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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10-16 (일) 08:10 12년전 5456  

제목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삼상15:19-22, 히브리11:5-6

어머니는 큰 고통 때문에 울면서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를 품에 안고, 가장 큰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평생을 자식 때문에 울고, 웃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부모가 자식 때문에 겪게 되는 슬픔이,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지가 많기로 하면 하나님보다 더 많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 때문에 미소 짓기도 하시지만, 탄식도 하십니다. 슬프게도 하나님은 인간 때문에 겪는 슬픔이 비교 할 수 없으리만큼 큽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니 좋다”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시고는 “심히 좋다” 하시면서 그렇게도 기뻐하실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 최상의 기쁨은 곧 최상의 슬픔으로 변하게 됩니다.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이렇게 전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3-7)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인간을 지상에서 쓸어버려야 하는 그 아픔이 어떠하셨을까요?

그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물이 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약속의 징표로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겠노라.” 인간이 참혹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셨으면 “다시는 물로 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래서 인간의 죄악이 다시 극에 달하게 되자, 하나님은 인간을 멸하는 대신에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큰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에 고통이 되는 일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고통이 되고 있지를 않습니까?

벌써 8년 전입니다. 저는 영국의 일간지 가디안의 업저버가 미 국방부 비밀 보고서를 입수해서 발표한 글을 읽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이 보고서는 미래의 인간의 갈등과 전쟁은 종교나 사상, 민족이나 테러보다도 급변하는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2010년에서 2020년까지는 지구온난화가 북극 빙하를 녹여내어 멕시코 만 난류에 치명타를 가하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북유럽국가들은 지금의 시베리아와 비슷한 혹한의 날씨가 될 거하고 합니다. 2012년까지는 미국과 서 유럽, 아프리카 국가들은 폭염과 폭풍우, 가뭄으로 농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고 했습니다.

미 국방부 내에서 이 보고서 작성을 총괄한 사람은 미국의 최고 전략가로 알려진 앤드루 마셜 국방부장관 고문이라는 점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한껏 높여 줍니다. 부시 행정부가 석유 메이저들의 로비를 받고, 세계기후변화 협약인 교토의정서를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합니다. 부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 보고서의 발표를 막아 왔는데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업저버가 입수해서 공개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보고서입니까? 이 보고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6년 전의 일입니다. 쓰나미가 동남아 일대를 휩쓸어 수 백 만의 이재민을 냈습니다. 최근에는 더욱 심각합니다. 일본을 덮친 지진과 헤일은 수만 명의 사망자와 1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냈으며, 원자로를 덮쳐 엄청난 방사능을 유출시킴으로써 일본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금년 태국에서는 3달 동안 계속 되는 폭우로 전국토의 70%가 수해를 당했고, 중국 서북부와 미국의 서남부를 비롯한 세계 곳곳이 불타는 가믐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지구가 그것도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의 지나친 탐욕 때문에 불과 20년 안에 몰아닥칠 재앙이 눈앞에 와 있는데도 누가 알가 봐 쉬쉬하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운명에 지구 전체가 떨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우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인간은 탐욕 때문에 재앙을 받고 죽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온 인류는 한 가족처럼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근심이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길을 찾아야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일찍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입증해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순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믿음은 곧 순종이다.’는 말입니다. 무엇에 순종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인간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사용 설명서와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시간, 재능을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경영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다는 사람이 내가 말할 때마다 ‘저건 아니야, 저건 아닌데 순 거짓말이야!’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믿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삶의 현장에서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합니까? 아니면, 내 생각대로 결정해버립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분적으로는 순종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자주 말씀을 취사선택하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순종하고, 어렵고, 나에게 손해를 주는 것 같고, 인기가 없어 보이는 말씀은 무시해 버립니다. 우리는 스스로 ‘은혜는 받겠지만, 헌신은 하지 않겠다. 성경은 읽겠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 이렇게 선을 그어놓고서 예수를 믿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불순종이요, 교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과 지혜들은 이 세상에도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터득해서 성공도 하고, 출세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내가 시험에 들지 않게 지켜주지도 못하고, 결정적인 유혹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관에 들어가 눕게 되는 날, 그 지식들이 나를 책임져 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나를 하늘나라 아버지 집에게까지 인도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믿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손해라고 생각될 때까지도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믿음이 순종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는 내게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해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나는 어떠한 상황에도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난까지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축복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수도 없이 말하면서도 그분이 내게 주신 상황은 믿지 않고 배척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어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도리라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야곱이 얍복강 변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 천사가 야곱의 환도 뼈를 처서 빼놓고는 “이제 너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말합니다. 지금 강 건너편에는 형, 에서가 400명의 칼잡이들을 앞세우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야곱을 도와주기는커녕, 원수 앞에서 도망칠 수조차 없도록 환도 뼈를 빼 놓고는 이것이 축복이라니, 여러분들 같으면 이 말을 믿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이제 더 이상 형과 맞설 수도 없고, 살겠다고 도망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형에게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이 불구가 되어 한 다리를 질질 끌며, 나타나 머리를 일곱 번 굽혀 용서를 비는 데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칼을 놓고 용서해 준 것이지, 만일 비단 옷을 걸치고 머리를 쳐들고 나타났거나, 저만 살겠다고 도망쳤더라면 형의 칼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불구가 된 것이 사는 길이요, 그것이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이기는 것이 복인 줄만 알았는데, 지면 죽는 줄만 알고, 그래서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싸웠는데, 깨닫고 보니 지는 것이 사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영화 주인공 안요한 목사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30대 중반에 장님이 되어 한신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한신대 동문들이 그를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그 때 선배 목사님 한 분이 미국에는 유명한 안과병원이 있고, 의사도 훌륭하니, 한번 검진을 받아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 때 안 목사님을 검진한 안과 의사는 100% 자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개안수술을 받으면 눈을 뜰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했습니다. 다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나 안요한 목사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만, 제가 두 눈을 뜨고서도 잃었던 하나님을 눈이 멀고서야 찾았는데, 왜 도로 눈을 뜨겠습니까? 내가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었거늘, 이 은총을 내가 어찌 저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눈멀게 하셨다면 그것이 나에게 복이 되기 때문에 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실패로 끝났습니까? 몸이 불편한데가 있으십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까? 그 상황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드리고 순종하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게 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은 그것이 내게 필요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겠습니까?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보다도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가대원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드리는 일입니다. 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것이 내가 잘 되는 확실한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잘 되고 행복한 것을 보시는 것, 그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것, 우리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길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까? 그것을 내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는 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최상의 행복을 얻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됩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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