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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위클리뉴스>백두산 호랑이와 같이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한신인을 꿈꾸며2-3

한신대학교 (기타,,기타) 2020-05-05 (화) 21:46 4개월전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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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분과 의원 당시의 장준하 선생>

 

한신위클리뉴스그런 장준하 선생께서 의문사로 돌아가셨습니다. 언론에서도 재조명되고 누차 언급되어 유심히 봤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왜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사인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장호권 선생그 돌아가시게 된 사인..., 많은 분들이 다들 잘 알고 계시는 데요. 특히 지금 언론에서는 쉬쉬 하고 있죠. 알면서도 얘기 안하는 분들도 많고, 이거를 얘기할 때 의문사 진상규명이라는게 생겼어요. 김대중 대통령 때, 그 때 제가 싱가포르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할 때인데, MBC인가 어디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생방송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거를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낫겠다. 왜냐 분명히 이거는 밝혀내지 못할 텐데 다 내려놓고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면 희생당한 그 당시의 박정희에게 희생당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조금 전에 이야기 한 것 처럼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물론 나름대로의 자기의 주관도 있고 자기 정치철학도 있었습니다만, 기어코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사실. 대통령이 되려다 보니까. 자기 국가관이라던가 민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대통령이 되려는 고민을 하다 보니까. 대통령이 되려면 여건이라는 것이 물론 자원도 있고, 조직도 있고, 다 있습니다만, 일종의 적과 동침을 해야 된다.

그 적이라는게 뭔가 하면, 그 동안에 미국, 일본을 통해서 막강하게 이 나라에서 모든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죠. 그들과 거래를 하다 보니까 대통령은 정치 권력을 잡았지만 그들을 단죄하기에는 족쇄가 걸려있더라 이거죠. 왜냐 서로가 거래도 있었을 테니까. 미국 눈치도 보고..., 그래서 제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문익환은 장준하가 실족사하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을 세세히 살핀 결과 이를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타살이라 확신하였다. 높은 언덕에서 굴러 떨어졌다는데, 매고 있던 유리 소재의 물병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으며, 귀 뒤의 급소에 못으로 구멍이 뚫린 듯 타박상이 있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생기는 상처도 없었다. 게다가 양 팔꿈치에 생긴 꽉 조여진 자국은 무엇인가 말이다. 손목시계의 똑딱거리는 생동감 있는 맥박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문익환 목사는 이때 민족의 위기를 강하게 느낀다.

 

한신위클리뉴스의문사에 대해서 이거는 살해다!” 라고 분명히 하시는 거죠?

 

장호권 선생그렇죠, 그 다음에 그것은 아까 그렇게 살해될 수 있는 동기는 그런게 있었고 박정희로서는 살려놓으면 문제가 생기지만 박정희가 죽이라 그러진 않았겠죠. 추측입니다만 밑에서 알아서 다 한 거고.. 그 다음에 재미난 사건은 훗날 밝혀지겠습니다만. 그 당시 보안사령관이 장선생님 돌아오시고 나서 박정희와 처음으로 독대를 하죠. 둘이 만나서 보고 가죠.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때 청와대에서는 차지철이란 자가 전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땐데...,

실세, 지가 대통령인 것처럼 하고 다닐 땐데 그게 경호실이라는 게 있었지 않습니까? 경호실이 정말 막강했는데, 그 경호실에 누가 있었냐면은 심부름꾼이 있었어요. 해결사들이, 누가 거기 있었냐면 전두환이 있었어요. 이학봉, 전두환 이런 자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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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위클리뉴스와 인터뷰 중인 장호권 선생>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영정 사진을 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3.1절을 맞아 박정희와 유신 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쓴다. 그것이 바로 ‘3.1 민주구국선언문이었다. 문 목사께서 먼저간 친구 장준하 선생께 바친 시를 들어보기로 하자.


 

이 못난 것아

다시 장 형의 영전에 바치노라

 

자네 어쩌자고 대낮에 눈감고 주먹질인가?

그 흔한 장미꽃 웃음이라도 뿌릴 일이지

 

자넨 어쩌자고 바람 보고 칼 빼 드는가?

고맙게도 절로 자라 주는 머리라도 날릴 일이지

 

자넨 어쩌자고 넝쿨째 굴러드는 복을 발길질인가?

아내더러 호박국이라도 끓여 달랠 일이지

 

누구나 가는 길

삼삼오오 짝지어 산천경개나 구경하며

슬슬 가도 될 일을

 

이 못난 것아

자네 어쩌자고 그리 서둘러 혼자 가는가?

