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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에 관한 좋은 책 - 새로운 전도가 온다 - 소개합니다.

이진권 (인천노회,새봄교회,목사) 2015-03-04 (수) 11:40 5년전 4551  
 
 
길이 보이지 않는 한국 기독교의 미래
파란만장했던 지난 100여 년의 세월을 겪어내며 기독교는 이 땅에 깊이 뿌리내렸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기독교를 서구의 종교로, 특히 식민지 종주국의 종교로 인식했던 반면 한국에서는 조선왕조의 쇠퇴와 몰락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민중과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그 과정 또한 주체적이었다. 기독교는 신분제 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차별과 억압에 주눅 들어 있던 일반 백성들에게 평등의 샘물을 맛보게 하였다. 인사동에 있는 승동교회에서는 백정 출신 장로와 왕손 출신 장로가 함께 같은 당회원으로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존재임을 깨달아 알게 된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였고, 죄의 자각과 더불어 새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열망은 풍전등화 같았던 민족의 위기를 돌파하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민족종교로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전쟁과 근대화로 인한 격동의 시기뿐 아니라, 매우 어렵고 혼란한 시대를 견뎌내는 중요한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해 냈다. 1970-80년대 기독교인들은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앞장섰고, 교회는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고 이촌향도의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안식처가 되었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한국 기독교는 이 땅 구석구석 터를 잡았고 한국교회는 복음의 보금자리가 되어 1세기 만에 천만이 넘는 교인들을 얻는 놀라운 성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개신교의 성장세는 멈추었고, 그 이후로 교인 수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정치권력과의 유착, 기복적이고 내세지향적 신앙과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독선적이고 소통하지 못하는 행태들과 일부 목회자와 신자들의 비윤리적인 모습들로 인해 점점 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교회당만 지으면 사람들이 몰려들던 시절이 지나가고, 하루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교회 건물은 부동산 시장의 매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교인들의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며, 태신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여기저기 순례하는 교인들을 붙잡으려는 교회들의 다양한 활동들이 넘쳐남에도 대다수의 교회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한 형편이다. 사람이 붐비는 거리나 지하철 안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전도자들을 보게 되지만,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 땅에서 불교는 1500년 넘게, 유교는 500년 넘게 주류 정신문화로서 기여해온 반면,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한국 기독교는 이제 300년도 넘기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운명에 처할 것인가?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며, 앞으로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회현장에 있는 목사로, 또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한국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늘 고민해 보지만, 딱히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만 더할 뿐이었다.
전도는 무엇이며 종교는 왜 필요한가
그러던 중 이 책 『새로운 전도가 온다』를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전도가 온다』(Emerging Evangelism)의 저자 존 피니(John Finney)는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자, 교구 전도 자문으로서, 1990년 세계 성공회가 시작한 선교와 전도 운동인 ‘복음화 10년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은퇴 후에도 다양한 교회 모델과 전도, 양육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양육 전도 교재인 『성도여 깨어나라!』, 『엠마우스 코스』 등의 공동집필자이기도 하다. 그는 30년 이상 지역교회 및 교회의 선교와 관련된 문제를 갖고 씨름해 온 현장 전문가임과 동시에 교회의 현 상황, 전도의 본질과 역사, 현대 문화 등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교회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매우 훌륭한 학자이기도 하다. 피터 버거, 지그문트 바우만, 빅터 터너, 디트리히 본회퍼, 나니안 스마트 등 그가 인용하는 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저자의 학문적 영역은 사회학과 인류학, 신학과 종교학을 넘나들고 있다.
다양한 학자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 책이 학자들의 고담준론을 펼치거나 이론가들의 탁상공론이라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현대 세계 교회가 처한 상황 분석, 성서에 등장하는 전도의 모델들과 전도의 본질에 대한 논의, 전도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 분석, 바울 사역을 통해서 전도 사역의 특징과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 등, 매우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가 사용하는 통계 자료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한 치밀한 분석은 기독교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해 깊게 인식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대처하는 우리들의 안일함을 깨닫게 해 준다. 삼위일체 신학에 근거한 교회의 본질 모색과 바울의 전도 설교 분석은 교회가 지켜야 할 전통과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마련하기 위해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구별하여 짚어 주고 있다. 더구나 책의 말미에는 전도에 쓸 수 있는 설교문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교회나 모임에서 전도를 위해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토론거리를 부록으로 실어 놓았다. 전도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이론과 현실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실천적 대안 제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곳곳에 번뜩이는 저자의 통찰과 혜안은 책을 읽는 재미와 의미를 더한다.
