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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조선 정부

신흥식 (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9-20 (일) 21:27 3년전 1834  

 

         소현 昭顯 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십년 가까운 세월의 인질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소현세자는 두 달 쯤 후에 갑자기 죽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더 의문 스러운 것은 세자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랑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신에는 누가 봐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독살의혹이 있었는데도 , 대신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아니한다.

인조의 분위기를 잘 아는 궁중 과 대소 신료들은 눈치가 빨라서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장례를 지낸다.

 

그게 다가 아니다.

얼마후에는 세자 빈 강 姜 씨를 아버지 인조의 수랏상에 독을 넣었다는 죄목으로 사형시킨다.

그 친정 아버지 강석기 姜碩期 를 비롯하여 일가 친척들을 다 없애 버린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현세자의 아들 3형제 어린 것들을 제주도에 귀양을 보내고 결국에는 다 죽게 만든다.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는 건 물을 필요가 없다. 그건 뻔한 일이니,

 

인조라는 임금은 아들을 의심하고, 혹시라도 세자가 청나라와 밀통을 해서 자기를 쫓아 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었다.  

모자라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

 

모자라는 사람이 위에 있으면 그 주변 사람들이 어려워진다. 지금도 그렇다.

 

 

              효종  현종 숙종 의 시대  :   예송론으로 세월만 가고,

 

 

사람들은 숙종을 유능한 임금이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경신 대출척 庚申 大黜陟 이라는 말로 기록된 정변으로 부터 네차례에 걸친 형벌은  왕권의 무자비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무지한 왕이라는 건 이런 거다.

 

인조반정을 나라 망하는 길로 가는 거로 보는 이유는 쓸데없는 명분론으로 국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효종의 임금 되면서 시작된 엉터리도 없는 북벌론은 ,  백성들 살아야 하는 민생문제와는  거리가 먼 일이고,

되지도 않을 일을 한다고 하다가  결국은 효종이 단명으로 끝난다.

 

효종이 세상을 떠나니, 문제가 거기서 부터 터져 나온다.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들고 나와서 온 나라가 날마다 싸운다.

 

이른 바 예송론 禮訟論 인데, 여기에는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 것 들이다.

 

그 싸우는 내용이 뭐냐면,  인조 왕의 계비 되는 자의대비 라는 분 이 살아 있었는데, 그러니까 효종의 계母가

되시는 분이 , 아들 상복을 3년을 입을 까 , 1년을 입을 까,  하는 문제로 대가리 터지게 싸운다.

 

문제가 복잡하게 되는 원인은 효종이 인조의 큰아들이 아니고 둘째 였기 때문에 여기서 부터 복잡한 예송이

시작된다. 예전 禮典 에는 큰 아들만 적 嫡 이되고, 둘째는 서 庶 로 보는 게 원칙,

 

어린 나이에 갑자기 임금이 된 현종은 나라의 어른이신 송시열 선생이 하라는 대로 하자고 맡겼는데,

송시열 선생은 곧이곧 대로 성품이 곧은 분이라. 효종을 장손이 아니라는 걸로, 그러니까 효종을 庶로 따져서 

1년 복을 입으면 된다고  하였고,  다 그런 줄 알고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남인들 , 그 중에서도 허목 許穆 이 반론을 편다. 윤휴 尹휴도 거들고,

비록 둘째라 하더라도 왕이 되었으면 장손으로 대접을 해야 한다면서 3년 복을 주장하는 거다.

 

뭘 잘 모르는 현종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높여 주는 남인들의 말이 더 좋아 보였지마는 , 당시의 정부 분위기를

살펴 보니 전부 서인들이 주류인 걸 감안 해서 현종은 그냥 송시열의 설을 따르게 되었다.

 

지금 보면 전부 쓰레기 통에 넣어야 할 문제들인데, 이걸 가지고 몇달 몇년을 싸우는 게 조선의 정부라니

무슨 희망이 있단 말이냐.

 

주자 朱子의 학설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허용될 수 없는 분위기로 가는 거, 그게 서인들이 정부를 장악한

때 부터 시작되는 폐해다. 이게 나라 망치는 길이다.

 

자명종 自鳴鐘 이 들어 왔었는데 정부는 이게 뭔지도 알지 못하고 그냥 버려두고 만다.

세계 지도가 들어 오고, 천주실의 가 전해지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식이 들려 오는데도 정부는

알지 못한 채 엉터리도 없는 논쟁만 계속한다.

 

이렇게 이백년 동안 나라가 없어질 때 까지 노론의 힘은 계속된다.

그 중에서도 송시열의 영향력을 아무도 당할 수 없게 된다.

 

조선의 마지막 철학논쟁 이라고 하는 인물성 동이론  人物性 同異論 이라는 게 뭐냐,

주자의 학설을 이어 받은 사람만 人에 해당되고, 나머지는 物이 된다.

 

조금 더 가면 나만 人 이고, 다른 사람은 物 이된다.

그렇게 돼서 他타를 받아 들일 수가 없는 폐쇄적인 설이 된다.

