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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최초의 기록문건

추일엽 (경기노회,수원주님의교회,목사) 2021-03-06 (토) 11:16 1개월전 329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의_조직.hwp (44.0K), Down : 5, 2021-03-06 11:19:58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의 조직

대한국예수교장로회 노회회록 서문

신령하고 크도다 이 아름다운 노회여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사도와 문도를 택정하여 세우사 천국의 복음을 천하에 전하여 만민의 영혼을 구원케 하셨으니 주 예수에게 직분을 받은 사도와 문도들이 주께서 승천하실 때에 특별히 명령하심을 삼가 지켜 예루살렘 다락에 일제히 모여 마음을 같이 하고 기도를 힘써 하나님의 허락하신 성신의 권능을 충만히 받은 후에 능히 각국 방언을 말하고 모든 이적을 베풀며 천하 각국에 헤어져 복음을 전할새 회개하고 주를 믿는 자에게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문도를 삼으며 믿는 형제 중에 사람을 택하여 장로와 목사를 세워 교회를 치리케 하였으니 안디옥에서 총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과 바나바와 믿는 두어 형제가 예루살렘 본 교회에 여러 목사와 장로들과 한가지로 모여 교회에 마땅히 지킬 규모를 의논하여 작정하였으니 이것이 실로 노회의 시작이라.

만유의 주재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과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넓으신 은혜와 보혜사 성신의 크신 권능을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 우리 대한 인민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신과 우상을 섬기매 장차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더니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인민을 돌아보사 미국 남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와 영국 오스트렐냐 장로교회와 카나다 장로교회의 주를 믿는 모든 형제 자매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 네 곳 교회 총회로 선교사를 택정하여 이것에 보내시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선교사들이 갑신년에 이곳으로 나와 도를 전한지 23년 동안에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온 자가 근지 10여만명이라.

곳곳이 장로를 장립하며 교회를 설립하여 영미 양국 선교사들과 한국 각처 장로들이 모여 교회 일을 의논하나 그러나 아직 한국목사를 장립하지 못하므로 노회를 이루지 못하고 그 회 이름을 장로공의회라 칭하고 정간에 15차를 모이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풍부히 주심으로 수년 전에 미국 남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와 영국 오스트렐냐 장로교회와 카나다 장로교회 이 네 곳 총회에서 특별히 대한국 장로회 노회를 세우기로 허락하고도 장로공의회 회장 마포삼열 목사께서 네 곳 총회의 권을 얻어 한국교회에 노회 되는 취지를 설명하시되 이 노회는 머리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십자가를 든든히 의지하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세상 사람 앞에 영화로운 빛이 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성결한 노회를 이루어야 하겠다 하시고 주 강생 일천 구백 칠년 구월 십칠일 오정에 한국노회를 설립한 후에 대한에 신학교 졸업생(학생) 일고 사람을 목사로 장립하고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라 하셨으니 이는 실로 대한국 독립노회로다. 할렐루야 찬송으로 성부성자성신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세. 아멘.

노회회록

주 강생 1907년 9월 17일 상오 9시에 평양 장대재 예배당에서 작년 공의회 회장 배유진 목사가 사도행전 1장 8절에 우리 주 예수께서 마지l막 분부하신 대로 증인이라고 강도한 후에 게일 목사는 떡을 가지고 축사하여 장로들로 나누며 배유진 목사는 포도즙을 가지고 축사하여 장로들노 돌려서 성찬예식을 거행하니라.

금년 공의회 회장 마삼열 목사가 노회 취지를 설명하는데 그 개의는 미국 남북장로교회와 영국 카나다와 오스트렐냐 장로교회 네 곳 총회에서 있는 권리대로 여러 선교사를 대표하여 대한 예수교장로회 노회를 창설하노라 하고 기도함으로써 개회하다.

공의회 서기가 각 총대의 천서를 검사하고 호명하는데 참석원 목사는 마삼열 라진함 베위량 방위량 편하설 윤산온 소안론 위대모 방혜법 로세영 피득 한위렴 군례빈 황혈리 곽안련 리눌서 게일 사우업 밀의두 권일ㄷ두 하운림 최의덕 배유진 오월번 마노덕 전위렴 거령우 안이와 심익순 명이와 업아력 로아력 민로아 33인이오.

