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김재준

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야의 내면 생활

김재준 (기타,,목사) 2010-12-09 (목) 14:26 13년전 4754  

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야의 내면 생활


「落穗」(1933년 6월 10일)



                                                                                                       長空 김재준 목사





다윗 왕업이 바야흐로 기울어져 가는 저녁, 눈물과 피와 힘으로 짜내인 예레미야의 일생은 너무나 심각하고 다단(多端)하였다. 그리하여 탄식없이 읽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예언시(預言詩)이다. 그러나 그의 예언시를 재료로 하고 계통 선 전기를 쓰려고 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을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제 미비하나마 뜻 두었던 것이니 써 이 대예언자의 편영(片影)이나마 나타낼 수 있으면 행심(幸甚)일까 하고 붓을 든 것이다.


1. 앗시리아의 평원에 감도는 저기압이 각일각(刻一刻)으로 가나안 복지(福地)를 향하여 나아오는 것을 유다의 일한촌(一寒村) 아나돗의 청년 시인 예레미야는 거의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귀인의 피를 이은 그의 마음은 모르는 체하고 지낼 수 없었다. 다윗 왕 때로부터 내려온 귀한 가족적 전통과 썩을 대로 썩은 현하(現下)의 국정(國情)과를 서로 비교해 보고서는 그 차의 너무나 현격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선배 예언자, 특히 호세아의 불같이 뜨거운 예언시가 그의 가슴에 깊은 감회를 일으켰을 것은 물론이었을 것이다.

때때로 거친 유다 광야를 거니는 그는 최후로 한번 우렁차게 외치고도 싶었을 것이나 그에게는 아직도 그렇게 자신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는 아직도 객관적 권위자인 여호와의 소명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2. 때는 기원전 626년 늦은 겨울, 만상(萬象)이 다 자는데 혼자 깨인 듯이 꽃핀 아몬 나무를 바라보며 거친 유다 광야를 거니는 그에게 갑자기 "너를 배 안에 형성하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태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했으며 만국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임명하였다"(1:4, 5) 하는 엄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젊은이인 그에게는 너무나 장엄하고 기대에 넘치는 소명이었음에 그는 억색(臆塞)한 마음으로 사퇴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은 벌써 그를 붙잡고 놓지 않음을 어찌하랴.


3. '쇠기둥', '구리담'의 약속과 함께 그는 예언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서민의 종교'인 바알, 아쉬타데 숭배는 윤리적 종교인 여호와의 예배까지도 극도로 타락시켜서 산 위나 나무 밑 가는 곳마다 사신음사(邪神淫祠), 거기서 떠드는 음탕한 송가(誦歌) 소리는 밤낮으로 이 예언자의 귀를 괴롭게 하였었다(2:2-3:23 참조).

청년들에게서 흔히 보는 절제없는 신념과 흥분을 가지고 그는 이 더러워진 백성에게 내릴 징벌을 선언하였다. 끓어 넘치는 가마같이 북방으로부터 밀려오는 병란!


"들으라! 단에서 달려오는 척후! 에브라임 언덕에서 오는 흉보(凶報)의 전초(前哨)! 백성들에게 경고하라. 보아라, 저들이 온다. 알게 하라. 예루살렘에!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오 내 괴로움이여! 오 내 가슴이여! 내 심장이 너무나 뛰놀매 걷잡을 길 없구나. 저 북소리 내 귀에 들리네, 저 전쟁의 경종소리"(3:19). 1)


그는 이 풍전의 등화 같은 자국의 운명을 보고 징벌의 선고를 내리면서도 속마음은 한없이 아팠을 것이다. 그리하여 상상컨대 다시 들 밖에 나가 북으로 에브라임의 연산(連山), 동으로 요단의 계곡, 그 건너편 길르앗의 고원을 바라보며 깊은 감상에 잠긴 때 그에게는 '혼돈'의 비전이 보였었을까 한다.


"내가 땅을 보았다. 그러나 이 혼돈! 하늘을, 그러나 아 빛이 없더라. 내가 언덕을 보았다, 그러나 아 저들은 떨었다. 그리고 모든 산들은 몸부림치더라. 내가 보았다, 그러나 아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공중의 온갖 새들도 다 날아가 버렸더라. 내가 곡식 밭을 보았다, 그러나 '사막'! 그리고 그의 모든 도시는 허물어져 버렸더라"(4:23-26).


