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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가 빚 진 게,

신흥식 (충남노회,평지,목사) 2020-10-18 (일) 14:40 3년전 1479  

 

                   독립운동의 주역 :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민족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말은 기미년 독립 만세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독립만세운동은 고종 황제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시작 되는 데, 처음 부터 천도교 즉과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상동교회 尙洞敎會 전덕기 목사님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은 비밀리에 일을 준비하였고 , 그 당시 나라의 어른은

이상재 李商在 선생이 일을  주관하고, 북쪽의 일은 조만식 曺晩植 장로님이 맡아보는 중이었는데,

 

 교계의 여론을 취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려고 비밀리에 준비하던 중에 , 천도교 측의 손병희 孫秉熙 선생 도

 같은 일을 준비하고 있는 걸 서로가 알게 되니, 자연히 합세 하게 된다.

 

기독교와 천도교 가 합세하여 민족의 독립운동을 하려고 하다 보니 이왕이면 다른 종교인들도 참여하게 하려는

 뜻으로 불교계에도 연락을 했는데, 만해 한용운 韓龍雲 선사가 한 분을 더 데려 와서 두 사람의 불교 대표가 왔다.

 

유림의 대표들은 여기에 참여를 하지 못하고 나중에 따로 만국평화 회의에 보내는 호소문 , 이른 바 파리 로

가는 장서 長書 운동에 연명으로 작성하여 보내는 일을 하게 된다.

 

그 당시에 나라와 민족의 고난을 아시는 지도자들은 속이 넓어서 다른 종파에 대하여 폐쇄적인 게 없고,

 통이 크신 분들이라 이런 연합을 하게 된다.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모습,

 

더우기 손병희 孫秉熙 선생은 독립운동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따질 거 없이  천도교 측에서 가지고 있던 돈에서

 우선 지출하고 더 이상 분담하자는 말'씀을 하지 아니하셔서 지금 까지도 교회는 빚진게 그대로 남아 있다.

 

  

                숨겨진 이름 이상재 李商在 :   한국의 모세 

 

민족 대표 33 인의 이름에 이상재 선생은 빠진다.

 

손병희 선생께서   "  여기에 서명하는 사람은 다 구속 되는 것이니, 우리가 다 구속 될 것이 아니라

 뒷일을 위하여 한 분을 남겨 두어야 한다  " 는  말씀에  따라서 이 상재 어른을 대표자 명단에 올리지

 아닌한다.    잘 한 일이다.

 

 그 뒤로도 이상재 선생은 전면에 나서지 아니하고 , 한 민족의 후견인으로 살아 계신다.

 

나라를 잃어 버린 지 오십년 동안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 가면서 한국인의 정신적 지줏대로,

 한국인의 그늘이 되어 주셨다.  외국으로 망명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떤 이들 처럼 산으로 간 것도 아니고,

 

일본인들이 설쳐 대는 국내에 머물면서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끝까지 대선생의 길을 가신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온 몸으로 견디며  말없이 가던 거 처럼,

 

 목은 牧隱 선생의 유산을 물려 받은 한산 韓山 이 씨 자손으로 ,  조선 유학의 전통을 짊어지고 나신 분이,

 개방적인 자세로 예수님을 만나서 기독교회를 모퉁이 돌로 삼아서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던 그 세대

 

어른들의  삶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분들의 수고 와 눈물로 이렇게 살고 있다.

 

 고종의 승지 承旨 로도 일하던 분이,  만민공동회를 만들어서  " 광화문 집회  "  의 원조가 되기도 하시고

 서재필 徐載弼 과 함께 독닙협회 獨立協會 를 조직하여 나라 살길을 찾으려고 온 몸으로 일하셨다 .

 

 영은문 迎恩門을 헐고 독닙문 獨立門 도 세우고, 한글로 된  독닙신문 도 만들고,

 

1919년에 있엇던  만세운동이 지나고 나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실망하여 친일파로 되기도

 하고, 단합할 줄 모르고 서로 싸우는 것이 싫어서 아나키스트로 가신 분들도 있고, 공산당으로 가신 분들도

 

있는데, 월남 이 선생님은 조선의 자라나는 후세들을 위하여,  한국인의 모습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청년들을 위로하는 일을 끝까지 잘 하셨다.

