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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이슬과 같은 삶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0-04-18 (일) 09:01 13년전 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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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편 110:3) 

숲은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까지도 넉넉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숲일 것입니다.
숲에 안겨 있는 모든 시간은 너무 행복합니다.
간혹 멋진 나무 아래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요즘은 혹시라도 눈맞춤을 하지 못한 꽃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걷는 일이 더 많습니다.

숲에 안겨 있는 시간 중에서 새벽, 특별히 비 온 다음 날 새벽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숲입니다. 왜냐하면, 풀잎마다 맑은 이슬들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이슬을 바라보면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라는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하지요.

오늘은 그 의미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매일은 주의 권능의 날이라고 고백합니다.

거룩한 옷이라 함은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존재성입니다. 거룩한 옷은 우리의 행실이며,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옷 입을 때, 그는 비로소 주의 백성이요, 거룩한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칫, 이것은 위선적인 신앙이 될 수도 있어서 경계해야 합니다.
옷의 기능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정 정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즉 몸뚱이를 포장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신앙도 자기의 옷입니다.
옷의 종류도 다양하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듯, 신앙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새벽이슬 같은'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편의 시인은 아마도 새벽이슬을 자주 보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새벽이슬은 부지런한 사람들만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런데 '새벽이슬 같은'이가 누구인가 하면 '청년'들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짧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맑고 아름다운 이슬방울이라도 아침 햇살이나 작은 바람에도 이내 말라버리는 것이 이슬입니다.

청년의 시절, 이슬처럼 아름답지만 아주 짧은 순간입니다. 그러니 청년의 때, 그때를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바쁘게 산다는 것과는 다른 말입니다. 선에 대해서, 정의에 대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슬은 둥근 모양입니다. 모난 이슬이 없습니다.
나지 않아 남을 찌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건드리면 그냥 '툭!' 떨어지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마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땅으로 떨어진 것은 도 다른 생명체에게로, 아침 햇살에 하늘로 올라간 것은 다시 비가 되고, 그런 순환과정 후작은 이슬방울은 결국 생명의 어머니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모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을 아프게 하기에 결국 자기도 아프고, 서로 모난 부분들끼리 부닥치며 상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슬에게서 배워야 할 마음 하나, 모나지 않은 마음입니다.

이슬을 맑습니다.
그래서 그 작은 이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잔상이 맺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신비롭지요. 그 작은 이슬방울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니…….
그래서 한 번은 물뿌리개로 이슬방울을 연출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잔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물방울의 구조가 다른 것이겠지요.
작은 이슬방울이지만 아주 고요하게 조금씩 맺혀져야 맑고 영롱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요.
맑아야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거울을 닦고 또 닦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그러니 이슬에게서 배워야 할 마음 둘, 맑은 마음입니다.

개한 사진은 오이풀 일액현상에 의해 생긴 이슬방울입니다.
풀잎 끝에 규칙적으로 달린 이슬방울들이 신비하신가요?
그것은 밤새 내린 비를 흠뻑 먹은 풀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배출한 것입니다.
그것을 '일액현상'이라고 하지요.

이것을 좀 신앙적인 용어로 바꿔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비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텅 빈 충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겨울의 숲은 텅 비어있지요.
그렇게 비어있기에 봄이 오면 연록의 빛깔들을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우는 연습, 가볍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느릿느릿, 작은 것, 낮은 것, 단순한 것, 못 생긴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감히 무슨 이슬을 닮겠다고!' 호통을 치실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히 이슬뿐만 아니라 바다를 닮고 싶은 마음도 품고 있습니다.
그냥 넓고 깊은 바다를 닮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솔직한 고백은 아직도 저는 '더러운 것(?)-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이겠지요-을 보면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물론 선과 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거야겠지요. 그래서 모나지요. 그것을 '솔직함'이라고 포장합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화를 냅니다.
왜 맨 날 손해를 보며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자신이 싫다고 화를 냅니다.
배려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아직도 목자의 심성이 부족하니 너는 현장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어 기관으로 보내주셨다가 쉼의 시간을 주신 것이겠지요.

새벽이슬,
물골에서 맞이한 아침에 담은 것들입니다.
언젠가는 들꽃지체*들 물골**에 모여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누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달팽이가 못되어 늘 바쁘다는 핑계로 봄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들꽃지체 여러분, 이제 곧 5월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 숲에 안기어 아침이슬 한 번 바라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아침이슬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깨우쳐 주시고,
나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들꽃지체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새벽이슬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만나는 이들을 맑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려움 가운데 아파하는 마음이 있는지요?
그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손길로 위로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주> *들꽃지체 :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들꽃교회 회원들입니다.
       **물골 : 강원도 횡성군 갑천 물골에 있는 작은 쉼터, 명상공간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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