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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가에서 쓰는 편지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0-06-14 (월) 12:23 13년전 3630  


6월 11일(금- 오후)

6월의 햇살이 따갑습니다.

북한강 기도처에 도착을 하니 노일경 목사님이 기도처에 앉아 북한강을 바라보시며 독서를 하고 계십니다. 감자가 여물어가는 북한강변의 밭두렁에는 전북동노회 목사님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기도하시고 세워놓으신 솟대와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버드나무를 깎아 만든 솟대에서는 싹이 났습니다. 저 잘린 가지에서 새순이 올라오듯, 절망 같이 보이는 이 현실에도 희망이 움터오는 환상을 보는 듯 했습니다. 솟대 아래는 민들레 무르익은 민들레 씨앗이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민들레 또한 생명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들꽃이지요. 이 모든 생명의 기운이 모여져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4대강에 무차별적으로 삽질을 해대는 반생명의 기운을 몰아냈으면 좋겠습니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밤이 깊어지면서 물새소리가 더욱 더 선명해 집니다. 저 물새 소리가 어떤 새인지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이면서 어찌도 그리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무심하였는지 반성을 합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화가 많이 났습니다.

수천 수 만년 살아 유유히 흐르는 이 강, 수많은 생명의 젖줄인 이강, 거기에 기대어 사는 인간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생태, 생명운동을 한다며 명성을 얻은 이들조차도 어느 날 갑자기 4대강 홍보실에 자원해서 이명박 장로의 나팔수가 되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조금은 뒤로 물러설 줄 알았는데 요지부동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두면 큰일을 낼 사람들이구나 실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뭔데?

고작 분노하고 화내는 일, 아니면 기도하는 일? 이렇게 기도가 무기력한 것일까 싶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기도가 쌓이고 쌓이면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바뀐다는 것이 순진한 생각이 아니라 진실임을 확증받고 싶었습니다.

 북한강은 고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기도처 근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들려오는 굉음처럼 빠르거나 요란하지 않습니다.

고요하지만 멈추지 않는 생명의 맥박소리를 듣습니다. 정중동의 삶,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삶, 그냥 무심히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뭇 생명의 가슴을 적셔 또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강, 그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묵묵히 흐르는 강, 그 강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그 예수님의 마음에 삽질을 하고, 포클레인으로 파헤치고,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을 죽이는 일에 찬동하는 이들까지도 부둥켜안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먹먹해 집니다.

그래도 희망을 봐야겠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기도의 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절망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6월 12일(토-1) - 제법 굵은 비가 어젯밤부터 내림/ 종일 내릴 기세임

새벽녘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때 이른 폭염으로 요 며칠 사이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는데, 이곳 북한강가의 밤은 쌀쌀해서 자꾸만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합니다. 어젯밤에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개막식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간에 지구촌 수많은 이들의 눈과 귀는 그곳에 쏠렸을 것입니다. 간혹은 그렇게 온 인류의 관심사가 한 곳으로 쏠리는 것처럼, 월드컵에 열광하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의 삽질에 죽어가는 4대강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랜만에 내린 비에 목말랐던 대지가 환호성을 지르고, 대지에 남은 적은 물기로 목마름을 호소하던 초록생명은 한껏 기가 살았습니다. 이런 날은 잠시 꽃피우는 일을 접어두어도 좋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그동안 목말랐던 뿌리와 이파리를 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비오는 날 새벽에도 여전히 물새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긴 잠에서 깨어난 나처럼 말입니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자고 깰 때에는 듣지 못하던 빗소리,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자연이 선물한 난타공연이었습니다. 비는 오늘 종일 이어질 기세로 내리고, 송촌리를 감싸고 있는 운악산과 북한강은 물을 많이 타서 희석시킨 먹물을 찍은 붓이 화선지를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린 듯한 형상입니다. 붓이 지나간 자리, 잠시 화선지가 젖었다가 말라버린 것 같은데 희미한 먹이 남아있는 그런 그림을 떠올릴 수 있으시다면, 지금 제가 보고 있는 풍경과 다르지 않은 풍경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거이에 초록 염료도 살짝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초록 염료는 진하기도 하고, 옅기도 해야 합니다. 같은 초록이라도 조금씩 그 빛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온은 긴팔 옷을 입고 있어도 조금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쾌합니다.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 벗들과 차 한 잔 혹은 커피 한 잔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환상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지만 24시간 금식기도회이니 차 한 잔 대신 물 한 잔을, 벗들 대신 비와 새와 바람과 강과 강변에 세워진 솟대와 나무십자가와 나무를 초청합니다.

아,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곳에 자전거도로를 내고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이렇게 살아 유유히 흐르는 이 강을 파헤치고, 직선의 콘크리트에 가둬버리는 것이 강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뻥을 치는 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면,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죽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기어이 이 강에 삽질을 해대는 것이 강을 살리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국민이 반대에 부닥친 이명박 장로님도 기독교인이니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터인데, 도대체 그 분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무지한 국민들을 깨우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의 깊은 속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귀를 막고 불철주야 군부대까지 동원해서 강을 파헤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큰일입니다. 말이 통하면 설득이라도 하면 되지만, 기어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내칠 수밖에 없으니 큰일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내친다는 것은 많은 아픔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변절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신갈나무 투쟁사>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차윤정이라는 여자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4대강 홍보실장인가 뭔가를 맡고 있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지원해서 뽑힌 것이라 하고, 그 이후 4대강 사업을 왜 진행해야하는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 내용을 보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 안에 이미 그런 것들이 들어있었는데 우리가 속았던 것인지, 아니면 돈이나 권력에 눈이 멀어 그동안 자신이 추구해왔던 가치관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엔가 눈이 멀면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남녀간의 사랑에도 콩깍지가 끼는 법이니 자신의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침 7시 03분, 춥습니다.

