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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윤응진 (충북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0-03-23 (화) 18:02 14년전 9464  
신학전문대학원 채플 설교(2007.3.7.)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1.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학우 여러분! 우리에게 새 학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영광과 감사의 찬양을 드립시다. 여러분 모두에게 새 학기가 건강하고 보람된 배움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복된 삶을 훈련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학기에는 이 본관 건물을 사용할 수 없으리라 예상하였는데, 아마도 이번 학기까지 이 건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설계안은 확정되었으나 상세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학내구성원들의 여론을 수렴하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있어 건축 일정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본관과 예배당이 훌륭하게 건축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모아놓고 행한 연설의 핵심구절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제91회 총회는 이 말씀을 총회주제로 선정하여 일 년간 기장 가족들이 신앙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남용될 경우에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담겨 있는 확신과 열정은 자칫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태도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우쉬비츠로 대표되는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나치의 열성당원들도 자신들은 여호수아와 같은 신앙의 열정으로 무장하고 있다 여겼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초토화시키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미국의 네오콘들도 스스로는 여호수아의 신앙과 확신에 동참하고 있다 여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는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회개를 촉구하는 그들은 분명 스스로를 여호수아의 후예라 여기고 있을 것입니다. ‘친미 반북’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기를 결코 꺼리지 않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스스로는 여호수아의 열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공격적인 전도 프로젝트의 이름이 ‘여호수아 프로젝트’(http://www.joshuaproject.com/)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남한 일대를 ‘정탐’하여 선교전략을 세우려 시도합니다. ‘한민족여호수아 센터’(http://www.hanjoshua.org/)에는 ‘사탄의 유기체 공산당’이라는 글이 공지사항에 올려져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도전략들이 정복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어 매우 공격적이라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호수아의 선언을 총회주제로 삼은 이유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총회회보에 실린 주제해설은 이 말씀으로부터 ‘섬김’의 도리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에 대한 성찰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선언의 맥락
여호수아가 선포한 말씀의 뜻을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앞에 나온 성경말씀의 맥락을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제23장에는 여호수아의 고별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고별사는 이스라엘의 대표들을 모아놓고 행한 연설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그가 평생 헌신하였던 이스라엘의 해방투쟁사를 회고하면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몸소 싸우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23:3, 10)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율법만을 담대하게 지키고 행하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호수아는 결코 자신의 영웅담이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고별사에는 정복전쟁의 승리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답게 살아갈 조건을 형성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투쟁하셨음을 증언하는 신앙고백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공격적인 전사인 여호수아의 모습은 여호수아 자신에게는 낯선 것입니다.
24장은 이스라엘의 12부족이 세겜에 모여 계약을 갱신하는 축제를 여는 자리에서 여호수아가 행한 연설문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세겜회의의 주제는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24:2-13에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행동하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말씀’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4-24절에는 선택을 요청하는 말이 이어지고, 24:25절 이하에서는 계약체결에 대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야훼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천명하고 있으며, 동료 인간들에게 그의 결단에 동참하도록 촉구합니다.

3. 어떤 하나님을 섬기려는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 이 선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선언 앞에 제시되고 있는 신앙고백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신앙고백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신 분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스스로를 메소포타미아의 신들, 이집트의 신들, 그리고 가나안 땅의 신들과 구별하신 것입니다.
