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구게시판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김장구 (경북노회,나아교회,장로) 2015-03-01 (일) 17:01 5년전 5119  
  주를_향한_나의_사랑을.nwc (3.3K), Down : 145, 2015-03-01 17:01:17
근래 회사 출퇴근 시 FM라디오 극동방송을 켜 놓는다. 퇴근시간대인 오후 6시경 행저즐라라는 프로에 출연하는 찬양사역자라는 분(여성이며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인 것 같은데 이름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이 해당 PD와 함께 찬양을 인도하는데 복음성가와 찬송가를 부를 때 너무 심한 syncopation(당김음)과 발음과 발성을 몹시도 꾸며서 부르는 것이 내게는 은혜롭다기보다는 때로 어색한 느낌을 받게 한다. 시대의 변천에 부응하는 것도 좋겠지만 역시 경건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찬송가는 찬송가답게 불러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돌아가신 부친께서 살아계실 때 때때로 자신이 좋아하신 몇몇 찬송가를 부르시곤 하셨는데 새 찬송가-> 개편찬송가-> 합동찬송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가 바뀌면서 찬송가 가사가 달라진 것에 대해 몹시도 못마땅하게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부친께서는 가사의 변경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시었다. 그때 나는 시대와 문법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반대논리를 폈던 기억이 있다. 신기하게도 부친의 논리가 이젠 의미 있게 내게도 다가온다.
 
고교시절 나는 밴드부원으로 테너색소폰 담당(이것이 내가 음악을 가까이 하게 된 동기였다)이었는데 3 학년 때 아마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느 교회 학생회음악 발표회에 초청연주자로 초대되어 갔던 일이 있었다.
찬송가를 두 곡(그 중 한곡이 그 어리신 예수 눌 자리 없네.’였다)을 연주하였었는데 테너 색소폰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려 당김음을 섞어 재즈연주기법으로 약150여명의 학생회원과 교회관계자가 운집한 가운데 연주하여 그야말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의기양양하게 앉아있었는데 모든 발표순서가 끝난 후 그 교회 장로님이 나오셔서 총평을 하시었다.
장로님 왈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마치 악마의 악기인)대중악기로 연주를 할 수가 있었느냐에 대한 힐난과 또한 찬송가를 그렇게 방정맞게 연주한다는 것에 대한 질책을 쏟아놓으셨다.ㅠㅠ
 
요즈음은 찬송가와 복음성가의 jazz style로의 찬양과 연주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으나 내가 그런 연주형태를 무려 반세기전으로 앞당겼으니 이러한 정도의 저항쯤이야 어찌 당연한 것이 아니랴...
 
그런데 지금의 내가 바로 그 장로님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백낙은(경북노회,은퇴목사,목사) 2015-03-03 (화) 10:23 5년전
김장구 장로님.
언젠가 제가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바가 있습니다만.
요즘 예배 행태나 찬양의 행태에 대하여 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보입니다.
분명히 자정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 여깁니다.
장로님 같은 분이 앞장서서 선도해 주셨으면 좋을 듯합니다.
내가 너무 찬물을 끼엊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레고리 찬트 같은 음악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장로님.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소
김장구(경북노회,나아교회,장로) 2015-03-03 (화) 22:01 5년전
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찬성합니다.
저도 예전엔 기독교계차원에서 교회음악위원회(가칭)를 만들어 교회에서 사용할 악기와 음악을 정하여 가려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었습니다. 10세기이전에는 세상음악이 교회음악을 닮아갔던 것과 반대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교회음악이 너무 세상을 닮아간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어떤 복음성가의 가사는 마치 직접화법으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적이 없는 가사)처럼 쓰인 황당무계한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냇물처럼 탁류도 흘러가면 스스로 정화되듯이 교회음악도 세월이 흘러가면 스스로 바르게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여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서양음악사의 시대가 흘러가면서 음악형태가 바뀌어 간 것처럼 말이죠.
예술분야까지 통제하여 억압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자행되던 폐해로 인해 왜곡되었던 문화예술분야가 처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저도 음악대학을 다닐 때 배운 서양음악사에서 처음 접하여 들었던 로마네스크 음악에서 대부분 남성독창자가 약간의 주술적 창법으로 부르던 무반주 단성음악(monophony)인 그레고리안 찬트에 매료되었었고 그래서 여러 차례 캐톨릭 성당을 찾아 갔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그레고리안 찬트가 일반인에게 갑자기 인기가 폭발했는데 당시 음악평론가들이 그레고리안 챤트는 거의 명상 음악 같은 분위기일 정도로 잔잔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이며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신비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 음악이야말로 기독교음악의 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 저도 열정적으로 그 뿌리를 찾으려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제 개인적으로도 교회음악이 그렇게 변모해 갔으면 합니다.^^

너무 많이 세상에게 내어준 교회음악의 자리를 도로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런 때가 와야 할 것도 같습니다.
마치 희년의 정신처럼 말이죠.

그러면 목사님과 제게는 큰 기쁨이 되겠죠.^^
주소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 츲ҺڻȰ 忩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п ⵶̰߿ 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