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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소서!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7-02 (토) 12:28 12년전 3847  

제목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소서!

시편 85:6-13, 하박국3:1-3

부흥이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성서에는 부흥이라는 말이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박국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 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3:2)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부흥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하야’는 영어로 ‘revive'로 ‘살게 하다’ ‘회생시키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하야’는 ‘부흥하게 하옵소서!’라는 말보다는 ‘살리시옵소서!’ ‘새롭게 하옵소서!’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 하박국이 무엇을 살려 달라고 청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펼치셨던 그 위대하신 일이 이 역사의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부흥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한다는 각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 각성이 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 새로워진 인간을 통해서 교회가 개혁되고 세상에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의 내면에 찾아와 머무시는 하나님이 자리 잡고 계셨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시는 영의 바람으로 새 삶을 회복하게 하시는 은총입니다. 그 은총이 한 개인을 각성시키고,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바로잡고, 온 세계를 변화시켜갑니다. 부흥은 한 개인의 각성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놀라운 일, 곧 하나님의 현존이 인간의 역사 무대에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출애굽에서 경험했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원사건이 선지자들의 시대에도 다시 한 번 더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나이 80이 되어서야 하나님의 현존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발견한 불타는 떨기나무는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던 모세를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부흥은 언제나 사람을 부르시는 일로 시작됩니다. 부르심의 문에 들어서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이 ‘가라’하는 길을 걷겠다고 결단하고 나서야합니다. 이 결단은 비움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자신의 그릇에 채웠던 욕망과 이기심을 비우게 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은 비로소 자기 몫이 됩니다. 자기를 붙들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뻗으시는 손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부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일깨우는데서 시작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전개하실 때, 하나님은 먼저 모세라는 한 사람을 영적으로 각성시키고, 신앙적 결단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기를 비우는 사람은 두 가지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회복되는 부흥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각하고 결단하는 부흥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난 다음에, 자기 정화가 이루어지고 영적인 에너지를 축적하고 난 뒤에야, 신앙인은 교회와 가정, 사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일의 부흥은 신자들의 부름과 비움, 채워짐과 헌신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부흥은 각성, 개혁, 갱신의 열매입니다. 왕에게서 시작한 영적 각성은 성전을 정화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온 백성이 야훼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언약의 갱신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각성운동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요시아 왕은 무너진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된 신명기서의 가르침에 따라, 거의 한 세기 전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을 보다 철저하게 수행했습니다. 이 부흥운동의 이면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한 분이시다”는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씀으로 요약되는 토라의 경청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흥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흥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민감하게 수용하는 신앙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지도자가 있어야합니다. 요시아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기에, 그는 “야훼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곧 유다 백성들의 희망이다”는 것을 뼈저리게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부흥운동은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소리 높이 외치며, 그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 속에 적용시킴으로써 확산되어 갔습니다. 이 놀라운 부흥운동이 여러분들에게서 일어나게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던 요시아 왕에게 성서는 하나님의 뜻을 담은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믿음과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지켜 가면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요시아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그의 눈이 떴고,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큰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읽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 집중하십니까?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이 나 자신을 각성시킬 때까지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내가 각성하면 나 자신의 운명이 변합니다. 나 하나만 변하면 걱정 없습니다. 내 가정이 변하고, 내 교회, 이 민족의 운명이 바꾸어질 것입니다. 믿습니까?

구약성서는 날마다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는 신앙인의 영성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편의 기도와 찬양이었습니다. 구약의 시편이 토해놓는 탄식과 탄원은 신앙 부흥운동을 각성시키는 촉매제요, 근거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시 27:7-9) 할렐루야!

시편 기자가 토로하는 단 하나의 소원,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살아가려는 시인의 간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의 임재에 걸맞게 자신의 일상의 삶을 거룩하게 다듬어가려는 노력으로 나타났습니다. 날마다 경험하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삶이야말로 이스라엘 신앙인들이 추구하는 영성이자, 종교적 열망이었습니다. 이 열망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우리 속에 하나님이 머무시도록 시간을 내드리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열망을 망각하거나 회피하거나 상실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선지자를 파송해서 그들을 일깨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아가려는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는 이 거룩한 신앙의 열망과 하나님의 부흥사역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의 회심과 각성, 결단과 헌신에서 부흥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사역이 바로 부흥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흙으로 지어진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갈 때, 비로소 생명체가 됩니다. 몸은 하나님의 영을 담는 그릇입니다. 생기가 몸을 살아 있게 하는 힘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이 당신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신다는 요엘의 약속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영이 마른 뼈가 되어버린 유다 포로들 속에 들어감으로써 그들은 새 마음, 새 백성, 새 군대로 소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소생된 새 사람을 통해서 무너진 나라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포로기의 에스겔과 요엘의 비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과 부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일깨워주었습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37:5-6) 포로기 무덤에 갇혀 있던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생기, 곧 하나님의 영이 시체와 같이 되어버린 유다 백성 속에 들어감으로써 일어났습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영이 일으키는 거룩한 역사입니다. 그것은 마치 생기가 코에 들어가자 흙으로 지어진 사람이 생명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경험하는 자리가 바로 부흥이 일어나는 현장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에서 부흥은 단순히 수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사회경제적인 번영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부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전개하시는 구속사의 회복을 뜻했습니다. 이 회복은 한 개인의 인격적인 영역에서 시작되어 교회와 사회, 우주가 창조질서를 회복하데 이르게 됩니다. 이 회복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시는 구약시대 영성이 형성되어갔습니다.

구약시대의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와 민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먼저 개인을 경건하게 세우는 신앙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약의 부흥의 역사는 결코 한 사람의 내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부흥은 밖으로 뻗어나가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려내는 구원의 한마당이 펼쳐지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를 시편 85편에서 찾을 수 있어요. 거기서 선포된 부흥은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시85:6)라는 말씀으로 압축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주를 기쁘게 하시도록,....우리를 다시 살리 사”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 공동체 회복의 원형을 보게 됩니다. 그 회복의 동기는 오직 주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부흥과 회복의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타락은 교회부흥의 동기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되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이 되고, 사람의 이름을 내고, 사람의 자랑이 되어버린 데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와 교인들이 자기 내면의 거룩한 변화 없이 교인의 수만 늘려왔기 때문입니다.

부흥의 동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있었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통해서 다시 살아남을 경험하게 될 때,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생명력과 기쁨의 표출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지난날의 모든 허물과 죄가 깨끗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 받고 새 사람 된 기쁨이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샘솟고, 가슴에서 출렁거리고, 온 존재를 사로잡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이 기쁨을 누리며 신앙의 부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부흥이란 단순히 종교적 열광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펼쳐져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창조질서가 이 땅에 구현되는 회복 없이, 이루어지는 부흥은 진정한 부흥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부흥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어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시85:10-12) 우리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바라는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진리와 사랑이 이 땅에 함께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의가 하늘에서 내려오면, 땅에서는 진리가 솟아납니다. 성도들의 가슴에 성령이 임하면, 사랑과 기쁨, 평강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우리 사회 속에 구현되는 열매로 나타나야합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이 경험하는 내면의 변화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때 그것을 진정한 부흥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게 하시고 나를 각성시켜 새사람 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가 각성된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 역사 속에 의와 진리,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길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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