장로는 장연송천 서경조 용강졔재 방기창 증산한천 송린서 평양장대재 길선주 장천 한석진 태평동 김응주 신흥동 방승건 남문밧 박정찬 용덕천 천무 김건두 봉산모동 최덕렵 문화종산 우종서 털산읍 장관선 이안이 뎡기뎡 선천읍 리성삼 정주읍 최성두 곽산읍 최관흘 함흥 김창보 부산 심취명 배천 천광실 원산 류태련 순한읍 강유훈 영유통 오리 김봉한 안주읍 김찬성 안악교동 조병직 자산풍전 윤전각 고양 신화순 황성 새문안 송순명 연동 고찬익 목포 임성옥 밀양 김응진 창령토산 방원명 재령신완포 한지순 대구 박덕일 임피 만자산 최흥서 태인매계 최증진 황주론주골 덩명리 36인이라.

(개정한즉 서국회원 38인이오 황국회원은 40인이라.)

공의회 회장 마포삼열씨가 노회 회장 선거함을 청하매 편하설씨가 하오 2시에 다시 개회할 터이니 존안하고 폐회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공의회 회장 미심열씨가 한석진 씨의 기도함으로써 폐회하다. 공의회 서기 리눌서

- 한국교회가 자립하다 ​

미북장, 미남장, 호주장로교, 캐나다장로교로 구성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의 결정에 의해 1907년 9월 17일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노회인 독노회가 조직되었다. 회의를 주재할 임원 인선이 이루어진 뒤에 게일에 의해 첫 번째로 의결된 것은 대한 장로교회의 출범을 미국에 있는 언더우드에게 전보를 쳐서 그 소식을 전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노회가 시작되고 절차위원장이었던 편하설은 십자가로 태극을 품은 휘장을 회장 마펫에게 전달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노회록은 그 휘장의 뜻이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를 견고한 십자가로 설립한다는 의미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독노회로의 출범을 알린 것이지만 그것은 한국장로교회가 드디어 자립을 시작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첫 노회에 소속된 회원은 선교사 33명과 찬성회원 9명, 장로 36명 등 총 78명이 출석했으며 회장에 마펫(S. A. Moffet), 부회장에 방기창, 서기에 한석진, 회계에 리(G. Lee)가 선출되었다. 처리된 주요 내용은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 7명(길선주, 방기창, 서경조, 송인서, 양전백, 이기풍, 한석진)에 대한 고시 및 목사안수, 이기풍 목사를 노회 조직 기념으로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할 일, 고퇴 채용, 장로회 12신조와 장로회 정치 채택 등이었다. 당시 교세는 선교사와 목사 47명, 장로 53명, 조사 131명, 예배처소 984개처, 세례교인 17,890명, 원입인 21,482명이었으며 교인 총계는 69,098명이었다.

​독로회 조직과 함께 한국 장로교는 헌법을 웨스트민스터 정치규범에 입각하여 대충 제정하고 1917년까지 계속 보완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신경은 자유인도교회의 것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곽안련(Charles Allen Clark)에 따르면, 감리교회와의 연합과 일치를 고려한 때문이었다.

​제2회 노회장은 게일(J. S. Gale), 3대노회장은 언더우드(H. G. Underwood), 4회 노회장은 게일, 5대 노회장은 레이놀즈(W. D. Reynolds)가 역임했다. 독노회가 조직되기 전까지는 연합공회가 선교에 관한 사항을 서로 협조하고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로 존재했지만 독노회가 조직됨으로써 이제 한국교회의 문제를 선교사들만이 아닌 한국교회 성도들이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07년 9월 17일 독노회 창립에 이어 교세가 전국적으로 확장되었다. 1911년 9월 17일, 대구 남문교회에서 회집된 제 5회 독노회에서는 1912년 3월 이전까지 7개 대리회를 노회로 승격하여 7개 노회가 총회를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1911년 독노회에서는 장감의 선교지 분할 문제의 주도권과 책임을 선교회에서 독노회(총회)로 이첩하는 한편, 주일학교의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제 5회 독노회의 결정에 따라 전라대리회가 1911년 10월 15일에 전주 서문밖교회에서 목사 12명, 장로 21명이 모여 노회를 조직했고, 경충대리회가 12월 4일에 목사 12명, 장로 21명이 새문안교회에서 모여 노회를 조직했으며, 이어 12월 8일에 황해대리회가 봉산모동교회에서 목사 10명, 장로 34명이 모인 가운데 노회를 결성했다. 1912년 1월 28일에는 경상노회가 평양신학교에서 목사 28명, 장로 96명이 모인 가운데 결성되었고, 남평안노회가 1912년 1월 28일 “평양샹슈구밧신학교에 모혀 조직”되었고, 북 평안노회가 1912년 2월 15일 신천북교회에서 목사 26명, 장로 15명이 모여 결성되었으며, 그리고 함경노회가 1912년 2월 20일 원산 상리교회에서 목사 14명, 장로 16명이 모인 가운데 조직되었다. ​