 

요순우탕 문무 주공 에서 한유에게로 정호 정이 선생을 지나 주자에로 전해 져 내려온 道統도통을 받은 게

아니면 전부 이단 異端이 되고, 斯文亂賊사문난적 이 되니, 다른 말 하는 자는  살려 둘 수가 없는 세상이 된다.

 

그 앞에 바로 송시열 선생이 있다.

살아 계실 때에는 임금님으로 부터 전 백성이 다 대로 大老 라고 불러 최고의 대접을 해 드렸고, 사후에도

그 제자들이 다 잘 되어서 송자 宋子 라는 극존칭으로 불러 드린다.

 

그 분에게는 잘못이 없다.

아주 훌륭한 조선의 선생이시니, 우리도 존경한다. 그런데 그 외의 다양한 타 인의 학설을 받아 들일 수

없게 된 당시의 조선 사회가 얼마나 뒤로 가고 있는가.

 

여기서 유명한 4종지설 四種之說 에다 체이 부정 體而不正 론쟁이 죽자 사자 터진다.

 나중에는 멀리 해남에 가서 살고 있는 고산 孤山선생 윤선도 尹善道 까지 합세 한다.

 

 그 후로 英祖영조와  正祖정조 의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 라고 부르는 데,  동의 헐 수가 없다.

 

왕손이 귀해져서 왕이 될 순번이 아닌 자리에서 , 노론의 지원을 받아서 임금이 된 영조는 노론의 눈치를

보는 수 밖에 없다.

 

어머니가 무수리 였던 거 때문에, 자기의 출신 성분 문제로  열등감도 있었고, 노론 대신들의 막강한 파워 앞에서

잘못하면 흉을 잡히는 거고, 그래서 아들도 생으로 죽게 하는 사도세자 思悼世子 사건도 생긴다.

 

정조 正祖는 아버지가 생으로 뒤주에 갇혀서 죽는 현장을 지켜 본 손자인데, 왕으로 될 때도 힘들게

올라 왔다. 반대자들이 안팎으로 겹겹이 둘러 싸여 있었다.

 

할아버지의 부탁대로 아버지 죽은 일을 잊어 버리고 왕노릇을 하기는 하지마는, 아버지를 죽이던 노론

대신들을 그대로 대신들로 모시고 일하려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노론의 힘은 막강하였다.  거기에 지쳐서 그랬을 까요.

정조가 개혁을 한다고 하지마는 그 실효를 보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다.

아마도 속이 터져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정조의 죽음    :     개혁은 무산되고, 역습이 시작되다.

 

또다시 개혁은 물건너 간다.

 

 당쟁의 와중에서도 중심을 잘 잡아 주던 명재상 채제공 蔡濟恭 이 세상을 떠나고,

정조 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불행한 일,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있다.  다칠 까봐 숨어서 기다리던 보수파 노론 들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 한 사람은 정순왕후 貞純王后  김씨다.

 

영조라는 분이 66세 때 , 16 살 된 왕비로 맞아 들인 왕비, 

이 후로 왕실 역사와 조선의 역사는 이 손에서 더러워 지게 된다.

 

사도세자를 죽게 한 것도 손을 댓고, 이제 정조 통치 기간에 마땅히 처형을 했어야 하는데, 말이 할머니

라서 여러가지를 감안 하여 극형을 하지 못하고 기회만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정조가 먼저 가니

얼마나 좋았겟나.

 

 

 

        어린 왕 순조 純祖  :  정순왕후의 복수 시작.

 

장례를 마치기도 전에 천주교도를 잡아 들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정순왕후의  뒤에는 말할 거도 없이 노론의 대신들이 줄을 지어 서 있으니까, 걱정할 일이 없다.

 

순조가 갑자기 왕이 된 것은 1800 년이다.

이 때로 부터 조선은 이제 마지막 길로 내리 달린다.

 

조선의 마지막 백년은 사람 불러다 죽이는 걸로 국가 일을 삼는다.

홍경래의 난으로 부터 시작하여 전국에서 살길이 없는백성들은 아우성을 치고 들고 일어난다.

 

그걸 역사에서는 민란 民亂 이라고 쓴다. 옳은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임금님에게 살길을 호소하는 건데, 임금님은 그걸 들어 보지도 않고, 잡아다 죽이는 세상이다.

 

 

정순왕후를 등에 업고 왕을 대신하여 왕권을 행사하는 실력자들은 먼저 천주교를 탄압한다.

 죽다가 살아난 정순왕후, 아 그 손으로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정적을 제거하는 데, 아주 기가 막힌 명분이 있는 칙령, 사교 邪敎금지령이다.

얼마나 멋진 이름이냐,  사교를 금해서 나라를 바로 잡으려는 데,누가 반대할 거냐.

 

정조의 주변에서 귀히 여김을 받고, 개혁을 한답시고, 노론의 어른 들의 비위를 거스리던 것들,

그 중에서도 정약용을 비롯한 젊은 문신들, 이승훈 李承薰 이나, 이가환 李家煥 이나, 정약종 丁若鍾

 

싹쓰리 한다.

