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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사랑 가운데 뿌리박고 서라.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12-03 (토) 15:29 12년전 4126  

제목 :사랑 가운데 뿌리박고 서라.

롬 8:35-39, 엡 3:14-19

제가 1988년 미국과 캐나다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50%가 넘는 이혼율과 급증하는 자살률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나라 30대의 이혼율은 10%에도 못 미쳤고, 자살률은 염려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20년 남짓, 우리나라 이혼율과 자살률이 세계 제1위라니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몇 년 전에는 유명 연애 인들의 자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더니, 금년에는 많은 공직자들이 뇌물 수수에 연루되어 자살하고 있습니다. 최근 결혼하고 실망한 한, 한 젊은 여자가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천사와 결혼한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악마더라. 결혼하기 전, 데이트할 때에는 바다 가재를 대접하더니, 결혼 후에는 아무 대접도 없이 집에서 나면만 먹으라 하는구나!”

요즘 결혼 정년 기에 있는 우리 자녀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잘 살아주어야 할 텐데, 이런 염려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랑은 우리 사회에서 잘못 인식되어 왔고, 크게 남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잡지와 팝송, TV 연속극은 사랑을 Sex와 관련시켜 육적이고, 감성적인 면만 자극해 왔습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돈을 많이 써야 그것이 진짜 사랑인 줄 알고, 향락주의로 변질되고, 상업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유행가요들은 성을 성적 대상물로 보도록 만듭니다. 남성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게 하고, 여성을 상품으로 보게 합니다. 이와 같은 물질적인 사랑, 육적인 본능적 사랑은 그 효과가 마치 마약과 흡사해서 쉽게 사랑의 중독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그 효력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그릇된 사랑을 바로 잡아주고 책임성 있는 올바른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있습니다. 선거철이 올 때마다 대선주자들은 어김없이 부정부패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집권하게 되면 어김없이 부정부패에 빠져버립니다. 정의란 돈과 권력에 의해 쉽게 타락하고 부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한결 가치 사회제도의 개혁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개조하는 일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제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선하지 못하면 개혁은 공연불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는 미성숙한 사랑 때문에 자녀들의 가정이 무너져 가고, 잘못된 인간성 때문에 번번이 개혁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실은 우리 모두가 개혁의 대상이며, 언제나 실패자의 중심부에 설 수 있습니다. 어떻게 미성숙한 사랑을 성숙한 사랑으로, 불의하고 악한 인간성을 선하고 정의롭게 바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본문말씀이 주고 있어요.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저 자신의 한계에 꾸준히 도전해왔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간구를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똑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고 그 사랑에 뿌리를 박고 서라”는 거요.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 같은 미성숙한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믿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마음에 흘러 들어오게 합니다. 이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있는 악한 것들과 불순물을 녹여내고 정화시켜줍니다. 사랑은 건강한 인격체를 만들어 주는 힘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형성되고, 성장하며, 성숙한 인격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악하고 불순한 것들을 정화시켜주고,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그것을 우리는 아카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 중심의 타자사랑입니다. 온 인류를 포괄하는 우주적 사랑이며,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무한 사랑을 뜻합니다. 아카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를 내주는 사랑입니다. 그들이 꼭 필요로 할 경우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도록 만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그 사랑의 범위를 점점 더 확대시켜가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자신의 사랑에서 출발해서 원수까지 포함하는 큰 사랑으로 확대시켜 갑니다. 그래서 과학자 아인슈타인(Einstein)은 “그리스도는 사랑의 범위를 넓혀서 모든 생명체뿐만 아니라, 자연까지도 포함하게 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그 사랑이 나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이 사랑으로 모든 생명체와 자연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정신분석가인 프로이드(Freud)는 “정상적인 인간이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본래 인간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될 때, 본질이 사랑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인해서 파괴되고 부패해서 사랑의 능력이 대부분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상실한 사랑의 능력을 회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많은 노력과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학원, 해외 연수, 고액 과외 등, 온갖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일은 자녀들이 사랑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자랄 수 있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저들에게 건강한 인격이 형성되지를 못합니다.

부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아무리 조건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산다 하더라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병들게 됩니다. 고 최진실 씨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는 인간이 선망하고 있는 미모, 재능, 인기, 돈,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녀가 자살하는 것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것들은 화려한 무덤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랑 없는 가정이 너무나 많아요. 제가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부유한 가정입니다. 부인이 몹시 아파서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 거예요. 더 이상 살고 싶지를 않다는 거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버렸습니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다가 밤늦게 잠이 들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거요. 의사는 “그 여인의 병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먹는 약은 필요가 없고, 매일 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 한 달 동안만 포옹해주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고칠 수 있다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어떻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느냐는 거요. 그러니 절망입니다.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거요.

얼마나 기쁘고도, 슬픈 처방입니까? 기쁜 것은 병이 없고, 돈이 들지 않는다고 하니 기쁘고, 슬픈 것은 치료받을 길이 없으니 슬퍼요.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고 만들어 가야합니다. 꼭 부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친구도 좋고 그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만 있으면 됩니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이란 그의 특성상 내가 먼저 사랑하면 반드시 나도 사랑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면 받게 되고 받으면 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순환됩니다. 정신치료의 근본 원리는 환자로 하여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만들어 주는데 있다고 해요. 환자는 사랑을 주고받는 가운데 건강이 회복되어 갑니다.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는데 이상이 생기면 병들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모든 정신병이 이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우리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넓고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깊게 뿌리박고 있다는 것은 다시없는 은혜요, 축복인줄 아시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역경을 이겨내게 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약해 보입니다만, 이 사랑보다 더 강한 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설 때, 그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목적이 주어집니다. 비엔나의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플랭클(Victor Frankle) 박사는 ‘존재의 가치’라는 유명한 책을 쓴 유대인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나치당에 붙잡혀 그 악명 높은 폴란드 아우슈비츠(Auschwits)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기적같이 살아난 사람입니다. 수용소 안의 생활은 인간성이 완전히 박탈당하고 동물같이 비참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 곳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유행병이나, 추위, 굶주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빅터 플랭클은 “우리가 제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더라도, 삶의 의미와 목적만 주어지면, 삶의 길은 찾아 진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절망을 이기고 살아나올 수 있게 된 것을 이렇게 증언해줍니다. “추운 겨울 새벽 먼동이 틀 무렵, 나는 친구와 함께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함께 걷고 있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이 추한 몰골을 아내가 본다면 어떻게 될까?” 플랭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햇빛 속에서 아내의 얼굴을 환상 중에 보게 됩니다. 그 때 플랭클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전 광석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아내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그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습니다. 살아야할 분명한 이유와 가치를 준 것입니다. 이 삶의 목적과 가치가 그를 절망에서 건져준 것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지탱시켜 주는 힘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랑이 어떠한 역경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랑으로 이길 수 없는 어려움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죽음까지도 이긴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산 사람, 사도 바울의 증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따라서 하십시다. “사랑은 절망을 이긴다. 죽음까지도 이깁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우리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가정의 행복이 왜 흔들립니까? 자녀들의 가정이 왜 걱정이 됩니까? 부정부패가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깊이 뿌리를 박고 서십시오.

저는 목사가 된 이후,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 오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익히고, 가르치고, 선포해왔습니다. 실천해보려고 나름대로 노력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압니다. 우리 모두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선포되고 실천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것을 본 증인들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저는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이 사랑의 불꽃이 더욱 커져서 이수중앙교회가 이 민족을 살려내는 심장이 되어 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만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줍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역전시켜주는 힘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 실천을 위해 떨치고 일어섭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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