 

1976. 1. 21

 

문익환 목사의 삶에는 크게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는데, 처음은 절친 윤동주 시인의 죽음이었고, 두 번째는 성장하여 만난 친구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었다. 특히 장 선생의 죽음은 순박하기만 했던 구약 신학자인 문익환을 험악한 역사의 한복판으로 불러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신위클리뉴스세월호 이후에요. 촛불혁명과 탄핵정국을 거쳐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요. 그에 대한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또 장준하 선생님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많은 한신대학교 후배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장호권 선생그래요. 저는 또 우리 한신의 명예 동문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우리가 이 촛불혁명도 그렇고, 소위 80년대 운동권의 주축을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지금 와서 이렇게 들여다보면 아... 뭘 크게 잊어버린 것 같아요. 뭘 잊어버렸냐면 그 당시 초심을 잊어버렸다!” 물론 반독재를 부정하고, 남북을 통일을 위해서 남북 간의 교류도 참 중요하죠. 그렇지만 우리가 단계라는게 있는데... 단계를 건너뛰면 가랑이가 찢어져요.

초심을 잃다보니까 또... 과거의 70년대의 우리 싸웠던 사람들하고 다른 게 정보를 빨리 알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되어있다 보니까. 국가 권력이라는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보는 부정적인 측면의 것을 너무 많이 긍정으로 둔갑시켜서 자기네들이 소유를 하고 있더라는 거죠.

우리 다 같은 이었는데, 갑자기 정치권력 쪽으로 이동하면서 에서 질을 한다는 건 우리한테 안 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자면 저도 그런 것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우리가 볼 때 일상생활에 있는 게 적폐(積弊)’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우리는 지양 해야 된다. 그렇게 하던 사람이 권력에게 갔어. 특혜를 받아. 그럼 그것을 최소한 미안하단 생각하고 , 이게 아닌데?’ 그런 죄의식이 없어져 버려.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 잊어버려요. 그런 과거를 잊어버려? 우리 역사에 과거를 잊어버린 역사는 미래가 없잖아요.

유대인들이 그랬죠. 영토를 잃은 민족에게는 재기의 가능성이 있어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땅이 없어도 버텨서 재기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맨날 떠돌아 댕겼잖아요. 근데 결국은 그들이 민족이라는 것을 민족의 역사라는 걸 계속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나라 다시 만들잖아요. 그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힘들어도 우리의 역사 어린 민족, 이거는 잊지 말자. 꼭 내가 누구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한신위클리뉴스마지막으로 못하신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장호권 선생 요즘은 좋은 선생님도 있지만 이상한 선생님도 많이 있으니까. 그 지식만 갖고 지식을 살 생각하지 말아야죠. 요즘은 지식을 사잖아요. 지식을 사게 된다면 산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돈 주고 샀으니까 그만큼 투자를 해 가지고 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단 말이에요.

지식이라는 건 사는 게 아니고, 자기의 지혜로움을 더 승화시키기 위해 하나의 밑거름으로 만들어 가지고 쓰려고 하는 거지. 지식을 돈 주고 살 생각을 하면 썩어버린다. 진짜 지성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성인이라는 것은 지식 가지고 유희하지 말고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는거. 하나 더 붙이자면 인성을 키워라.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건가면 좋고 싫은 거, 옳은가 그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인성이 나온다는 거죠. 한국의 지성인으로서 떳떳하게 큰일을 할 수 있는거죠. 이 정도로...,

 

한신위클리뉴스지금까지 여러 좋은 말씀들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한신대학교를 사랑하시는 분들과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신 장호권 선생과 장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장준하 선생이 꿈꾸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우리가 이어받아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의문사에 대한 적법한 조사가 이루어져, 명확한 매듭이 지어져야 할 것이다. 오는 58() 중앙지방법원 동관 566호에서는 <장준하 긴급조치 피해자 확정 1>에 관한 심의가 열린다.

세상 속에서 역동적으로 숨 쉰 한신의 역사 그리고 나아갈 우리의 길 한신위클리뉴스가 계속해서 여러분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셔 감사드립니다.

 

*장호권 선생은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이수하셨으며, 전 월간 <사상계> 대표, 고구려문화연구회 이사장,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국제자문위원을 역임하셨으며, 현재는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 광복회 서울지부장 등을 맡아 일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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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한신을 넘어 세계한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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