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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예수님의 방법으로 사랑하라

관리자 (경기노회,동수원,목사) 2011-07-29 (금) 17:29 12년전 6068  

예수님의 방법으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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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부총회장/동수원교회)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배려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불문율과 같은 미덕이기도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크리스챤마저 다른 사람에게 착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할때에만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모습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7-8을 보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개역개정)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족한 사람을 사랑했던 예수님, 죄인된 모습까지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온전한 사랑이며, 이 사랑을 본받아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5:48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앞 부분인 43-44절을 보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와 같이 온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이라 함은 하나님을 닮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렇게 크리스챤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지기 위해서 서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또 나를 세우신 것도 서로 사랑하라고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이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크리스챤의 사랑은 표현의 방법도 세상의 방법과는 달라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방법으로 나눔과 베품을 생각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대접하고, 물질이 없는 사라에게 물질을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사랑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의 사랑의 방법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나눔과 베품을 사랑의 첫 번째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셨던 첫 번째 이웃 사랑의 방법은 항상 기도였습니다.

갈릴리에서 공생애사역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기도로 시작되었고, 수많은 치유의 기적도 모두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마태복음 9: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을 때 마치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해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장 먼저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이, 영혼에 대한 뜨거운 기도가 없이 행해지는 사랑은 결코 온전한 사랑이 아니며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구제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먼저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택하셨던 두 번째 이웃 사랑의 방법은 이해와 함께 하심이셨습니다.

로마서 12:9-16을 보면 성도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털어 놓으셨던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끝임없이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찾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 예수님이 이해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두 가지의 방법으로 이웃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하신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교회는 이 예수님의 방법을 회복해야 합니다.

물질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 기도 중심의 사랑이어야 하고, 구제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 이해와 함께하심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세상을 품고 그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세상에 혼자 떨어져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이웃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교회는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물질을 나누기만 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이해하고 함께 하는 사랑은 오직 교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예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려야 합니다.

물질만능주의, 과학이기주의, 극도의 이기주의사회속에서 오직 교회만이 희망입니다.

세상을 기도로 지켜내고, 이해하며 함께 하는 사랑으로 지켜낼 공동체는 오직 교회밖에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희망인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세상을 상려가야 할 것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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