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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성령으로 거듭나야 산다.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6-11 (토) 16:23 12년전 3019  

제목 :성령으로 거듭나야 산다.

요엘2:28-32, 요한3:1-8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삼포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그 들은 연애하는 것을 포기 했습니다. 대학에 낭만이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비싼 등록금을 내려니 여유가 없는 거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청년실업이다.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 공부해야합니다. 그러니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요. 그래서 연애를 포기한 것입니다. 둘째는 조금 여유가 있어 연애를 하는 학생들도 결혼은 하지 말자고 한다고 합니다. 대학 다니면서 학생들이 학자금 융자를 받게 되는데, 취업은 안 되고 전세 값은 폭등해서 같이 살 집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을 포기합니다. 셋째는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 갖는 것은 포기한다고 합니다. 양육비와 교육비가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삼포시대, 어찌타가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까?

그렇다고 돈이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까? 편해질수록 더욱 불안해지고, 즐길수록 더욱 허탈해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재미와 안락함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기쁨과 평안은 돈으로 살수가 없어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그렇게도 신신 당부하신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는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염려와 불안, 좌절과 절망이 파도처럼 엄습해 와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열어놓고 살아라. 육적인 인생을 살지만, 영적인 세계를 늘 호흡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성령으로 거듭나야한다는 거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수가 없다는 거요.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 중 가장 탐스러운 나무를 선택하시고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 때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내 욕심을 따라 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이냐? 내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정할 것이냐? 아니면 나 자신으로 할 것이냐?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기 욕심대로 해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지, 내 생각은 다릅니다. 나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데 왜 간섭하십니까? 나도 한다면 합니다.”하고 따먹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인 것을 거부해 버리고 자기가 주인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탐욕대로 사는 것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생겨난 죄악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근본적인 죄 성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은 교만과 불순종, 탐욕입니다. 그 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라는 확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 탐욕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거듭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기대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사람이 자기의 주인이 되려는 그 근본을 드려다 보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탐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탐욕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거요. 이 탐욕이 자꾸만 하나님을 내 중심에서 밀어냅니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해야 내 삶의 자리에서 이 탐욕을 몰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를 부인할 수 있을까?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깨끗이 인정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도록 허락할 것인가? 여기에 하나님 나라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탐욕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탐욕은 언제나 가치관에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가 탐욕을 버리려면 가치관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빌립핀에는 원숭이가 많다고 해요. 이 원숭이들은 사과를 제일 좋아합니다. 굶주린 원숭이 앞에 사과와 금시계를 갖다 놓아주면 열이면 열, 하나같이 사과를 물고 뛰지, 금시계를 물고 뛰는 원숭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숭이가 다 최영 장군의 수제자들이라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여기는 것일까? 아닙니다. 빌립핀 원숭이들은 최영장군이 누군지도 몰라요. 만일 필립빈 원숭이들도 가치를 알아서 금시계가 사과보다 더 좋은 것을 알게 될 때는, 모두가 금시계를 물고 뛰겠지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이 바꾸어져야만 탐욕을 버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 것들에 대한 탐욕은 결코 결심이나 깨달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연구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에서 ‘본다.’는 말이 중요해요.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인단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한 번만 보게 되면 우리의 가치관이 확 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 사람은 이 세상 것에 절대로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 나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니 가장 고상하고 귀한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후 바울은 지금까지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됩니다. 배설물에 욕심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즈음은 농사짓는 사람들도 배설물 때문에 골치 아파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욕심과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게 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은 버리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합니까? 그것은 성령이올시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성령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제 행복해 질 수 있게 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유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소유는 일시적인 편리함과 재미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줍니까? 인간의 참된 행복은 내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내 존재가 어느 때 가치 있게 됩니까? 인간이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살아 있을 때입니다. 내 정신이 살아 있고, 내 영혼이 살아 있을 때입니다. 영혼이 살아야 정신이 삽니다. 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나무라하더라도 죽으면 베어버립니다. 제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답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으면 같다 묻어야합니다. 죽은 사람과 함께 살수는 없는 일입니다. 똑 같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에도 혼이 살아 숨 쉴 때가 있는가하면, 혼이 죽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비틀즈 멤버 중에 한 단원이 솔로로 데뷔하는 무대에 한 친구가 권총을 들고 올라와서 쏴 죽이겠다고 난동을 부립니다. 경찰관이 뜯어말리면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네놈의 노래에는 이제 혼이 떠났다. 그것도 노래라고 부르느냐? 지겹고 역겨워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어!”하고 소리치더랍니다. 혼이 나가버린 노래는 죽은 노래입니다. 감동이 없고, 역겹기만 합니다.

