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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교회 이야기 2

정현 (충북노회,정중교회,목사) 2019-05-14 (화) 12:43 3개월전 311  
정중교회 이야기 2.

그렇게 병원에서 한 달하고 이틀을 있다가 퇴원해보니 당장 사택을 비워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이사할 집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집을 예비해 주셨는데, 오송 읍사무소 근처에 당시 25년 이상 된 빌라에 월세로 들어갈 수게 하셨습니다.
봄에 이사를 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여름이 되니 비가 오면 빗물이 천장을 타고 방 중간까지 흘러들어와 주룩주룩 떨어지는 것입니다.
겨울에는 단열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보일러(기름)를 틀어도 바닥만 따뜻해질 뿐 별 소용이 없었고, 심지어 결로가 심해서 벽에서 물이 흐르고 곰팡이가 심하게 피었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 현관문을 열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다 보니 한겨울에도 기름값의 부담과 결로현상 때문에 추워도 보일러를 따뜻하게 틀 수 없어서 실내온도가 영상 13도에서 8도 사이에 머물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행복했던 것은 그렇게라도 살 수 있는 곳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택문제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문제는 교회였습니다.
정중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부지는 250평에 건평은 약 40평에서 50평 정도 되었는데 이마저도 무허가 건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오송제2생명과학단지개발로인해 지구지정이 확정되기 전이었지만 앞으로 지구지정이 되면 보상문제와 종교부지 문제를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땅도 교회 앞으로 등기가 되어있지 않고, 건물도 무허가 건물인 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교회에 대한 보상도 문제이지만 종교부지 협상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땅의 소유주인 설립자의 큰 손자를 찾아가서 우여곡절 끝에 공유지분으로 등기를 내서 충북노회유지재단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공유지분으로 등기를 낸 것이 종교부지 구입을 하는 과정에서 토지 값이 거의 두 배정도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분할등기를 냈어야했는데, 땅의 소유주의 반대로 공유지분으로 했더니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무허가 문제는 현행법상 1989년 2월 29일 이전 건물은 무허가라고 해도 허가 건물과 같이 인정을 해주었기 때문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보상에 대한 협상을 해본적도 없고, 종교부지 협상을 해본적도 없는 저로서는 그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송제1생명과학단지가 조성될 때 먼저 일을 겪었던 이웃교회 목사의 조언을 받았고, 당시 한기총에서 서경석목사가 주축이 되어 재개발로 고통당하는 교회들을 위해 재개발대책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전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많은 정보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는 제가 한기총재개발대책위원회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왜? 거기가서 일을하느냐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인맥으로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도시나 재개발로 교회들이 얼마나 피해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지를 직접보고 경험한 저는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세 번이나 철거를 당하기도 하고, 1천 5백명 성도가 되던 교회는 하루아침에 개척교회 형편으로 전락해 버린 곳도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총회 관계자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총회 내에 신도시개발과 재개발로인해 피해를 당하는 교회들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상설기구로 두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는 오송제2생명과학단지로 수용되는 지역의 교회들(5교회, 나중에 한 교회는 중도 포기했음.)의 목회자들을 만나서 오송제2생명과학단지 종교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총무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3번째 이야기는 다음에.....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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