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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아모스의 생애와 그 예언

김재준 (기타,,목사) 2011-02-10 (목) 17:21 13년전 6013  
                                        아모스의 생애와 그 예언

 



                                                                                                               김재준 목사




1. 남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의 남방 약 12리, 드고아의 광야는 참으로 거친 고원이다. 2,888척의 높은 지대 남서북은 석회암으로 된 산들로 가로막히고 오직 동쪽만이 트여서 15리나 되는 황량 그대로의 경사지가 사해의 골짜기에 잠기고 말았다. 저주의 바로 다음 동리에 사는 것 같은 느낌, 죽음과 삶의 사이가 너무나 가는 선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곧 여기인가 한다.

여기에서 양 치는 기운찬 야인 하나, 넓게 발 아래 널리고 뭉키고 한 사막의 구릉들을 밟고 다닐 듯이 노려볼 때 그의 가슴은 난 대로의 패기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나 사해 골짜기로 치밀어 오는 농무(濃霧) 섞인 찬바람이 그의 몸을 소름끼치게 하고 그의 눈을 어둡게 할 때 그는 "백주(白晝)를 변하여 어두운 밤이 되게 하며 바닷물을 불러 올려 땅 위에 퍼붓는"(5:8) 여호와의 앞에 꿇어 엎디어 지극히 약한 것은 인생이라고 탄식 섞인 찬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 사해 건너편 모압의 산머리들이 회색을 띠고 어언(於焉)에 태양이 그 막힘을 뚫고 솟아올라 그의 발 아래에 찬란한 빛의 물결을 넘치게 할 때 그는 메시아의 새 왕국을 마음에 그리고 소망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2. 아모스, 그는 양 치고 뽕나무 기르는 한 가난한 목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 황량한 고원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내신 힘있고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와 더 가까이 이야기할 수도 있었으며 깊이 고요히 명상에 잠기는 특권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때때로 양털 팔러나 또는 무슨 다른 일로 북왕국의 도시 베델이나 브엘세바 등지에 다니러 내려간다면 그의 눈에 비치는 것, 귀에 울리는 것, 어느 것 하나 패악(悖惡)과 불의 아님이 없었을 것이매 그의 가슴에 가득 찬 것은 오직 의분, 분개의 염(念)뿐이었을 것이다.

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아래로 세상을 살필 줄 알고 그들의 인과(因果)를 선명(宣明)할 수 있는 이가 곧 예언자의 자격을 가진 이일 것이니 이에 아모스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예언자로서의 준비를 쌓아 가는 것이었는가 한다. 때에 전에 없던 지진, 기아, 한재(旱災), 상재(霜災), 풍재(風災), 질병 등(4:6-10 참조) 죽음의 그림자가 뒤를 이어 닥쳐오는 것을 본 그는 보통 사람처럼 그저 심상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을진대 성읍에 재앙이 내리겠느냐"(30:4-6 참조)고 그의 심신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쏠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친히 나타나시었다. 그에게는 이상(異像, vision)이 이엄이엄 나타나 보였다. 땅위에 온갖 소채(蔬菜)를 말끔히 갉아먹는 황충의 환상(7:1-3), 바다를 삼키고 땅을 먹으려는 무서운 불길(7:4, 5) 등 심판의 그림자가 역력히 보였으나 아모스의 청대로 주께서는 아직 멈추신 것을 그는 감사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다림줄(準繩)의 이상(異像)(7:7-9), 여름 실과의 이상(8:1-3)을 보았을 때 그는 여호와의 굳은 뜻을 살폈다. 삐뚤어진 성벽이 무너질 것과 난숙(爛熟)한 실과가 떨어질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처럼 이미 삐뚤어지고 썩어서 주 앞에 불의와 난륜(亂倫)만 보이고 있는 북왕국의 운명은 오직 무너짐과 종말을 고할 것밖에 다른 것이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입으로 친히 하신 이 소식을 들은 아모스는 감연(敢然)히 일어나 양의 무리를 뒤에 남기고 산을 내려가 베델의 군중 앞에 그 굳센 들사람의 웅자(雄姿)를 나타내었다.