'혼돈과 황폐', 이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는 일루(一縷)의 희망을 가지고 국가적 회개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다니러 온 그는 우선 그 사회 각층의 실정을 탐사하였다. 그는 어디서 하나 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는 자를 만나 볼런가 해서 거리를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은 것은 오직 역사적 사변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전연몰각(全然沒覺)한, "그 낯을 바윗돌같이 굳세게 하며 돌아오기를 거절하는 자들이었다. 그는 다시 발을 돌이켜 교양 있는 소위 지도자층을 찾아보았으나 그 역시 조금도 다를 것 없는 몰각무도한 자들이었다"(5:14 참조)고 탄식하였다.

이렇게도 각 계급을 통하여 극도의 부패와 무능을 보았음에 그는 오직 홀로 가두에 외치는 반향 없는 소리 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속진(俗塵)에 매인 인생의 귀를 울리기에는 너무나 유다른 말인가 한다.


4. 이렇게 하기를 5년! 때는 기원전 621년 봄, 성전 구석에서 모세의 옛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지방의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되며 그때 유월절을 이용하여 일세(一世) 명군 요시야 왕의 주재하에 전국적 회의가 열리었다. 그리하여 전고미증유(前古未曾有)의 장엄, 숭고한 유월절을 지키었다는 대표자들의 전언은 곧 사람들의 한결같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정부로부터의 질풍노도적 종교 숙청운동이 일어나 성전의 정화, 사신음사(邪神淫祠)의 파괴, 지방에 널려 있는 여호와 제단의 파기와 예배의 집중 그리고 고귀한 윤리적 생활의 제창! 이런 위대한 개혁운동이 놀랄 만치 신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 세기적 개혁운동을 본 예레미야는 과연 어떠한 태도를 가졌을까? 학자들 사이에 많은 흥미를 일으키는, 아직도 귀결을 짓지 못한 문제의 하나다. 그가 과연 이 운동에 직접 참가한 여부는 미지의 일이라 할지라도 전연 방관적 태도를 취했으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와 같이 열렬한 예언자로서 그렇게 큰 종교운동을 그저 냉정하게 수수방관했으리라는 것은 그의 성격상으로 보아서나 그의 예언자적 사명으로 보아서나 도무지 불합리한 추단(推斷)이라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 운동에 찬의를 표했거나 혹은 반대를 표명했을 것이다.

그가 운동에 찬의를 표했으리라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말하는 바인데 이제 그 이유를 열거한다면 (1) 우선 이 운동의 근본적 정신, 적어도 바알 종교의 박멸이라는 소극적 방면에 있어서는 예레미야의 정신과 부합되는 것이며 또 이 율법의 윤리적 종교적 교훈도 범위는 좁다 할지라도 결코 예언자의 교훈보다 저열한 것이 아니며, (2)  더군다나 그의 요시야 왕에 대한 높은 찬사(22:15,16), (3)  621-608년까지에 그가 비교적 침묵을 지킨 것, (4)  개혁운동의 중심인물인 사반 일가가 그에게 바친 꾸준한 충성(36:10-20) 이런 것들이다. 그가 결코 개혁운동을 공공연하게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찬의를 표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 이유도 역시 그가 그 지방 제사장의 직계이면서 그 지방의 여호와 제단을 파괴하는 데 직접 찬동했다는 것을 분격해 한 소행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그가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서 전파했다는 소위 "이 언약"(this Covenant, 11:8)이 그때 선포한 신명기 원본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부당한 추단이 아닌 줄 안다. 물론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자작이 아니요 신명기적 가필이라는 것은 문체와 내용을 보아 시인 안 할 수 없는 사실이나 본시 예레미야서가 그의 서기(書記)로 있는 그리고 신명기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바룩의 수기(手記)한 것이며 예레미야의 자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레미야의 선포한 사실에 조(照)하여 그의 용허(容許)를 얻어 바룩이 스스로 써넣을 수도 있는 것이니 자작 여부는 그다지 큰 문제 될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모든 증좌(證左)로 보아 예레미야가 개혁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가 그저 정부나 제사장의 지휘를 받아 일개의 사환처럼 움직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그의 성격상으로 보든지 그의 예언자적 권위로 보든지 결코 타당치 못한 추단인 까닭이다. 생각건대 이때에 그는 예언자의 권위로 이 운동에 대한 여호와의 시인을 선언하고 그윽이 그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5. 그 본향 사람들의 가증한 음모를 겨우 벗어난 예레미야는 침묵과 명상과 기도로 근 십 년 동안의 고요한 생활을 이어 갔었다. 요시야 왕의 현정(賢政)과 종교개혁의 운동에 그윽한 기대를 가지고 고요히 그러나 날카롭게 모든 경구를 살피면서 그는 마음 졸이는 침묵을 지켜 온 것이다.