 

이 상재 선생의 장례는 우리 나라 최초로 사회장 社會葬 이라는 형식으로 지내는데 전국에서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온나라가 다 슬퍼하였고, 산천초목도 다 울었다고 그 당시 신문이 전한다..

 

 

                    한국교회가 빚진 거

 

첫째는 천주교회에 빚을 졌다.

개신교회 보다 백년 전에 들어 와서 무수한 피를 흘렸다.

그 덕분으로 개신 교회는 어렵지 않게 시작될 수가 있었다.

그런 일로 빚졌다는 감이 든다.

 

어떤사람들은  천주교회를 이단인 거 처럼 말하는 이가 있는 데 그럴 필요가 없다.

천주교회는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시고 시작된 초대 교회로 부터 시작하여 로마가 복음화 되면서

지금까지 계속 되어온 기독교회다.

 

개신 교회는 거기서 일부 잘못된 점이 있어서 개혁하고 나왔으니, 개신교회의 큰 집이 아닌가

나왔다고 해서 본 집을  나쁘게 말할 필요가 없다.  형님네를 욕하면 뭐하는 짓이냐.

 

두번 째는 천도교에 빚을 졌다.

도원기서 道源記書 에는 최제우 가 방황하고 다니다가 고향에 돌아 와서 고민하고 있던 중,  한 禪師선사

가 찾아와서 낯선 책을 한 권 주시는 걸로 부터 하나님을 만나는 길에 들어가게 된다.

 

최제우 崔濟愚 선생이 한울님께로 부터 받은 말씀으로 시작된 동학이 그 뒤로 여러 이름으로 전해지고

천도교 天道敎 로  부르는데, 독립운동도 같이 하였을 뿐 아니라 , 그 뒤로 천도교인들은 거의 다 기독교로

오게 된다.

 

 보천교 普天敎 라는 이름도 있고 시천교 侍天敎 라는  이름도 있고 지금 증산도 甑山道 도 있고, 여러가지로

 나누어졌지마는  완고한  조선을 무너 뜨리는 일에 큰 일을 하였다.

 

 그 후에 천도교인들이 거의 다 교회로 왔다.   그런 점에서 빚을 졌다.

이미 손병희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다. 천도교인들은 앞으로 기독교로 가게 될 거라고 ,

 

실제로 김구 金九 선생은 천도교 집강소에 접장을 하던 분이었는데, 기독교인 되었고, 임시정부에서도

교인들을 모아서 계속하여 예배를 드렸다. 

 

동학의 후세들은 지금이라도 깨달아 지는대로  교회로  와야 한다,

 여기서는 그 말을 할 자리가 아니어서 생략한다.  그것이 최제우가 만난 하나님을 찾는 길이다.

 

 

                유교와 불교  :   조선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가르침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한국인들에게는 유학과 불경이

들어와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거름이 되었다.

 

유학 儒學 과 불경 佛經은 고구려 소수림 왕때에 우리 나라에 들어온 뒤로 수천년 동안 한국인의 심성에

자양분이 되어 왔다.

 

 자비한 마음을 가르치는 불경은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거고,

 도덕적인 율례로 가르치는 유학은 성서의 율법과 다르지 않다.

 

알고 보면 불경도 유학도 솔로몬 왕과 관련이 있다.   그 시초가 하나님 말씀에 있다.

사랑과 율법 이라는 성서의 한 부분씩을 가지고  한국오르  와서 융화 되어 교회로 발전하였다.