"사자(獅子)가 고함쳤거니 누가 무서워하지 않을 것인가? 주 여호와가 말씀하셨거니 누가 예언하지 않을 것인가?"(3:8).


3. 그러면 아모스의 눈에 비친, 망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사회상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앗시리아 대제국이 자국내의 반란을 진정시키느라고 그 남하정책을 잠깐 정지한 동안 북왕국의 명군 여로보암 2세는 당시 피폐한 시리아 왕국을 역습하여 연전연승의 세(勢)로 전에 잃었던 국토를 전부 회복하고 후인(後人)에게 이스라엘의 구주라는 칭까지 듣게 되었다(왕하 14:27).

그리하여 정치적 군사적 승리는 물질적 경제적 풍족을 초래하였으며 따라서 사마리아는 전고미증유(前古未曾有)의 '호경기'를 정(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소국민으로 기운 펴지 못하고 살던 자들이 갑자기 돈 많아지고 뽐내게 되는 때 그들의 마음은 상태(常態)를 잃고 물질의 홍수에 빠져 덤벙거리게 되었다.


"월삭(月朔)이 언제 지날까. 우리가 곡식을 팔련다. 안식일이 언제 지날까. 우리는 밀을 내련다. 에바는 적게 세겔은 크게 그리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자.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고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자"(8:5-6).


이렇게 순이기적 동기로 수단도 방법도 가릴 것 없이 '돈' 벌기에만 급급한 그들은 그 모은 돈을 어떻게 쓰며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가? 저들은 여름의 피서, 겨울의 피한(避寒)을 위하여 훌륭한 석조전을 지어 놓고(3:15) 가장 귀한 향유를 몸에 붓고(6:6) 다마스쿠스 비단 방석을 깔고(3:12) 상아 침상에 몸을 지키며(4:4) 식탁에 산같이 쌓인 어린 양 어린 송아지의 진미도 그들의 식미(食味)를 만족시키기에는 오히려 부족했던가 봐서(6:4) 미친 피가 혈관에 넘쳐 흐름을 따라 대접으로 술을 마시고(6:6) 거문고에 맞추어 야비한 노래를 부르며(6:5) 간 곳마다 제단 옆에 전당 잡은 옷을 펴고 그 위에 드러누워 벌주(罰酒)를 통음(痛飮)하고 심지어 아비와 아들끼리 한 여인에게 음행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2:7-8) 말하자면 의리도 염치도 없고 오직 정욕과 방종을 마음껏 향락하려는 것이 당시 지배계급의 생활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부와 지위와 명예를 가졌다. 그러나 어떻게? 아모스의 날카로운 눈에는 배후에 움직이는 해골의 무리가 역력히 비쳤다. 저들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그 밀을 징발하다시피 하였으며(5:11)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궁핍한 자의 재판을 억울하게 처리하며 불공평한 도량형으로 매매의 분량을 속이고(8:5) 어려운 이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어 헐떡거리며(7:7) 오직 포악과 겁탈로 그 궁을 채운(3:10) 것이었다. 즉 그네들은 가난한 이의 피, 천한 이의 살로 그 배를 불리며 그 집을 넓혔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을 본 당시의 소위 여호와를 믿노라는 종교가들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가? 가장 점잖고 지혜 있는 자라는 이들은 '때가 악하니 말해 무엇하랴'는 방관, 독선, 침묵주의를 지켰으며(5:13 참조) 그 아래 보통 종교가라는 제사(祭司), 관속(官屬) 예언자의 무리는 오직 관료적이요 직업적이어서(7:7-17 참조) 지배계급의 옹호 역(役)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종래의 비윤리적 원시종교의 신학을 지지하여 부와 영예는 여호와의 축복의 결과요 빈과 천은 여호와의 저주의 결과이매 '수원수구'(誰怨誰咎)리요 하는 태도를 가졌으며, 특히 여호와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움으로 국부병강(國富兵强)하여 국토가 하맛 입구로부터 아라바 해(海)까지 넓혀졌으니 이것은 더 크고 더 놀랄 만한 대승리의 날, 즉 '여호와의 날'에 대한 전조라 하여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날' 하고 말끝마다 주께서 더 큰 부귀, 더 큰 침략을 보여줄 '여호와의 날'을 함부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제단에 제물 바치기를 더욱 힘쓰라, 그리하여야 '여호와의 날'에 더 큰 부귀 영화를 누리리라, "아침마다 제사 지내고 매 삼일에 십분의 일을 드리며 누룩 넣은 떡을 불살라 수은제(酬恩祭)를 지내고 즐겨 드리는 제사를 전파하여 밖에 광포하라"(4:4-5) 하는, 즉 제사, 의식주의를 함부로 고조하여 그 들어오는 제물로 자기네의 먹을 것을 불리는 것이 그네들의 능사였다.


