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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5-07 (토) 14:10 12년전 5126  

제목 :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사49:14-18, 삼하18:28-33

다윗 왕은 그의 일생 중,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게 됩니다. 그에게는 여러 아내로부터 스물아홉이나 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살롬은 다윗왕의 가장 총애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란 예쁜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쁜 여 동생 다말이 이복형 암논에게 겁탈당한 후에 가혹하게 학대받고 내쫓겨졌습니다. 압살롬은 이 일로 암논이 아버지의 눈 밖에 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와 그의 형제들을 연회장에 끌어들여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왕의 진노를 피해 멀리 도망치게 됩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이 보고 싶어 불러왔지만, 예전 같이 애틋하게 느껴지지를 않는 거예요. 그러자 압살롬은 서서히 대권을 향한 욕망을 불태우게 됩니다. 그는 호위병 50명을 거느리고, 성문으로 나가 왕에게 재판 받기 위해서 들어오는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척척 해결해줍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 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다윗왕의 범죄와 실정을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불의한 정치적 박해와 억압, 부패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자기 추종세력을 규합한 다음 헤브론에서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고 크게 나팔을 불도록 했습니다. 그가 헤브론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다윗이 왕이 되었다고 선언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 왕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이 그를 폐하시고, 자기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다고 선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대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전통이 자리 잡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사울 왕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운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윗 왕이 신복 우리아를 격렬한 전쟁터에 몰아넣어 죽게 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왕권을 노리고 있던 압살롬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었습니다. 압살롬의 주장은 호소력이 있었고, 점차 백성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을 폐하시고 그의 아들, 압살롬이 왕이 되게 하셨다는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부왕인 다윗을 몰아내고 왕궁을 점령한 후에 자기 추종 세력들과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부왕의 후궁들을 백주에 욕보이는 온갖 폐륜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천하에 이런 못 쓸 놈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압살롬이었습니다. 이 일을 당해야 했던 다윗 왕,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입니까? 압살롬은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철천지원수였습니다. 아들의 이러한 폐륜행위는 다윗왕의 가슴에 깊이 못을 박았고, 치명적인 고통과 상처를 입혔습니다. 다윗왕은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한 채, 억수같이 폭우가 쏟아지는 그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야간도주를 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하룻밤 사이에 쫓기는 망명자의 신세가 됩니다. 그러한 처지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텐데, 그러한 아픔과 수치를 안겨준 사람이 다름 아닌 사랑하는 아들이었으니, 그의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압살롬의 반역이 성공하도록 두고만 보시지 않았습니다. 다윗왕의 신복들이 반역의 무리들을 소탕하고 압살롬의 숨통을 끊어버렸습니다.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다윗에게 전령이 달려와 승전보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승전보의 기쁨보다도 첫마디가 “내 아들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느냐?” 무엇보다 아들 압살롬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압살롬은 칼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덤벼든 반군의 괴수요, 왕의 후궁들을 백주에 욕보인 폐륜 아로 백번 죽어 마땅한 반역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에게는 여전히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이런 왕의 심기를 눈치 챈 전령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곡하게 말합니다.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다 그 아이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삼하 18:32)”

압살롬이 죽었구나! 내 아들이 죽었어! 다윗 왕은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어 홀로 누각에 올라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슬피 울며, 통곡을 합니다. 왕위를 빼앗으려고 애비 가슴에 비수를 꽂으려 덤벼드는 원수요, 폐륜아인데도, 내 아들을 죽일 수는 없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다윗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둔 아버지였습니다. 이 각박하고 슬픔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곳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모진 세상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가 없다면, 우리는 그 어디에 가도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의 가슴에 당신의 놀라운 사랑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자식사랑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하나님의 창조원리 야요. 그 사랑은 너무나 크고 놀랍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도 더 깊다고들 찬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식이 부모를 향해 목에다 칼을 들어대도 부모의 자식 사랑의 불은 끌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부모들의 마음에 이런 사랑을 부어주신 것은 피조세계를 축복하고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안에서 솟아나는 사악한 욕심과 죄악 된 마음, 자기만을 위하는 철저한 이기심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깡그리 파괴시켜 자식도 불행해 지고, 부모도 불행하게 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미어옵니다.