긴팔 옷만으로는 이 신선한 쌀쌀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침낭을 꺼내 어깨를 감쌉니다. 따스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더워서 못살겠다고 했는데, 하루 사이에 추워서 침낭으로 몸을 감싸는 모습이라니. 그러니까 지금 강이 우리 곁에서 생명을 보듬고 흐르고 있을 때에는 알지 못하다가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땅을 치고 통곡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겠지요. ‘있을 때 잘해!’라는 통속적인 말 속에도 아주 깊은 진리가 들어있네요. 그래요.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한강에 나가 물놀이를 했습니다. 간혹,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사고가 났다는 보도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강이 만든 위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위험이었습니다. 대체로,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퍼간 자리에서 익사사고가 많이 났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강물에 발을 담글 수도 없고, 그 물을 한 번 만져볼 수도 없습니다. 강과 인간은 시멘트 구조물로 단절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4대강을 모두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고 합니다. 지금 바라보는 북한강도 그렇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낚시를 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 강태공들은 북한강과 남한강과 두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퇴촌 혹은 팔당에서 잡은 물고기를 담은 어망을 견주어가며 포인트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수원보호지역으로 묶여 물반 고기반이라는데도 낚싯대를 던질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서울 시민의 상수원을 위해 이곳 강변의 주민들이 강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강물은 이곳 북한강변 혹은 남한강변 주민들의 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각종 규제를 지켜가며, 맑은 강물을 지키려고 팔당유기농단지도 만들었습니다. 강변에 모텔이나 다른 무엇이 들어온 것보다 유기농단지가 들어선 것은 강의 입장에서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을 전부 나가라고 합니다. 환경오염의 주범이 그들이라고 합니다. 기어이 이곳에 자전거도로와 공연장을 만들어야겠다고 합니다. 도시에도 넘쳐나는 자전거도로와 공연장을 두고 이곳까지 와서 기어이 자전거를 타고 공연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지금도 이런저런 공간을 사용하면 자전거를 타는 일도 공연을 즐기는 일도 불편하지 않은데 기어이 농민들을 다 내어 쫓고 자전거도로와 공연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6월 12일(토-2) 잠시 그쳤던 빗줄기가 강해짐

금식기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신지요?

일단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 물만 먹죠. 그런데 기도는 계속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도의 방식이 다른 것이지 이 곳 망루에 올라와 있는 것 자체가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라고 하면 교회에서 두 손 모우고 하는 것, 혹은 철야기도회에서 방언기도 하듯이 해야 기도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기도’하면 떠오르는 상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기도의 의미를 그렇게 단순화시켜 버리면 이 세상에 살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고, 기도는 삶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기도요, 일터에서 일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하거나 심지어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무한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기도를 멈춰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밖에는 남지 않은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정말,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진실한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때로는 비우는 것이 자신을 위한 기도임에도 끊임없이 더 달라고, 복을 달라고 구걸하는 기도만 남았습니다. 결단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는 없고 그저 일방적으로 달라고 구걸만 하고, 그것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은 없다 하고, 떼쓰는 기도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한기총은 한국 개신교단체 중에서 양적으로는 가장 큰 단체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4대강 사업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일에 동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해가 됩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애시당초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라고 거듭 지적하고 있는 맘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껍데기만 기독교의 탈을 쓴 우상숭배자들의 집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그들과 반대진영에 서있는 듯한 진보개신교 단체 혹은 제가 속해있는 기장 같은 경우도 자신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타협하며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싸움에서 타협은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4대강 반대를 외치는 이들 가운데도 어중간하게 혹시라도 이 일을 통해서 개인의 명예 같은 것을 높일 수 있지나 않을까 기웃거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안하는 이들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한기총과 같이 대형화된 조직이 된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기에 우려되는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면 됩니다.

싸워야 할 땐 싸우고, 기도할 수 있을 때는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명예욕에 사로잡힌 이들은 끝내 기사화되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자기의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지 않는 것에 더 속상해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자세가 아닙니다. 정말, 그 싸움과 기도가 진실 된 것이라면 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 어린아이들까지도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세상이 몰라도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미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 뭐가 그리 섭섭해서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까?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 한기총 같은 집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는 교단도 있고 단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 정도까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동네분이 물과 음료를 사들고 오셨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이곳에 온다고 하십니다. 당신들이 있어 그래도 위로가 된다고 하십니다. 질펀한 욕을 섞어가며 현 정부의 정책을 성토합니다. 그렇게 성토를 하고 위로를 받고 돌아가는 분을 보면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을 돕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그를 도운 꼴이 되었습니다. 분노가 쌓이고 쌓여 분출되게 해야 하는데, 그들의 마음을 도닥거려주며 분노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수산의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를 읽을 요량으로 가져왔습니다만 아직 한 줄도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읽어야 겠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니 날씨가 꽤 쌀쌀합니다. 그런데 요 날씨 정도가 서민들에게는 정말 행복한 날씨입니다. 에어컨이나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고 옷만 잘 입으면 되는 그 정도의 날씨 말입니다. 요즘 며칠 날씨가 더워 고생을 한 탓인지 다소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씨가 고마워집니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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