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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막힌 담을 허신 화해자 예수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6-25 (토) 14:53 12년전 4743  

제목 :막힌 담을 허신 화해자 예수

겔 37:15-23, 엡 2:11-18

우리는 지금 남녀, 노소, 빈부, 신분상의 차별 없이 성전에 들어와 내가 원하는 좌석에 앉아 예배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야했는지 그들의 희생을 까마득하게 잃어버리고 삽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원수된 것들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성전 안에는 여러 개의 차별의 벽이 있었습니다. 성소와 가장 먼 곳에 이방인의 뜰, 다음이 여인들의 뜰, 그 다음에 이스라엘 남자들의 뜰이 있었습니다. 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제사장의 뜰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 성전 건물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과 여인들의 뜰 사이에는 대리석 칸막이가 쳐져 있었는데 그 담 높이는 불과 석자가 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낮은 담이 이방인에게는 태산보다도 더 높게 느껴졌습니다. 출입문에는 “이 안으로 들어오는 이방인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사형에 처 한다”는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까지 이렇게 차별이 극심했습니다. 장벽은 유대인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사회는 장벽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분계급 사이의 장벽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습니다. 인간의 증오와 분쟁, 차별 등, 모든 비극이 다 이 장벽으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장벽을 허는 일이었습니다. 2000년 전 바울 사도는 장벽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을 향해서 “그리스도 안에는 자유인이나 노예가 차별이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 헬라인과 야만인, 남자와 여자가 차별이 없다.” 모두가 하나다고 외쳤습니다. 이 외침은 지금 우리에게는 별것 아니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세상의 지축을 흔드는 가히 혁명적인 해방선언이요, 자유선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장벽들이 무너지고 차별이 철폐되었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이 엄청난 일을 해내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율법을 당신의 몸으로 파하셨습니다. 율법은 본래 선하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선과 악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율법을 범하고 죄를 짓게 되면서, 율법은 인간을 정죄해서 죄인을 만들어 사망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율법은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 의인과 죄인, 남자와 여인 등, 숱한 장벽을 양산해내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율법으로 생긴 장벽뿐만 아니라 율법으로 인해서 원수가 되어 버린 것들까지 십자가로 소멸시켜버렸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만든 법이나 제도가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을 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법이나 제도가 가지는 이러한 한계를 무엇으로 극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한 번은 불란서의 한 장교가 전사한 전우의 시체를 묻기 위해 힘겹게 공원묘지까지 운구해왔습니다. 영세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실망한 장교는 전사한 부하의 유예를 공원묘지 밖에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이 장교는 병사들과 함께 전우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예 무덤이 없어져 버린 거예요.

황당한 병사들은 크게 놀라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한 신부가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다만 영세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직한 병사를, 공원묘지에 묻도록 허락해 줄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하를 잃고 슬퍼하는 장교의 모습, 공원묘지에 매장하는 것조차 거절당하고 낙담하며 돌아가는 전우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제회의를 소집해 그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공원묘지 울타리를 아예 옮겨서 그 전사한 병사의 묘를 교회의 공원묘지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법과 규정은 울타리를 만들어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은 그 울타리를 옮겨서 모두를 한 형제로 끌어 앉아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미워하고 원수가 되어 싸우는 사람들을 화해시켜 친구로 만드셨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차별이나 사상이나 관습이 만든 장벽들은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변하면서 하나 둘 무너져갔습니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정치적 민주화, 자유 시장경제, WTO, FTA 등을 통해서 세계는 급속히 하나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 사이의 이기주의 때문에 원수가 되어버린 증오와 갈등의 벽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단단하게 요새화 되고, 더욱 무장을 강화시켜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돌과 같이 강박한 마음, 교만한 이기심, 증오와 적개심, 이것들을 허물어트릴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던져 이 원수 된 장벽들을 소멸시켜주신 것입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장벽들을 녹여내신 것입니다.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돌처럼 강박한 마음들도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합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와, 이 민족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열어 사랑이 눈 띄게 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화목하게 만듭니다. 불화 중에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당신 안에서 이 둘로 하나의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이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7, 10)고 했어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헬라인이든, 야만인이든, 공산주의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 모두가 당신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당신의 사랑 가운데 거하기만 하면, 그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공산주의자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어요. 저는 지난주 너무도 기쁘고 감격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행정 국장까지 지내던 서청운씨가 연집향교회 집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17년 전, 1994년 여름, 그가 연길시 연집향 서기장일 때, 향장인 김형진씨와 난생 처음으로 우리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설교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때 우리 교회 방문 기념으로 성경책을 한 권 드렸는데, 2년 후에 중국을 방문해보니 그는 “성경을 3번 읽었다.”고 했습니다. 서청원 씨는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서 공직에 있는 동안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지만, 은퇴하면 꼭 교회에 나가겠다.”고 저와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는 공산주의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 한 형제가 됩니다. 믿습니까?

오늘이 6.25, 61주년을 맞는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교회 당회는 7년 전 6.25주일을 ‘민족 화해주일’로 정하고, 25를 전향적으로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원수이기 때문에 쳐부수어야 한다든지, 그들은 사탄의 집단이기 때문에 우리와 한 형제가 될 수 없다”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버려야합니다. 지금 세계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3년 전 베트남 찌엣 주석이 베트남 종전 32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미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슬픈 과거가 있었지만 미국은 우리의 동반자요, 친구다”고 말해 미국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지금 세계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민족의 과거사의 불행 때문에 미래사까지 그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과거의 불행은 과거로 끝내야합니다. 더 이상 6.25의 상처가 우리 민족이 세계에로, 미래에로 나가는, 통일의 새날을 여는데 족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급속히 하나로 통합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활동무대도 급변합니다. 13,4년 전만 해도 미국, 일본과의 우리나라 교역량이 50%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에 불과합니다. 대신에 우리나라 교역의 중심은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이 50%를 넘어섰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무게 중심축이 급속히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바뀐 것입니다.

이제 북한은 우리가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도보인 동시에 통로가 되기 때문에 북한과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교류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선진국과 개도국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힘겨워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놀라운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 36년과 6.25동란, IMF와 금융대란 등, 숱한 국난을 이겨낸 끊기와 저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지금은 다들 어렵고 힘들다고들 합니다만, 지금 격고 있는 이 고난은 반드시 약이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민족은 세계 중심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되찾은 민족의 우수성과 저력을 활짝 꽃피우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끌어안고 함께 가야합니다.

남과 북이 원수 된 장벽을 소멸하고 평화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더 큰 민족애와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지금 북한은 극난한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김정일 정권은 개방하지 않을 수도, 개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장래에 남과 북이 통일되었을 때, 우리는 북한 동포들로부터 “우리가 곤경에 처하게 되니, 그래도 동족밖에는 없더라.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해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화목케 하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남과 북, 민족통일을 이루어내는데 촉매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땅에 갈라지고 나누어져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모든 계층 간 장벽을 헐어버리고, 화해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기심과 차별, 불신과 증오로 병들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민족을 이 난국에서 구원하고, 희망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보다 더 사랑해야합니다. 사랑하면 길이 생깁니다. 사랑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민족의 화해자로 떨치고 일어서서 이 땅에 모든 장벽을 허는 일에 앞장서야 랍니다. 그 길은 힘든 고난의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줄곧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통일이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수백 년을 원수처럼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것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가 되게 해주신다고 말하는데, 어찌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될 수가 없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북한 동포들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민족의 화해를 위해 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주신 화목케 하는 직분을 위해 떨치고 일어섭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화목케 하는 사명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땅에서 전쟁을 막아주시고, 평화통일의 축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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