 

아무리 고문을 해도 죽일 죄 가 없어서 사형을 면하고 유배를 떠나는 정약용 정약전 형제들,

하나는 강진 康津 으로 가고 , 하나는 黑山島흑산도 로 가는데, 같이 걸어 가면서 무슨 얘기를 했겠나.

 

아아 , 이 절망의 나라 조선이여,

 

왕손이면서도,  김씨들에게 걸인 취급을 받앗던 대원군 이하응 李昰應은

아들 고종 대신 실권을 행사하게 되니, 지금 보다 더  무지 막지한 박해를 시작한다.

 

병인 박해, 丙寅迫害

이건 뭐라고 말 할 수가 없는 살육이다.   전국을 피로 물들인다.

전국에서 얼마를 죽였는지 셀 수도 없다.

 

 남종삼 南鍾三 이와 충성스러운 남상교 南尙敎 를 죽이면서 부터 전국의 모든 고을에서는

사람 잡아다 죽이는 일이 일반화 된다.

 

일본이 일찍 개화를 하고, 강화도 조약을 맺자고 온 것이 1876년인데, 그 때 까지도 조선은 사람죽이는

것을 계속 한다.

 

이런 나라에도 무슨 희망이 올 수 있을까.

 

 

 

 

 

코로나  확진자가 점점     줄어들기를 기도하며,

 

 

 

평지교회   흰 쾨끼리   올림,


김문규(충남노회,당정교회,장로) 2020-09-21 (월) 20:50 3년전
배롱나무 가로수  분홍 곷과 함께 가을도 우리곁에 바짝 찾아왔네요
오늘도 신목사님 께서 조선의 역사 한페이지를  올 려주셔  재미있게 읽어보며 몰랏던 내용 잘배웠습니다,
충남노회 신흥식 목사님 존경합니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 한데 감기조심 하시고
오늘 밤도 평안하세요,
              당정  김문규 장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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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9-22 (화) 07:16 3년전
김 장로님,

감사합니다.
오늘이 추분 秋分이네요.

장로님 교회와 가정에 가을 준비가 잘 되고 요,
하늘나라 창고에 알곡이 쌓이는 거 처럼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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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20-09-22 (화) 09:47 3년전
아, 아!
사람 잡아다 죽이는 일이 일반화 된 조선왕조 후기
망하는 길로 나아갔군요.
오호! 통재라.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거 목사님의 기도 덕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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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9-22 (화) 10:00 3년전
대원위 대감 이하응은 처음에는 천주교회를 좋아 하는 척하고,
  그 부인 민씨와 그 궁중에 많은 종친들이 이미 천주교인이었고요,

  가까운 승지였던 남종삼에게 프랑스 신부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서
 며칠을 지나면서 들리는 소문에 대원군이 천주교회를 좋아 한다는 걸 듣고는 , 갑자기 변해서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미친 짓을 시작하였으니,

  이 무슨 망녕인지,

  나라가 안될라면 이런 일이 돌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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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9-23 (수) 10:33 3년전
申 목사님!

권력이라는 속성이
아버지가 아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정적(政敵)으로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왜란 때 三南 지방을 돌면서 아버지 선조의 무능을 보완한 광해를
아버지 선조가 시기하고 질투하고,
청(淸)에 볼모로 잡혀 갔으면서도
청(淸)나라의 노예가 된 조선 백성들을 속량했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姜 氏)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정적(政敵)으로 여기고 .....

권력이라는 속성도 있었을 것이고,
또 아둔패기 같은 조선의 역대 왕들의 좁은 소견도 있었을 것이고 ....

아!
복덩어리 소현 세자빈 강 씨에게
사약을 내린 것은
하나님의 복(福)을 걷어차는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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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9-23 (수) 10:42 3년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슬픈 조선의 역사를 회고(回顧)하면
늘 悲憤慷慨만 터져 나오게 되지요.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괄목상대하게 달라진 것이지요.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사랑!
'로암미'를 '암미'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Cor Cordi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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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9-23 (수) 11:40 3년전
임금이라는 자리에 가야 할 사람이 아닌 자들이
    태어나서 그대로 임금이라는 걸 하다 보니,
    함량 미달인 채로 권력을 휘둘르고,

    아들과 갈등을 한 것은 태조 때 부터 계속 그렇지
    제일 심한 건 영조의 사도세자 건이고,

    그 다음으로 유명한 건 대원군과 고종 폐위 건이지.
    끌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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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9-25 (금) 15:36 3년전
인조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네 보통의 아버지였다면
소동파(蘇東坡)처럼 달을 바라보며,
자식인 소현 세자와 며느리인 세자빈 강 씨를 생각하면서
이런 시 한 수 쯤 남겼을 일입니다.

月有陰晴圓缺(월유음청원결)하니
此事古難全(차사고난전)이라
但願人長久(단원인장구)하여
千里共嬋娟(천리공선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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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9-25 (금) 18:52 3년전
인조는 그럴 만한 마음이 없엇네,

  도리어 세자가 귀국하는 걸 자기에 댄한 큰 위협으로 생각하고,
  그 자손들 까지 다 싻을 잘랐네,

  그런 사람들이 조선의 임금이었지,
  다른 임금도 그렇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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