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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내가 주를 보았다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4-23 (토) 19:31 12년전 3400  

제목 : 내가 주를 보았다.

사26:16-19, 요20:11-18

1997년 4월 이태리 토리노 대성당의 내부가 누전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2000년의 교회 역사를 되돌아 볼 때, 화재나 이교도들의 방화로 성당이 불타는 일은 가끔 있었기에 성당 화재 그 자체는 새삼스럽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화재가 세계인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 성당에 보관 되어 있던 예수님의 성의 때문이었습니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화염에 휩싸인 성당 안으로 목숨을 던져 뛰어 들어갔습니다. 3중 방탄유리를 도끼로 깨고 세마포가 담긴 성궤를 품에 안고 뛰어나오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40년 전 프랑스의 한 잡지사가 세계의 저명인사 100명에게 ‘지구의 파멸이 시작된다면 가장 먼저 반출해야 할 지구상의 최고의 보물이 무엇이겠느냐?’는 설문에 1위를 차지했던 것이 바로 이 ‘예수님의 수의’였습니다. 2위는 미로의 비너스상입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너스 상 앞에 서게 되면 누구나 그 뛰어난 예술성에 놀라 황홀경에 빠집니다. 그러한 예술품을 제치고 폭 1미터 5센티미터에 길이 4미터 20센티미터에 불과한 세마포, 그것도 시체를 쌌던 삼베조각이 어떻게 인류 최고의 보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까?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여인들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뛰어갔을 때, 무덤 속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이 가지런히 개어져 놓여 있었습니다. 미의 극치인 미로의 비너스 상을 제치고 이 수의 세마포가 세계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이 땅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예수님 부활의 증거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왜 이태리 소방대원들이 불길이 휩싸인 토리노 대성당 안으로 뛰어 들었는가?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값진 보화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이 세마포를 목숨을 걸고 반출해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무덤의 주인이었던 아리마데 요셉이 이 세마포를 예수님에게 드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수의로 삼았다고 합시다. 이 세마포는 그의 시체와 함께 이미 썩어서 진토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소중한 보화를 지니고 있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지금 제아무리 값비싼 보화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시체와 함께 진토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시체를 감싸는 하찮은 삼베조각 수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신 주님, 영원한 진리를 위해 바쳐져 쓰이게 된다면, 그의 가치는 상상을 뛰어넘는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시신을 감쌌던 보잘 것 없는 수의를 지구상의 최고의 보물이 되게 하신 주님께서 어찌 당신의 도구로 쓰임받길 원하는 사람을 더욱 존귀하게 하시지를 않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존귀하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일 것입니다. 그녀는 당시 로마 군인들이 주둔해 있던 기지촌 환락의 도시 막달라에서 창녀 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까지도 썩어버린 일곱 귀신들린 인생 쓰레기나 다를 바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마치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처럼 주님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그녀는 주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알게 된 날부터 한시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도, 그의 무덤까지도 막달라 마리아를 주님과 갈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자 겁에 질린 제자들이 다 도망쳐버린 그 텅빈 절망의 공간을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던 날 이른 새벽, 아직 온 천지가 어두움으로 덮여 있을 때,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장사되신 무덤을 찾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무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주님의 시신이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도난당한 줄만 알았습니다. 두렵고, 기막힌 일이 아닙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간 후에도, 그녀만은 도저히 이대로는 주님의 무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밖에 쓸어져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주님을 통해서 얻은 새 생명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번 작심한 주를 향한 그녀의 마음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한 도구로 쓰여지기만을 소원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마리아야’하고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선생님, 랍오니’하고, 달려가 주님의 품안에 안기려했습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광스럽게도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만백성을 살리는 영생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을 잃고, 주님의 시신까지도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내가 주님을 보았다” 이렇게 희망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승리의 소식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남으로 얻게 된 평안과 위로, 소망과 기쁨에 충만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거기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산 증인이 되는 영광이 더해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보았다. 주님은 살아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된 것만도 감격스러운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통해서 희망과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볼 때, 뛸듯이 기뻤습니다.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참 생명의 능력과 자신의 배에서 샘솟는 평강의 기쁨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에 감격한 수가성의 여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는 물 길러온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시요. 이는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이 여인의 말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여생을 어떻게 보냈을 것 같습니까? 수가성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여생을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마을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해 냈듯이,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냈겠습니까?

그녀는 자기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 “내가 다시 사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본래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던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성녀로 변한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요? 시신을 쌓았던 세마포를 지상에서 최고의 보물이 되게 하신 주님이신 데, 비록 창녀일지라도 사람인데, 막달라 마리아를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 되게 하셨겠습니까? 이것이 부활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듣는 이들을 부활시켜 새 생명을 얻게 하고, 그의 생명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제아무리 비천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창녀만 못하겠습니까? 창녀도 주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고, 부활의 첫 증인으로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는데, 우리가 주님께 바쳐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귀하고 존귀하게 쓰임 받게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시길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길을 잃고 죽음의 광야에서 방황하는 양 한 마리를 찾아내는 것,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죄인 하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내는 일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험산계곡과 백길 낭떠러지기를 마다 않고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얼마나 숭고하고 거룩한 사랑의 모습입니까? 내가 참 생명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의 사람으로 가꾸어 가는 일이올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께서 오실 때에, 그 분 앞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야말로 나의 영광이요, 면류관이요, 기쁨입니다.”(살전2:19-20) 바울 사도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에게 자랑할 수 있는 보화는 오직 내가 주님께 전도한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한 사람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요. 그것만이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숭고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고 바울 사도는 증거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주님 앞에 내놓고 자랑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십니까? 아직도 주님 앞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다면, 신앙생활 잘못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나 자신을 불멸의 가치로, 측량할 수 없는 보화로 만드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십시오.” 이렇게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한 시대를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일입니다. 지금 리비아나 이라크,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죽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교도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들도 원수가 아니라, 친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증오가 아니라, 오직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저 북한 땅에도 부활절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북한 동포들을 더 이상 원수라고 불러서는 안 되며,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야합니다. 저 역시 김정일 부자나, 공산당은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굶주리고 헐벗고 억압받는 불쌍한 내 동포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경원시해서는 안 됩니다. 한 형제, 자매로 끌어 안아야합니다. 먼저 우리들의 마음에서 휴전선을 없애버리는 일, 이것이 우리 민족 모두를 살리고, 하나 되게 하는 부활정신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정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정치를 부활시켜야합니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얼마든지 정치를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년부터 일 년 간격으로 총선과 대선이 치려집니다. 우리는 그 동안 줄기차게 치욕스러운 정치를 개탄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정치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얼마나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지역감정과 흑백논리, 사상논쟁을 부추겨왔습니까? 나라를 사분오열시키고,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가로막고, 국민정신과 의식, 도덕성을 병들게 만들고 타락시켜 왔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라의 부끄러운 정치를 바로 세워야합니다.

부활은 나 하나 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부활을 증거하며 산다는 것은 우리 민족과 인류역사, 사회 전반에 걸쳐 의와 진리, 자유와 평등,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나게 하는 일입니다. 사랑과 평화, 진실이 꽃피워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 춤을 추며, 기뻐하는 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들 심령 속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증인으로 삽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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