4. 이리하여 도덕과 윤리, 종교의 신성 등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고 의와 진리는 설 곳이 없게 되었을 때 어느 가을의 대축일, 수천의 군중이 베델의 제단에 둘러싸고 새 포도주에 얼근한 눈을 들어 뭉게뭉게 떠오르는 번제의 연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난데없는 촌(村)사람 하나 군중 앞에 나서서 유다 사투리로 '이스라엘의 만가'(輓歌)를 불렀다.


"처녀 이스라엘이 넘어짐이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거꾸러져 자기 땅에 늘어짐이여, 부둥켜 일으켜줄 자 하나 없도다."


이것이 그가 없어져 가는 이 왕국의 최후를 조상(弔喪)하는 쓰린 만가였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는 열방과 및 남북 왕국의 죄에 대한 주의 심판이 날카롭게 쏟아져 나왔으니(9:1-4 참조) 이 청천벽력의 선고를 받은 군중은 물 끓듯 뒤숭거렸을 것이며 더군다나 베델의 제사장, 아마샤는 놀란 나머지 일편 왕에게 주상(奏上)하고 한편으로는 직접 아모스를 향하여 "가서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서 밥을 먹고 예언하라"(7:12)고 명령하는 등 창황망극(愴湟罔極)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아모스의 대답 "나는 본래 선지자도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오. 나는 본래 목자요 뽕나무 배양하는 자로라"(7:15) 한 것은 자기가 직업적 예언자들과 그 유를 달리함을 은연중에 풍자한 것이다.


5. 우리는 아모스가 전후 몇 번이나 베델에 나타나 예언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직재간이(直裁簡易)한 예언은 그 범위가 넓어서 다마스쿠스(1:3-5), 블레셋(1:6-8), 두로(1:9-10), 에돔(1:11-12), 암몬(1:13-15), 모압(2:1-3), 유다(2:4-5) 및 북왕국에 일일이 관련되었으며 특히 북왕국에 있어서는 정치가, 실업가, 종교가, 일반 서민 등에 일여(一如)히 논급(論及)되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는 무지한 종도(宗徒)들에게는 그 날이 승리와 영예의 날이 아니라 "암흑이요 빛이 없는"(5:18) 날, 즉 죄에 대한 보복의 날임을 경고하였다. '하나님의 의', '사람의 죄악', '심판', 이 셋은 아모스 예언의 세 가지 중추이며 서로 연결된 고리[環]이다.

"공도는 물같이 흐르고 정의는 찌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5:24)는 것이 아모스의 갈망하는 바였다. 그는 참으로 '의(義)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름같이 한 자'였다. 그는 온 세상의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의 모든 관계가 하나님의 의 위에 세워지고 운행하여지기를 바라고 그를 위하여 싸우다가 그를 위하여 죽은 자이다.

이제 우리는 이 불의로 가득 찬 세대에 있어서 이 의의 예언자의 용기를 부러워함과 동시에 이 예언자의 의를 이루어주신 그리스도의 의만을 선포하며 그를 위하여 분투하며 또 생명을 버림이 마땅할 것 아닌가 한다. 「落穗」(1933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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