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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기쁨과 위로를 넘치게 하라.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11-12 (토) 13:42 12년전 3937  

제목 : 기쁨과 위로를 넘치게 하라.

사 40:1-5, 몬 1:4-7

우리나라가 세계 관광 대국으로 비약할 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스위스 ‘뉴 세븐 원더스’ 재단은 2007년 9월부터 전 세계 400여 곳의 자연경관을 추천받아 엄선해서 28개의 결선 후보지를 결정했습니다. 그 경선 후보지를 대상으로 전 세계인들이 전화와 인터넷 투표를 해서 우리나라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문화와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한류 붐과 잘 조화를 이루어낸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관광 대국으로 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샘입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위대했습니다. 지구상에 우리처럼 급성장한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지금부터 64년 전 대한민국 건국 당시 국민소득이 67$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힘겹게 보리 고개를 넘어야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4년 만에 산업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후에 독립된 나라가 100여 국가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많은 나라 중에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루어낸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금년 말에는 GNP 2만 3000불에 이르게 될 거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마음만 모으면 어떠한 역경과 국난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고무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철의 제상인 대처정부도 14년에 걸쳐 극복한 IMF를 우리는 3년 반 만에 졸업한 경험이 있지를 않습니까?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오! 필승 코리아’를 왜치며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이태리와 스페인 같은 무적함대를 차례로 침몰시키고 4강 신화를 일구어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죽음의 바다로 변했던 태안 앞바다를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단 5년 만에 환경을 복원시키는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절망의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바꿔놓은 국민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발 이후에도 국제 금융대란의 재앙을 만났지만, 잘 극복해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대국들도 국가 신용도가 몇 단계씩 강등을 당했는데, 유럽의 경제 3대 대국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부도 직전까지 내 몰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국가 신용도가 한 단계 격상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제자 빌레몬에게 편지하기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고 말합니다. 빌레몬이 어떤 사람이기에 로마 친위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에게까지 넘치는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었습니까? 빌레몬은 아내 압비아와 함께, 그의 아들 아킵보까지 복음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기 집을 개방해서 교회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하는 것은 온 교인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전 교인이 빌레몬을 통해서 기쁨과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교회는 지난 10년 이상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자”는 주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몇 번이나 주제를 바꾸어볼 생각도 했습니다만, 계속해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빌레몬 때문이었습니다. 2000년 전 그 어려웠던 시절 빌레몬도 해냈는데, 우리라고 왜 할 수가 없겠습니까? 저는 최근 들어 우리 장로님들이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며 사랑하는 것을 보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빌레몬에게서 무엇이 믿음이고, 무엇이 사랑인지를 배워야하겠습니다.

빌레몬서는 서두부터 좀 다른 대가 있습니다. 다른 편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은 하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빌레몬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시작부터 사도라는 계급장을 때어 놓고 가장 낮은 자세로 교우들의 동정과 사랑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장애가 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 많이 배웠다는 것, 경험이 많다는 것, 교회를 위해 수고를 많이 했다는 것, 사회적인 지위나, 교회에서의 직분, 모두를 내려 놓아야합니다. 그리고 겸손해야합니다.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겨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셨으나 자기를 낮춰 종의 형체를 입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종이 되어 섬기셨는데 우리가 어찌 섬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다보면 도움을 청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움을 청하기가 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렵고 껄끄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빌레몬은 많이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려운 청도, 하기가 쉬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빌레몬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사랑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훌륭했던지 그 소문이 로마감옥 바울에게까지 들렸습니다. 그는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이나 교회가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생기를 얻게 되고, 활기를 띠게 됩니다. 그는 산소와 같이 시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바울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청을 빌레몬에게 하게 됩니다. 빌레몬 집에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로 도망친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에서 로마까지 가려면 여비며 채류비가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많은 돈을 훔쳐가지고 도망친 것입니다. 만일 잡히면 죽음을 면치 못할 중한 범죄였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어느 날 로마 시위대 감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 온 거예요. 그 후 예수를 믿고 바울 사도를 수종들게 됩니다. 이제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소중한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냥 그를 자기 곁에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와 함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그 편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 전에는 너의 종이었으나 지금은 형제니라” 이렇게 간곡한 말로 부탁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고도 어려운 청이었습니다. 만일 빌레몬이 오네시모에게 가졌던 격한 분노나 괫심했던 마음이 풀리지 않았거나,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된다면 오네시모는 죽게 될 판입니다. 바울 사도와의 관계도 파국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의 신앙까지도 흔들릴 수 있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렇게 어려운 청도 빌레몬에게는 쉽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과 믿음이 여러분들에게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교회에 기쁨과 위로가 넘쳤듯이, 그의 믿음과 사랑은 오네시모에게도 기쁨과 위로가 넘치게 될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도 빌레몬처럼 사랑과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저에게도, 성도님들에게도 기쁨과 위로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6절에는 ‘네 믿음의 교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제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 기쁨이 샘솟고 위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함께 하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려면 나 자신을 내주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내 시간을 내주어야합니다. 내 마음을 내주어야합니다. 내 것을 내주어야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외로운 사람과 함께 하고, 병든 자와 함께 하고, 낙심한 자와 함께 하고, 상처 받은 자와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줄 수가 있어야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까? 누구에게 나 자신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함께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실로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려면 그들의 도움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를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토록 함께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나 자신을 내 줌으로써만, 나는 타인을 내 사람으로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비우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그 빈자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것으로 가난해지면 그만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로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성경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매일 밀실에서 기도만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애정과 관용으로 사랑을 베풀어 기쁨과 위로가 넘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빌레몬처럼 믿음과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가 넘치게 하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다”( 고후1:3)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이시로다”( 고후1:4)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 ‘포티스’로써 ‘용감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는 말입니다. 그 용기가 모든 환난을 이기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위로로써 능히 환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환란이 크면 위로도 더욱 넘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환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렵고 힘든 곤고한 일이 있습니까? 그것이 질병입니까? 사업입니까? 취업입니까? 결혼입니까? 자녀입니까? 직장입니까? 여러분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위로는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 믿음입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기쁨과 위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과 위로로써 모든 환란을 이기고, 이웃을 섬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기쁨과 위로는 충만하게 하십시오. 빌레몬과 같은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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