고대근동지방의 종교 관념에 따르면, 신들은 각기 자신의 지리적 영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들은 특수한 지역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수호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집단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다른 신들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하여 지리적 영역에 따라 신들의 영향을 받던 종교적 관행이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에서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낯선 지역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를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호신이 통치하던 영역에서 불러내어 인류 구원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동반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역을 옮겨가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과 동행하심으로써 방랑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델로 하여 인류전체를 구원할 꿈을 키우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을 선택하시고 불러내셨던 인격적인 신인 야훼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지역의 수호신을 택할 것인가? 이것은 이스라엘이 거듭 직면하였던 양자택일의 문제였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집트 제국에 대한 정치적 저항운동일 뿐만 아니라 이집트 제국을 정당화하는 종교이데올로기에 대한 ‘위대한 거부’였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집트 제국의 수호신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제국의 희생자들과 연대하여 그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투쟁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풍요를 보장한다는 바알이 수호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고달픈 유목민의 삶을 마감하고 안정된 농경생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한 차례 중대한 결단을 하여야 했습니다: 야훼인가? 바알인가? 이 양자택일 앞에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바알주의는 팔레스틴에 형성되었던 도시국가의 계급구조를 견고하게 지원하는 종교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야훼를 택할 것인가 혹은 바알을 택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단순히 종교적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출애굽 사건을 통해 꿈꾸어 왔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가 혹은 농민들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하는 계급사회에 편입될 것인가를 선택하여야 하는 정치적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여호수아의 선언은 바로 이러한 결단에 직면한 12지파를 향한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모여 있는 세겜을 여호수아가 무력으로 점령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주전 13세기 후반과 12세기에 걸쳐 그 장소에서 어떤 형태의 전쟁이나 파괴행위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흔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지역에 대한 점령은 그 지역 주민들의 동의하에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은 계약갱신을 통해 12지파가 이스라엘 공동체로 결속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의 사회사적 지평들을 고려한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정복설이나 이주설보다는 사회혁명설이 더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회혁명설에 따르면, 가나안 땅은 귀족적인 전사들과 관료들로 구성된 계급조직들을 갖춘 도시국가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지배계급은 농촌의 잉여농산물을 수탈하였습니다. 그 결과 농민들은 노동자로 혹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공동체의 생산력과 생산자원의 상당 부분이 전쟁과 지배계급의 사치 생활에 소모되었으며, 또한 호화스러운 종교행사들도 물적 자원들을 낭비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부담에 항거하는 농민들이 투쟁전선을 형성하여 저항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마도 출애굽 사건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야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저항운동을 전개하던 가나안 민중들에게 확고한 혁명의지를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에 대한 신앙은 사회정치적인 혁명과정을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도시국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느슨한 부족 연맹을 유지하면서 자유농민의 농업생산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이의 대립은 출애굽의 하나님을 섬기며 인류평등을 지향하는 혁명세력과 계급지배에 바탕을 둔 도시국가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대립은 결코 타협으로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한 요셉 지파와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가나안의 다른 집단들이 모여서 새로운 종교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이 선언은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께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선언은 근동지방의 여러 지역 수호신들, 특히 바빌로니아 및 이집트의 제국주의적 종교 이데올로기들을 거부하는 선언입니다. 또한 이 선언은 가나안 땅의 계급지배적인 도시국가의 종교 이데올로기들을 거부하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를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을 제국주의자들의 수호신으로 왜곡시키거나 계급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 종교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러한 위험에 맞서서 출애굽의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다른 신들에 대한 신앙과 타협불가능함을 주장합니다. 그의 신앙이 배타적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왜곡이나 위험을 극복하려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훗날 신명기 사가들은 여호수아의 선언을 통하여 바빌로니아 제국의 전쟁포로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전쟁포로들은 거의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호신인 마르둑을 선택할 것인가 혹은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를 선택할 것인가 양자택일하여야 하는 결단의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수호신과 출애굽의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선택은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새로운 신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수호신을 거부하고 야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여 제국주의 지배에 저항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한 사람은 제국주의자들의 수호신과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신앙인들은 이방신들의 흔적들을 제거하여야 하였습니다. 야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배타성은 이처럼 정복주의에 토대를 둔 공격적인 종교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 체제에 저항하는 해방운동의 맥락에서 요구되는 배타성이기 때문입니다.

4. 맺는 말: 이 선언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여야 하는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 여호수아는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는 부족들이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하나 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출애굽을 이루신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분의 사역에 참여하는 신앙인들만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더 이상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 우리는 여호수아와 함께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선언과 함께 우리는 여호수아가 지녔던 야훼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함께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시도들에 대하여 저항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억압과 착취에 대하여 거부합니다. 우리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외면한 모든 종교행사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려는 모든 거짓 경건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다만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사역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뜻에 따라 써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임마누엘 동산에서 함께 학문의 길을 걷는 동지 여러분! 우리는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과 마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이 선언을 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우리들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우리의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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