'서민의 종교', 이것은 그렇게 용이하게 없어질 것이 아니었다. 도끼를 들어 그 나무를 베어 넘어뜨릴 수 있었으나 그 뿌리는 너무나 깊이 서민의 마음속에 뻗어 있었던 것이다. 개혁운동은 기대하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수없는 지방의 실업제사(失業祭司)들은 수도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이 제사군(群)의 생활을 보장하려면 부득불 제물을 많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제물이 불어나려면 의식(儀式)의 필요를 고조하고 율법과 성전에 대한 광신적 태도를 조장하여야 할 것은 당연한 추세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종교는 또다시 의식과 미신에 빠져서 그 도덕적 생명은 질식 상태에 들고 말았던 것이다.


6. 예레미야의 명상이 이 종교개혁의 타락에 미쳤을 때 그의 가슴은 극도로 침울하였다. 신명기 법전이 아무리 훌륭하고 여호와의 성의(聖意)에 부합된다 할지라도 인연(因緣) 없는 백성들은 마치 전장에서 날뛰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제 마음대로 달아나고(8:6) 간교한 서기관들은 그들의 거짓 붓을 들어 제물의 종류만 첨기(添記)하고 있었다. 민중은 날로 성전과 율법에 대한 미신으로 빠져 들어가고 기만과 범죄가 형제 사이에 공공연하게 늘어가되 저들은 "토라(율법책)가 우리에게 있으니 평안은 우리의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성전은 바알의 제단을 대신하여 '물신'(物神)이 되고 율법은 바알을 대신하여 우상이 되어간대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고요한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는 예언자적 의분에 못 이겨 이렇게 부르짖었는가 한다.


"어떻게 너희가 말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지혜 있노라, 여호와의 법전(Torah)이 우리에게 있노라고. 보아라, 서기관들의 거짓 붓이 이것을 거짓되게 하고 말았다."


당시에 기록된 여호와의 법전이라면 신명기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것이 예레미야가 신명기 운동에 대한 일종의 실망을 말한 것이라 함은 그리 부당한 논단이 아닐 것이다.


7. 이러한 위기에 므깃도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다윗 후에 처음 보는 명군 요시야 왕은 관 속 옛사람으로 궁중에 돌아오게 되었다. 공포와 혼란, 음산과 미신, 수도의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웠다.

나훔의 니느웨에 대한 예언(預言)이 성취된 것을 본 거짓 예언자들은 이사야의 '시온 불가침'의 예언을 광신하고 오히려 낙관적 예언만 말하고 있었으나 참된 예언자에게는 오직 참극만 예감되었다.

비극의 왕자 여호아하스, 새 임금 여호야김, 시온의 기울어지는 왕업은 주마등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오직 이 비탄의 예언자에게 무거운 짐을 하나씩 둘씩 더하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오, 내 머리가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샘 되었던들! 내 백성의 살육을 위해 밤과 낮을 울고나 지낼 것을."


비탄이 그 극에 달한 때 그는 부르짖었다.


"오, 내가 저 사막에 길손의 거처나 가졌던들 차라리 내 백성을 떠나 아주 가버리고나 말 것을."


이 비통은 만대를 통하여 뜻 있는 이로 하여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게 하는 심각한 장면의 하나이거니와 그렇다고 그가 아주 주저앉은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서광이 비치며 새로운 힘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새 진리의 탄생을 위한 괴로움이었던가 한다. 그는 이 신명기 운동에 대한 '환멸의 비애'랄까를 통하여 의식주의(儀式主義)의 아주 무의미한 것과 여호와 종교와 도덕생활의 절대불가분적 관계와 여호와와 그 예배자 사이에 있는 '언약'(言約)의 정신화에 한 약진적(躍進的) 이해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8. 그에게는 다시 한번 일어나 싸움할 때가 왔다. 그는 성전 문 어귀에 서서 의식주의와 성전 광신자들을 향하여 가장 날카로운 선언을 내렸다.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이런 잘못 인도하는 말을 믿지 말라. '여호와의 성전, 여호와의 성전, 여호와의 성전이 이것이라'고… 무엇이란 말이냐. 도적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며 맹세하며 바알에게 제사하고 그리고서는 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고, 이런 가증한 일을 범하려고! 너희는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여기느냐.'"