노래만이 아닙니다. 그림에도, 영화에도 모든 예술에도 혼이 있습니다.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가 상연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기독교 진리를 왜곡시킨 영화입니다. 상연을 앞두고 교회에서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 영화가 상연되면 마치 기독교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란을 피웠습니다. 기독교를 대표할만한 사람들이 그 일에 앞장섰습니다. 저는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반대하고 나서면 사람들은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볼 것이다. 기독교가 그들의 흥행을 돕는 일이 된다. 그러니 무관심 하라. 기독교가 그렇게 허약한 종교인지 아느냐? 그 동안 숱한 이단들이 나타나 기독교를 무너트리려 했지만, 그 때마다 기독교는 더 강해지고 부흥했다.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가 아닌가?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다빈치코드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습디까? 아마 실망하셨을 거예요. 흥행도 없이 사라져버리지 않았습니까? 거짓은 감동이 없어요. 죽은 것은 추할뿐입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씨티즌 성당에 심열을 기울려 그린 예수님의 일대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회개하는 사람, 주님을 위해 일생을 바쳐 헌신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떻게 그런 감동을 줍니까? 그 그림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혼이 귀한 것입니까? 왜 그렇게도 성령이 귀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그의 육체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입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사람이란 흙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이 하나님의 생명 때문이야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가 버리면 남는 것은 흙뿐이올시다. 참으로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아요. 인간의 생명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하나님의 생명, 성령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 올 때 잠자든 내 영이 깨어나고,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것을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났다고 해요.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것도 성령이요, 생명을 얻게 하는 것도 성령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맞이했습니다. 한국교회처럼 성령을 강조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교회의 관심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이 세상 나라의 회복에 있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는 관심도 없어요. 교회의 설교는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고,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성공해야 그것이 축복이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것을 버리는 것이 축복이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가 임해온다” 이렇게 설교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야 나도 살고 너도 산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자를 피하여 지나갔던 것처럼, 오늘의 한국교회는 “의인이 핍박을 받고 죽어야 죄인이 구원받게 된다.”는 복음의 핵심을 피하여 지나가고 있어요. 모두가 하나같이 “버림받는 일 없이, 십자가를 지는 희생 없이 복 받고, 구원만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행항 일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마음과 정신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말씀과 성령으로 영의 혁명이 일어나야, 정신 혁명이 일어나고 정신혁명이 일어나야 육신의 혁명이 일어나 육체가 강건해지고 인간답게 살 수가 있어요. “인간이 사느냐? 죽느냐? 구원받느냐? 망하느냐?”가 이 성령에 달려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교인들로 하여금 궁극적 가치를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두게 하지, 결코 이 세상 나라의 회복에 두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교회를 크게 만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일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교회가 커져서 교회에 돈이 많게 되면 그 때부터 교회는 타락합니다. 그것은 재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교회에 은과 금이 없을 때에는 교회에 예수가 살아 있었어요. 그러나 교회에 은과 금이 넘쳐나게 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라져버립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타락한 중세교회가 오직 말씀과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개혁되었다면, 오늘의 타락한 한국교회는 오직 성령으로, 오직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의, 사랑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거듭나면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귀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치 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탐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것입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주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 때, 놀라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요. 우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입니다. 갇힌 자들은 해방의 자유를 얻게 되고 진리와 평화, 공의와 사랑이 입 맞추는 신명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기쁨과 생명이 충만한 생동하고 아름다운 새 세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2011/6/12, 성령강림절)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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