 "이 복된 확신으로 삶의 중심을 잡겠습니다"라는 부분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이 부분이 시사하는 바는
스펫포드가 고백하는 평강이
안락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평강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신앙으로 '재처리'한, 의지적인 평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샬롬.
주소
이상호 2012-11-13 (화) 08:08 11년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더욱 구체적인 자료제시와 해설이 은혜롭습니다.
원문과 해석과 맨 아래 찬양을 직접 들으며 읽으니 참 좋습니다.
주소
신솔문 2012-11-13 (화) 16:35 11년전
예배시 회중들이 4부로 부를 수 있다면 더욱 좋을텐데요.
김홍전목사님(신학자)과 관련있는 교회에서는
성가대가 없는 대신
예배 후 전교인이 다음 주 찬송을 연습한다고 해요.
(김목사님과 가까운 분께 들은 것인데 '예배 후인지 다음 주 찬송인지'는 가물가물합니다.)

유튜브 찬송은 일반 성가대가 아니고
음악 전문가들인 것 같습니다
(특히 노인어른과 솔로 분들은, 한 복음성가중창단의 멤버같아요)

이상호목사님
밝고 신실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계속 목회칼럼란 따뜻하게 해주셔요.

샬롬.
주소
신솔문 2015-03-03 (화) 19:53 9년전
영상이 끊겼네요.
이렇게라도 연결합니다.

http://youtu.be/PgeyYqaDroo
주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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