 

이미 솔로몬 왕 당시에 동서 사방에서 다윗과 솔로몬 왕의 소문을 들었던 각 나라 임금들이 선물과

값나가는 토산품을 가지고 면담하려고 찾아 왔던 기록이 있다. 사신들이 다녀 간 나라도 있고,

 

중국은 그 때가 주 周 나라 무왕 武王 때인데,  산을 넘어 다니며 서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대천덕 戴天德 신부님의 말씀에 의하면 솔로몬을  만나고 돌아 가던 사신들이 중국에서는 잠언 箴言 을

 

가져가서 배운게 유학의 시작이 되었고,  인도 印度에서 왔던 사신들은 돌아 갈 때, 전도서 傳道書 를

가져 가서 가르친 것이 불경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경과 유학은 사랑과 율법이라는 성경의 한 부분 씩을 한국인들에게 가르쳤는데,

기독교회가 들어 와서 보니 그건 바로 교회의 복음을 받아 들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들으면 그게 바로 몽학 선생이 었다.

어린 아이를 지도해서 인생의 길을,  진리 眞理 를  찾게 해주는 선생 , 몽학선생 蒙學先生

 

유학과 불경은 바로 한국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는 ,

 한국인의 몽학선생 蒙學先生 이 아니었던가.

 

지금도 중용 中庸 과 대학 大學 을 정성껏 읽는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하늘의 부르시는

소리를 듣게 되고, 논어 論語와 맹자 孟子 를  읽는 이는 저절로 인생의 도를 알게 하지 않은가.

 

조선의 선비들은 누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하늘에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한울님이 계신다는 걸

알고 있었고, 누가 보지 아니하여도 나쁜 짓은 하지를 아니하였다.

 

이런 바탕에다가 복음 을 받아들인 한국인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다.

 

 

             일본이나 중국은 한국을 따라올 수 없다.

 

 

임시정부에서 김구 주석의 지도하에 목사님 대행으로 예배를 인도하던 장준하 張俊河 선생도,

 미국의 농장에서 일하는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함께 농사일을 하면서 몸으로 본을 보여 전도하신 안창호 安昌浩선생님도,

 

상동교회 지하실에 모였던 전덕기 목사님과  상동청년 구락부의 회원들의 그 뜨거웠던 애국심이며,

간도 지역으로 이주 해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고 시작하던 기독교운동이며,

 

제헌국회가 처음 회집되는 날, 첫 번째 순서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로 시작한 대한 민국의 국회 속기록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하던 날의 감격과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은 각 분야에서 경제인들은 경제인들 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들 대로

 사상계 思想界 를 읽으며 자라난 세대이고,   "  씨올의 소리 "  를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다. 

 

이미 기독교의 바탕위에 나라가 세워져 있다.

대한 민국은 투명한 나라로 가고 있다.

 

일본은 아무런 시대가 가도 민주화를 할 만한 사람들이 되지 못한다.

잘못을 해도 90 %가 정부를 감싸고 도는 게 일본의 지식인 이라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나.

 

중국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거기는 영원한 통제국가, 영원한 공산 주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가을의 끝자락 ,  상강 霜降 이 가까운 날,

 

 

 

평지교회   흰쾨끼리    올림,


함필주(충남노회,월포교회,목사) 2020-10-19 (월) 06:25 3년전
존경하는 신목사님!
오늘도 큰 배움과 깨달음의 죽비(竹篦)를 준비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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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10-19 (월) 06:47 3년전
함 목사님,  감사.

복지관 공사 하시느라고 수고가 마느신데
여기도 들어 오셨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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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규(충남노회,당정교회,장로) 2020-10-19 (월) 21:19 3년전
존경하는  신목사님께서  "독립운동과 한국교회' 를 자세하게 올려주셔서
오늘도 많은것 배웠고, 다음글이 기대가 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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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10-20 (화) 07:03 3년전
장로님,

요새 컴바인 돌리느라고 바쁘실 텐데요,

이렇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시노회가 며칠 뒤에 있으니, 그 때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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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충남노회,평지교회,목사) 2020-10-21 (수) 12:46 3년전
존경하는 신목사님!
한국교회 가 빚 진게 있다.
저도 同感합니다.
목사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어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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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10-22 (목) 06:57 3년전
김 목사님, 감사.

  목사님에게 성령의 지혜가 열리고
  사역의 문이 넓혀지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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