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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솔문

상위 프레임으로서의 신앙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2-10-16 (화) 13:38 11년전 2696  
어느 날 세실과 모리스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다.
 
“모리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랍비께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떻겠나?”
 
세실이 랍비에게 가서 물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정색을 하며 대답하기를) 형제여, 그건 절대 안 되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그럴 순 없지.”
 
세실로부터 랍비의 답을 들은 모리스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이번에는 모리스가 랍비에게 물었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
 
 
심리학자 최인철 교수가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든 이야기입니다.
 
동일한 행동이지만 어떤 것을 기본으로 보느냐에 따라 행동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나 현상을 바라보는 이러한 마음의 틀을 심리학에서 프레임(frame)이라고 하는 것이죠.
 
한 사람의 마음속에 이러한 프레임들은 아주 많으며 대부분은 계층화되어 있을 겁니다. 즉 삶의 지엽적인 것을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프레임들이 있는 반면 이러한 프레임들 전반에 영향을 주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프레임도 있는 것입니다. 최교수는 후자의 프레임을 “의미 중심의 프레임” 또는 “상위 프레임”이라고 부르며, 이 상위 프레임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상위 수준의 프레임이야말로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견지해야할 삶의 태도이며, 자손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자녀들이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도록 할 수만 있다면, 거액의 재산을 남겨주지 않아도 험한 세상을 거뜬히 이기고도 남을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는 것과 다름없다.>
 
일반 서적이라 명시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겠지만 행간을 읽으면 최교수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염두에 두고 이 대목을 서술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는 상위 프레임의 사례를 캠폴로(T. Campolo) 목사님의 일화를 각색해서 제시하기도 합니다.
 
<한 해는 뉴저지 주 캠던의 우리 선교회에서 동네 청소의 날을 계획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큼지막한 봉지를 주면서 온 동네의 쓰레기를 주워 담으라고 시켰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달려 나가 동네의 쓰레기란 쓰레기는 죄다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차로 그 동네를 돌다가 한 소년을 보았다. 여덟 살쯤 되었을까, 소년이 질질 끌고 다니는 커다란 봉지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했다. 나는 차창을 내려 소년에게 소리를 질렀다. “얘야, 뭐하는 거니?” 그러자 나를 전혀 모르는 그 소년 역시 큰소리를 대답했다. “예, 지금 미국을 청소하는 중이에요.”>
 
‘동네 청소’ 프레임이 아니라 ‘미국 청소’ 프레임으로 자신의 활동을 본 소년의 사례를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이집트에서의 역경을 “큰 그림을 가지고 해로운 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프레임(창 50:20)으로 보았고,
사도 바울은 모든 상황을 자신과의 관계 속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프레임을 통해 적응해버리는 비결(빌 4:12~13)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 프레임이야말로 최교수가 언급한 대로 “죽는 순간까지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이며 “자손들에 물려줘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하나님의 통치)을 밭에 감추인 보화(마 13:44)하셨던 것이지요.
 
하위 프레임에 갇혀 사는 이웃들에게 감추인 보화를 찾게 해주는 것이 바로 전도(傳道)입니다. 전도 마인드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이름조차 멋진 전도가 ‘교회 번창’을 위한 호객 행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전도에 대한 이러한 중심(中心), 진심(眞心), 초심(初心)이 필요합니다.
 
- 전북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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