1912년 9월 1일, 7개 노회에서 파송한 목사 총대 96명(목사 52명, 선교사 44명), 장로 125명, 도합 221명의 총대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경창리에 있는 여자성경학원에서 역사적인“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결성되었다. 여기에서는 총회장에 언더우드(H. G. Underwood), 부총회장에 길선주, 서기에 한석진과 김필수, 회계에 블레어(W. N. Blair)와 김석창 등이 선출되었다. 당시 노회는 경기충청노회, 경상노회, 함경노회, 전라노회, 황해노회, 북평안노회, 남평안노회 등이 조직되어 있었고 교세는 교회 2,054처, 목사 128인, 조사 136인, 장로 225인, 신학생 18인, 교인 127,228인이었다. 이 창립총회에서는 교회 명칭 앞에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붙이는 일, 총회산하 전 재산을 관장할 사단 조직, 고퇴 제작, 혼인연령(남자 만 17세, 여자 만 15세) 등을 주요 내용으로 결의했다. 총회조직 기념 산동 선교사 파송은 이듬해 제2회 총회에서 결정되어 1913년에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등이 파송되었다. 초기의 총회장직에는 초대 언더우드에 이어 대대로 엥겔(G. Engel), 벨(E. Bell), 김필수, 양전백, 한석진, 김선두, 마펫(S. A. Moffett), 김익두, 이기풍, 김성택, 함태영, 이자익, 임택권, 김석창, 김영훈 등이 역임했다. 초대, 2대, 3대, 8대 총회장을 제외하고 총회장직에는 모두 한국인 목사들이 봉직했다.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조직된 것은 단순히 장로교의 기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구형과 아울러 독자적인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했다. 특히 독노회가 조직되었던 1907년은 이미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1912년은 일제에 의한 가혹한 무단통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만은 “대한”, “조선”이라는 명칭을 독노회와 총회의 이름 앞에 분명히 명시하고 있었다. 교회가 일본에 예속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던 교회가 하나의 총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조직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조직적 교회의 구성은 3.1운동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했다.

​총회의 조직으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복음주의 신앙이 조직적이고 법적으로 체계화되었다. 특히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한국교회의 정치적, 행정적, 윤리적 기준이 마련되었고, 교회의 질서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각 노회가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치리권을 확보함으로써 교회의 문제에 대한 강력한 치리를 행할 수 있도록 했다. 복음주의 윤리관이 보편적인 윤리관으로 자리를 잡았고 한국교회의 전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교회의 교권과 정치구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조직은 이제 선교사들이 이끌어 오던 한국교회가 선교의 시대를 마감하고 한국교회의 시대를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을 의미했다.

예수교 장로회 조선국 노회 제4회 회록

주후 1910년 9월 18일 하오 2시에 예수교 장로회 조선노회 제 4회가 평안북도 선천 염수동 예배당에서 증경회장 기일씨가 이기풍씨의 기도함으로 개회하다.

회장이 고후11:16-33절에 고난에 복종하여야 하겠다는 제목으로 강도한 후에 부회장 이기풍씨의 인도로 김찬성씨는 떡을 가지고 축사하여 나눈 후에 마노덕씨는 포도즙을 가지고 축사하여 돌려서 성찬예를 거행한 후에 회장이 양전백씨의 기도로 폐회하였다가 동일 하오 7시 삼십분에 계속하여 개회하였는데 길선주씨의 인도로 해삼위 선교사 최관흘씨가 해삼위와 수청과 소왕령과 허바루개와 합이빈 등지에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나타남으로 회개하고 예수의 복음을 믿는 형제도 많고 교회가 성립될 뿐 아니라 일반교인의 믿음이 홍기됨을 일장설명한 후에 전도국장 길선주씨와 평북대리회 위원 양전백씨가 금년에 전도국에 연보수입액이 부족함으로 해삼등지에 선교사 다시 파송할 경비가 말유하다고 보고하매 일반회석이 연보하기를 자원하여 신화오백여환을 즉시 연보한 후에 기쁜 찬송과 감사기도로 폐회하다.

서기 한석진

주후1910년 9월 19일 상호 8시 45분에 노회가 평안북도 선천 염수동 예배당에서 회장 기일씨가 딤전 6:11-16을 보고 여러 회원의 기도함으로 개회하다.

서기가 각 총대의 천서를 검사하고 호명하는데

경기에 목사는 기일, 피득, 민노아, 서경조, 한석진, 계군,장로는 이여한, 이명혁, 박태선, 신화순, 차상진, 박정찬,

전라북도에목사는 부위렴,업아력,마노덕, 김필수, 장로는 김규배, 오인묵, 신경운, 최치국.