이 용감한 도전은 물론 탐심이 가득한 왕과 제사(祭司)들이며 미로에 든 광신배들의 격노를 샀을 것이다. 특히 그는 아직도 예언자로서의 권위가 확립되지 못한 초기였으므로 조소, 능욕, 비난의 소리가 공으로 사로 그에게 퍼부어졌을 것이며 어떤 자는 그의 첫 선언인 북방으로의 병란이 성취 안 된 것을 들어 증거 삼아 비난도 했을 것이다.


9. 이렇게 하여 당시의 지도계급과 정면 충돌한 그는 받은 것이 오직 능욕과 모독이었다. 동양인의 연(軟)한 감정을 가진 그는 또다시 의혹과 고민에 잠기게 되었다. 그가 믿는 여호와는 악을 벌하고 선을 상(賞)하는 전능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악인의 세력은 선을 누르고 뻗쳐 나가는데, 오직 하나 여호와의 사자(使者)인 그는 홀로 웃음거리밖에 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그의 마음의 진자(振子)는 멀리 그의 출생에까지 돌아갔다. 왜 내가 태어났느냐?


"너를 배 안에 형성하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태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아, 얼마나 큰 축복이냐? 그러나 지금까지의 생활은 어떠한가? 비애, 조소, 능욕의 연쇄가 아닌가(20:7, 8 참조).


"'저주'받아라 내 난 날,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은 축복에서 떠나라."

"내가 오늘 너를 세워 철기둥 구리담이 되게 하리니 저희가 싸우나 이기지 못하리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니라."


이것이 예언자로서 소명 받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여호와의 말씀은 끊임없는 치욕을 초치(招致)한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여호와는 자기가 모독을 받고 자기의 사자(使者)가 치욕을 당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언자를 세우셨는가? 만무한 일이다. 그러면 차라리 예언을 그만두자. 그리하여 여호와에게 욕을 돌리지 않고 그의 사자에게 부끄러움을 더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죄를 더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속이셨소이다. 여호와여! 그리고 나는 속았소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神)으로 불타는 그의 내적 충동은 마치 피어오르는 숯불을 가슴에 담고 뼈 속에 넣은 것 같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자기 충돌과 모순에 고민하는 그는 여호와를 부르며 모든 악법에 대한 복수를 간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정의감을 만족시키고 따라서 고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자연인의 본능적 충동을 고집함으로 인하여 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안 될 일이다.

때가 지남에 따라 그에게는 다시 고요한 이성과 거룩한 양심이 회복되었다. 그의 비평의 눈은 다른 사람에게서 떠나 자기에게로 옮기게 되었다. 과연 나는 절대로 의롭고 다른 사람만이 불의한 것이었는가? 나의 이성은 여호와의 비의(秘義)와 궁극의 목적까지도 해득할 수 있을 만치 맑아지고 깨끗한가? 그리고 내 마음의 척도는 여호와의 마음을 잴 만치 정확하고 또 거룩한가? 그가 자기 마음의 깊은 속을 고요히 들여다보았을 때 그는 겸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무엇보다도 믿지 못할 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병 들었나니 누가 능히 알리오."


"마음을 살피고 생각을 시험하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라"(17:10 참조)고 그는 겸손하게 여호와 앞에 꿇어 엎디어 그의 제단 위에 적나라한 자기의 생활을 펼쳐 놓고 기원을 드렸다.


"당신은 나의 찬송이오매 고쳐주옵소서 여호와여! 그리하면 내가 낫겠나이다. 구원해 주옵소서. 그리하면 내가 구원받겠나이다."


그는 이제 그의 성격과 사생활에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섞여 있음을 자인하였으나 예언자적 공생애에 있어서는 결코 사의(私意)로 한 것이 없음을 여호와 앞에 호소하며 그의 연민을 구하게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당신 앞에 그대로 놓여 있소이다. 나에게 두려움이 되지 말아 주소서. 환난 때에 당신은 나의 피난처로소이다."