이제 책 속으로 한발 더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전도가 정확하게 무엇이며, 도대체 왜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 근본을 묻지 않고 지엽적인 것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기존의 전도 책자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근본적인 이 두 질문은 기존의 전도의 방법과 형식, 내용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교회제도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영성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찾는 현대인들의 종교성에 대해 분석하도록 만든다. 현대인의 종교성을 분석하는 것은 기존의 전도의 방법과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조차도 새롭게 구성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새로운 길로 한 걸음씩 차근차근 우리를 안내한다.
그동안 우리의 전도 방법은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 순수한 열정과 복음 선포의 증인이 되고자 외치는 소리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공격적이고’, ‘생각이 없고’, ‘상스럽게’ 들리는 것일까? 전도자가 말하는 내용, 더 나아가 전도 집회와 친구를 초청하는 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왜 외면당하는 것일까?
저자는 전도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가지 접근법이 있어 왔다고 말한다. 케뤼그마, 유앙겔리온, 그리고 미스테리온이 그것이다. 케뤼그마는 복음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교리 교육의 방식을 택한다면, 유앙겔리온은 복음과 복음을 선포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이 두 가지 전도의 유형은 학교를 세워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리 교육을 제공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지닌 전도자를 훈련시키는 등 그 나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말에 치우친 언어 중심의 전도였고, 논리와 이성을 넘어 더 깊은 체험을 요구하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중들에게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전도가 되어 가고 있다. 자칫하면 말로 하는 전도는 “형편없고, 수다스럽게 말만 하는 그리스도교”라는 인상만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세 번째 접근 방법인 ‘미스테리온’에 대해 역설한다. 즉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활동하시는 신비의 영역을 열어 놓는 것이다. 신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려는 순간 그 장엄함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전도의 영역은 비언어적이며 암시적인 상징과 의례, 소리와 몸짓, 그리고 경험과 분위기, 봉사와 헌신 등 복음이 전달되는 다양한 방식에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현대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성을 추구하며, 종교성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사소통 방식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편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감추어진 분이시다. 교회는 그 신성한 영역, 신비의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 그리하여 종교를 갖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믿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하는 진지한 사람들이 머물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어떤 사람이 기독교 신앙에 이르기까지는 만남과 탐구, 경청과 질문, 그리고 뜸을 들이는 시간들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전도는 너무나 빨리 회심과 결단을 강요하였다. 대학 캠퍼스 의자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사영리 책자를 들고 찾아오는 선교단체 회원을 떠올려 보라! 어떤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서 신앙이 생기고, 성장하고, 무르익어 가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겪고, 냉담자가 되며,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넘어 오는 계기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복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표현하면 그 다음에 자동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이 명료하고 분명하게 표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수학의 항등식마냥 1+1=2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신중한 복음전도자라면 이런 것들을 세심하고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전도의 방법과 형식에 대한 성찰에서 멈추지 않는다. 복음 선포의 내용까지도 다시 되짚어 살핀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격적인 죄의 용서와 구원의 문제가 현대인들에게는 전혀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결점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선다는 의미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그들을 죄인이라고 규정지어 말하는 방식의 선포와 설교는 오늘날 수용되기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책의 안내에 따라 그 간의 복음 전도의 방법과 형식, 내용을 성찰하고, 전달된 복음이 청중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들리는지, 그들에게 신앙이 형성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까지도 살폈다. 이제 된 것일까? 충분한가? 