전라남도에 목사는 배유지, 변요한, 고라북, 노라북, 맹헌리, 윤식명, 이기풍,장로는 임성옥,

경상도에 목사는 어도만, 맹의와, 위철치, 권목재, 왕길지, 도서원,장로는 박덕일, 김기원, 김응진, 이윤팔, 이현필, 황경선,

함경도의목사는 마구례, 구례선, 최관흘, 장로는 김창보, 장두익, 차준승,

평안북도목사는 남행리, 방혜법, 노세영, 양전백, 정기정, 장관선, 나부열, 윤산온,장로는 문진원, 김건두, 김국두, 윤희복, 김창건, 김관근, 장윤식, 사락수, 홍승한, 안준, 강제현, 박규현, 안승원, 김택근,

평안남도목사는 소안론, 방위량, 길선주, 방기창, 송린서, 김찬성,장로는 김성택, 김선두, 이일영, 한승곤, 윤태흠, 강정수, 김정하, 류경찬, 김병섭, 차도남, 김철일, 노기두, 이치수, 윤전각, 문선명, 박진준, 고사영, 한병직, 김백원, 김태윤, 김석관, 김대혁, 이윤모, 김찬규, 홍익명, 이재풍, 김성숙, 이응진, 방승건, 김응주, 정건용,

황해도목사는 한위렴, 사우열, 공위량, 이원민, 군례빈, 장로는 서상봉, 황덕영, 최종신, 윤문옥, 우종서, 안재서, 이승철, 김기황, 최기현, 김성률, 김병욱, 최정엽, 양성측, 조병직, 한치순,

청국 선교사 사진신 제씨인데 새로 장립한 목사는 김관근, 김창건, 안승원, 김국두, 김진근, 최성두, 이치수, 김천일, 김영준, 정명리, 박정찬, 김영제, 박예현, 주공삼, 우종서, 김익두제씨가 또한 참석함으로 고정하니 목사는 55인 장로는 74인이니 합 참석한 회원이 129인이더라.

회장이 서기가 전회록 낭독할 것은 이미 회록을 출간하여 반포하였은즉 다시 낭독할 필요가 없다고 하매 노세영씨가 회록을 그대로 인정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절차위원이 보고하매 왕길지씨가 채용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회장이 새 임원택하기를 공포하고 회중이 투표하여 구례선씨를 선거하매 구례선씨가 몸이 약하여 직무에 감당치 못함을 재삼 사양하심으로 다시 투표하여 기일씨로 회장을 선거하다. 회장 기일씨가 승좌하신 후에 배유지씨가 청국에 선교사 사진신씨가 참석하였사오니 언권위원으로 요청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길선주씨가 장로로 방청참석하신 제씨도 언권위원으로 요청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회중이 투표하여 부회장은 길선주씨로 선정하다. 회중이 투표하여 원서기는 한석진, 부서기는 길필수 양씨로 선거하다. 회중이 투표하여 원회계는 사락수, 부회계는 김성택 양씨로 선거하다. 회장이 공천위원은 배유지, 소안론, 노세용, 이기풍, 김관근, 방기창, 조병직, 이명혁, 김필수, 민노아, 차준승, 박덕일 12인으로 공포하다.

노기두씨가 전회장 원두우씨가 병으로 불참하였사오니 위문하는 전보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이치수씨가 사락수 장로는 노회원이 아니오나 별위원으로 회계 택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배유지씨가 각 대리회에서 회계를 택하여 노회재정을 수입하여 진씨로 노회회계에게 재정보내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배유지씨가 폐회하기를 동의하여 가로 결정하다. 회장이 송린서씨의 기도로 폐회하다.

서기 한석진

—————-解題1.제4회 독노회가 개회하였다. 장소는 선천 염수동예배당이다.제1회-평양 장대재예배당제2회-황성 연동예배당제3회-평양신학교제4회-선천 염수동예배당

2.증경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두우목사가 병환으로 불참 증경회장 기일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 노회장선거에서 구례선씨가 피선되었으나 고사하고 있다. 재선거로 기일씨가 피선 승좌하였다.

3.노회 이름을 조선노회라고 명칭하고 있다. 서기가 계속하여 한석진이므로 오기는 아닐 것이다.제1회-독노회(대한국 노회)제2회-대한노회제3회-대한노회제4회-조선노회

4.선교도 확장되고 있다.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파송된 최관흘은 수청(발치산스크), 소왕령(우수리스크), 허바루게(하바로스크), 합이비(하얼빈)에 까지 선교를 전개했다. 첨부파일


김문규(충남노회,당정교회,장로) 2021-03-08 (월) 08:37 1개월전
추목사님 께서  귀한자료 올려주심 감사하며
선교사님들과 우리믿음의 선진들 훌륭한 사역내용  많은 것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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