이렇게 하여 겟세마네의 쓴 잔은 지나갔다. 여호와의 위로와 연민은 그에게 다시금 이슬같이 내리었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돌이키리라. 그리하여 내 앞에 서게 하리라. 네가 만일 값싼 것이 섞이지 않은 귀한 것을 말한다면 내 입같이 네가 되리라."


"내가 너를 이 백성들 앞에 동성(銅城)같이 굳세게 하리니 저희가 너를 향해 싸울지라도 이기지 못하리라."


10. 자연의 충동이 성령으로 정화된 거룩한 인격은 참으로 동성(銅城)같이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또다시 성전에 서서 죄악으로 가득한 성전과 수도에 내릴 심판을 선고하였다(26:4-6).

제사와 민중은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고 외치며 "일제히 몰려들었다"(9절). 그러나 이제 그는 감상적 시인 노릇 하기에는 너무나 굳세고 높았었으며 세인(世人)은 그의 적 노릇 하기에는 너무나 약했었다. 그는 고요한 그러나 확신에서 나오는 힘있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보아라. 나는 여기 너의 손에 있으니 너의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여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죽이면 한 무고한 피를 너희 머리 위에, 또 이 도시에 더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한다. 이는 진실로 여호와가 내려보내셔서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해 들린 까닭이다"(26:14, 15).


11. 북방으로부터의 병화(兵禍)를 예언한 지 20년, 아직도 그 성취를 보지 못한 그는 거짓말쟁이, 믿지 못할 예언자라고 조소와 능욕을 밥먹듯 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은 "어디 여호와의 말씀이 있느냐, 곧 임하게 해 보아라"(17:14) 하는 우롱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때는 20년을 지난 기원전 605-604년 갈디아와 애굽의 두 사자(獅子)는 앗시리아라는 죽은 고깃덩이를 가운데 놓고 갈게미쉬에서 최후의 결투를 시(試)하였다. 그리하여 패주와 함께 북방의 끓는 가마는 마침내 지중해가로 넘쳐 쏟아지게 되었다. 북방 병화의 예언이 여호와의 말씀 되기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성전과 수도가 폐망하리라는 예언이 망발이라던 자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 이때부터 예레미야는 득의의 예언자였으며 따라서 여호와에 대한 확신이 날로 더하고 국가 장래에 대한 통찰이 더욱 명철하게 되었다.


12. 몰려치는 폭풍우 가운데 있어서 그는 참으로 철주(鐵柱), 동성(銅城) 같은 존재였다. 불의(不義) 횡포한 왕을 책망하며 썩어지고 속화한 제사(祭司)들을 꾸짖으며 자의로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과 싸우며 귀머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해 탄식하며 천견단로(淺見短盧)의 정객을 교도(敎導)하는 피와 눈물로 짜내인 다단한 평생도 이제 허사였던가. 기원전 587년 반역의 족속 유다는 북방으로 잡혀가고 여호와의 신부 같은 성도(聖都)는 황폐한 옛터만 남기게 되었다. 폭풍우는 지나갔다. 막은 닫히었다.


13. 그윽이 속망(屬望)하던 이국의 치자(治者) 그달리야가 미즈바에서 흉검(凶劒)에 넘어진 후 이 노(老) 예언자의 영적 경험은 그 절정에 달했으니 곧 '새 언약의 예언'이 그것이다.


"내가 내 율법을 저희 속에 두고 저들의 마음속에 새기리라. 그리고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그때는 각 사람이 서로 또 각기 그 이웃을 향하여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적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저희 불의를 용서하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리라."


14. 이리하여 불순한 의식적 국가적 종교는 도덕적 영적 개인적 종교로 정화되어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다. 우리는 이제 신의 위대한 경륜을 찬탄함과 동시에 불세출의 대예언자 예레미야의 일생을 앙모하여 마지않는다.









1) 스킨너(Skinner)는 이 시와 그의 다른 유사한 시를 비교 연구한 결과, 이 시는 특히 과도의 흥분과 상상적 기분을 나타냄을 지적하고 따라서 극(극) 초기의 작(작)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 병란은 스구디아 침략(기원전 262년)이었다고 한다.(Prophecy and Relogion, 44ff.).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