저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깊게 나아간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깊이를 더해 주고, 더 근원적인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바로 그것은 교회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많은 교회가 전도의 다양한 방법을 익혀 많은 교인을 불러 모으고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려 하지만 정작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혹시 오히려 교회가 깊이 있는 복음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광대한 복음을 협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결국 전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이자 거룩한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의 성격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새롭게 변하는 시대에 맞게 선교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까? 저자는 새롭게 등장하는 다섯 개의 모델을 제시한다. 영적 깊이를 추구하는 이들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비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누구나 올 수 있는 개방적 수련회를 개최할 줄 아는 영적 공동체, 지역에 터를 잡고 그 지역의 일부로서 지역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여 헌신으로 섬기는 성육신적 공동체, 비슷한 관심사나 계층, 직업, 문화적 동질성에 기반하여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네트워크 공동체, 사회적이거나 영적인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다짐하는 집중 공동체, 그리고 전도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지 않고 순례를 택한 전도 공동체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들 공동체들을 통해 오늘날의 영적 추구의 다양성을 확보하면서도 하나님의 선교를 더욱 폭넓게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공동체들의 확보와 또한 거기에 속한 공동체 구성원의 양육은 새로운 전도에 있어서 핵심적 과제가 된다. <오늘날 신앙 실태 조사>에 따르면(물론 영국의 경우지만) 약 80%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주된 이유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뽑았다. 좋은 양육 그룹은 관계에 기초하고 있고 긴장을 풀게 하고 편안하면서도 이루어야 할 목표를 제시하며, 이성과 경험을 잘 어우러지게 만들고, 평신도 리더십을 키우며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여지를 많이 남긴다.
양육을 통해 성숙한 기독교인의 공동체가 된다면 그들은 교회에 온 새로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오랜 세월 교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교인이 늘고, 성서를 깊이 이해하여 성서에 근거한 공통의 합의를 도출하고, 비전을 세워 실행하는 리더십을 확보하며, 다양한 교인 구성이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효과를 내고 더욱 풍성한 사역을 해내게 된다. 이것이 지역에서 성장하는 교회의 특성이다. 
전도는 말없이 하나님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당장 시작해야 하는가? 지금 서구 기독교는 부모와 자녀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모두가 신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1세대 신앙인들보다도 이따금 장례식이나 결혼식 때 교회에 가는 것 외에는 교회와 어떠한 접촉도 없는 그래서 신앙에 대해 모르는 4세대 신앙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신앙의 기본적인 지식이 서서히 사라지고 성서의 이야기들에 공감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불교와 유교, 무교 등 다양한 종교적 풍토와 다원적 문화 속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들을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한국 기독교의 침체 현상과 쇠락의 조짐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무지한 이들을 양산할 가능성을 높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서 전도는 더욱 요청된다. 그러나 과거의 방법이나 형식 내용으로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식이 될 수 없다. 교회 내에 있는 많은 유리문들은 도리어 교회에 오고 싶은 이들을 가로 막고 있는 형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 우리는 더 자숙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는 이제 자신의 ‘권리’를 조금 덜 방어하고, 말할 뿐 아니라 조금 더 들어야 하고, 힘 있는 책임을 떠맡기보다는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쓸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어떤 사람이 우리를 모욕해도 우리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런 일을 당하면서 우리는 모욕과 부당한 비난을 당하신 우리 구세주를 더욱 닮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정성 들여 만든 계획들과 프로그램들보다 성령을 더욱 의지해야 할 것이다. 성령을 의지하고 현실을 견뎌내면서 예수님과의 교제 속에서 더욱 예수님을 닮도록, 도제 시스템 속에서 제자가 철저하게 스승을 따랐듯이, 현실에 훨씬 더 밀착한 신앙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련된 전도 방법론이 현대 세계 기독교인의 감소를 해결해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전도란 오히려 말없이 하나님의 신비를 보여 주는 것이며, 그것은 차분히 참된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실천이다. 저자는 기원후 150년 한 그리스도인이 쓴 글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외부인들은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을 보고 우리와 합류한다. … 우리는 위대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들을 삶으로 보여줄 뿐이다.

  한 사람이 나무에게 물었다.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니?” 그러자 그 나무는 꽃을 피웠다

한문덕 목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 중에 있다. 한학 연수 기관인 태동고전연구소를 수료했고,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 기독교 사상 에서 퍼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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