우리는 다윗의 압살롬 사랑을 통해서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들의 태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랑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만일 압살롬이 아들이 아니었다면, 다윗에게 압살롬은 죽여야 할 원수요, 대역 죄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여전히 다윗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부하들이 지도를 펴놓고 작전회의를 할 때, 최종 목표는 자기 아들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쟁을 말릴 수도 없고, 후원할 수도 없는 다윗 왕의 안타까운 처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압살롬에게 닥칠 위협을 생각하며 다윗은 한없이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워야했습니다.

고뇌 끝에 다윗 왕이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아들 압살롬을 어떤 일이 있어도 죽여서는 안 된다. 사로잡아 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의 개국공신이며 군대장관인 요합이 압살롬을 죽인 것입니다. ‘이런 못 쓸 놈은 살려 놓아서는 안 된다. 백번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백성들의 여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오직 아버지 다윗만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합니다. 그가 통곡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그의 통곡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잘 들어 보세요.

첫째로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이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를 치열한 전쟁터에 몰아넣어 죽였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은 나단 선지를 통해서 다윗에게 이런 중벌을 내렸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를 행하리라( 삼하12:10-12)” 다윗은 이 하나님 말씀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알고 보니 압살롬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잘못으로, 자기의 죄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이렇게 비참하게 망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 죄가 압살롬을 죽였다 말입니다. 그러니 아들을 미워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을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발등을 찢고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은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자신의 죄가 자식들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이 잘못되는 것이 무모의 죄 때문임을 명심해야합니다.

둘째로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통해서 자기 때문에 겪으시는 하나님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하니 통곡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다윗 왕, 그 다윗이 몇 번의 범죄로 영적인 힘을 다 잃어버리고 그의 심령이 죽어갈 때,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다윗 왕은 아들의 반역을 겪으면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당하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통곡한 거예요. 아들 압살롬처럼 백번 죽어 마땅한 죄인을 하나님은 친 아들처럼 사랑하고 용서해 주셨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 그 망극하신 사랑을 생각하니 통곡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를 범하고 신앙에서 멀어질 때, 아버지 하나님은 죽어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힘을 잃고 시들어가는 우리들의 심령을 바라보시며, ‘내 아들아! 내 딸아! 네가 어찌하여 힘을 잃고 죽어 가고 있느냐?’며, 망연자실 슬퍼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죄를 짓고 망하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통곡하시고, 내가 의롭게 살고 성공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기뻐서 춤을 추신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잘 잊혀 지지 않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잃어버립니다.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지를 않습니까? 그야말로 부모의 자식 사랑은 칼로 물 베기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부모는 자식이 아주 작은 효심만 보여도 그 상처를 말끔히 잊어버립니다. 만일 부모와 자식 사이에 고통을 주고, 받은 상처가 그대로 남아 쌓이게 된다면 서로 원수가 되어 복수하느라고 세상은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부모자식 간에 용서와 화해가 쉬워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다윗 왕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부모님에게 부여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연약하고 사악해서 부모 자식 간에도 상처를 주고받을 때가 있지를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서로 용서하고 깊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모를 미워하고 불효한다면 그의 신앙은 거짓이요, 가증스러운 신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하고 섬긴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부모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부모를 사랑하는 일이요, 부모를 사랑하는 일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반대로 부모를 미워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이요, 부모를 홀대하면 하나님을 홀대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길 원하십니까? 부모님께 효도하십시오.

부모님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작은 위로와 작은 효도만으로도 감격해 하십니다. 그래서 자녀에게서 받은 태산처럼 큰 상처도 티끌과 같이 털어버리십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부르시면서 화목한 관계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하오나 여러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지만, 부모님은 속히 우리 곁을 떠나십니다. 아무쪼록 부모님께 효도의 기회가 살아지기 전에 꼭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영적인 부모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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