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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천판결 還賤判決 , 그 후.

신흥식 (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09 (일) 18:18 3년전 2077  

 

 

    육십여년 만에 다시 노비로 돌아 가라는 판결을 받은 송 익필 과 그 형제들 , 그 자녀손들은 각자 흩어져 뿔뿔이 도망하였다.  당대를 주름 잡던 대 선생 송익필 宋翼弼 은 서인들의 영수 인 정 철  鄭澈 이나 성 혼  成渾 선생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일을 꾸몄다.   이 원수 같은 동인 들을 다 없애 버리려는 일.

 

정 여립 鄭汝立 사건이 , 실제로 역모가 있었는지, 조작된 사건인 지는 , 지금 와서  밝힐 수 가 없는 상태다.

처음 부터 그럴 만한 실체가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럴만한 빌미를  준 것도 일부는 맞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 사건의 진실 여부,  그  논란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 사건이 진행 되는 과정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무 분별한 수사였던가 ,  전신을 고문 당하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변명을 들어 주지도 않는 채로 사형에 처하여 버리던 사람들, 

 

그 때 그 사건의 특별 수사본부장을 맡았던 사람들의 그 엉터리도 없는 처사를 보고자 하는 거다.

 

 

황해도 감사의 비밀 장계 狀啓

 

처음으로 정여립의 역모 사실을 위에 알린 이는 황해도 감사   한 준의 비밀 장계로 시작된다.

장계라는 건 지방수령이 중앙 정부 임금님 께 업무 보고를  하는 글이다.

 

정여립이 멀리 전주 지역에 있었는데, 이렇게 황해도에서 고변을 하게 된 거 부터가 의아심을 갖게 되는 건데, 그게 바로 도망 다니던 송 익필이 그 때, 황해도 백천 白川 쪽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모라는 말에 놀란 선조는 그 날 밤으로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는데, 그 당시 우의정 이던 정언신 鄭彦信 이 총책임자가 되었다. 당시에 국정을 맡은 것은 동인 들이어서 이산해 李山海 도 같이 거들게 되었다. 

 

사건 초기에는 특별수사 팀에서 볼 때 , 정여립이 역모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서둘지 않고 조금 동정을 살피는 중이었고, 도리어 고발한 사람들을 불러다가 진실을 캐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마침 선조는 일반 백성들에게 " 구언 求言 교지 "  라는 걸 내렸더니, 전국에서 특별 수사본부장 정언신을 교체해야 한다는  글이 산처럼 올라 왔다.  구언 이라는 건 일반 백성들의 의견을 구한 다는 건데, 사실은 서인들의 의견이었다.

 

정언신 과 정여립은 가까운 집안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온갖 악풀을 다 달아서 바꾸라고 요구하였다.

실제로 정언신은 정여립과 9 촌 간이라.  의심 받는 게 싫어서 자진해서 물러 났다.

 

그 후임에 선조는 정 철 을 임명했다.

이게 큰 화근 을 불러 오는 인사 였다는 건  그 뒤에 보면 알게 된다.

 

어덤덤한 선조는 뭐가 뭔지 구별을 못하고 정 철의 손에 칼을 들려 줘서 원수들을 다 죽이게 하였다.

이 사건에 연루돼서 끌려가 죽은 사람은 전국에서 천여명이 넘는다. 어떤 이들은 이천여명을 말하기도 한다.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다 동인 들이었다.

뭐 좀 해 볼 만한 사람들은 이리 저리 연좌를 걸어서 결국은 다 죽고 유배가고 동인들의 집안은 다 죽었다.

 

 사람같이 생긴 건 다 끌어다 죽이고 나니, 그 다음 해에 임진 왜란이 터진다.

이게 어쩌 자는 거냐 . 아니 이제는  뭐를 허자는 말이냐 .

 

조선의 천재이면서도  천한 노비의 소생이라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송익필 이 기획 하고 연출한 이 사건에

선조라는 임금으로 부터 모든 권력을 가진 실세들이 다 동원 돼서 ,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둘러 대었으니,

 

아아, 통재로다.

 

나라 망할 짓을 저질러 놓고 서야 무슨 임금이고, 무슨 대신이란 말이냐.

 

 

 

   너무나  앞서가던  천재의 비운.

 

정여립은 벌써 부터 천하 공물설  天下公物說 을 말하여서  천지의 만물은 한 두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과 

그 의견에 연결 돼서  하사비군론 何事非君論을 주장하여 임금 자리를 세습 하는 걸 반대하는 말을 하였으니, 그 당시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여 질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당시에 벌써 공화정 에서나 가능한 말을 했으니,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상황을 짐작하기 위하여 몇가지 사례를 올려 본다.

 

김 빙  金 憑  이라는 사람의 죽음.

 

김빙은 문과에 급제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좌랑 벼슬에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바람 불면 눈물이 나는 병이 있엇다.  풍현병  風眩病 이란다.

 

역적 정여립을 추형 하던 날 , 온 관리 들이 다 줄을 지어 서서 기다리는 데, 마침 날이 춥고 바람이 불어서

김 빙은 눈물을 닦으며 눈 아픈 걸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걸 본 사람은 김빙과 감정이 좋지 않앗던 白惟咸

이란 관료였는데 , 임금님에게 고자질을 하였다.

 

역적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하여 울고 있다는 말을 들은 즉시 김빙은 끌려 가서 죽임을 당하였다.

본래 김빙은 정여립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며, 눈에 안질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을 수없이 해도

아무도 들어 주지 아니하였다.

 

조 대중 曺 大中 의 죽음.

 

조대중은 全羅 都事 로 있었다.

都事 라는 벼슬은 監司 바로 밑에 벼슬이니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 밑에 부지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때엿는지 사랑하던 여인과 이별하면서 눈물을 흘린게 알려 졌다.

 

그 말을 들은 아무개가 얼른 고발하였다.

조 아무개는 역적 이 죽는 걸 슬퍼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그 때는 서로가 먼저 고발하는 게 상책이었다.

고발하면 상을 받고 , 본인은 역적과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 받는 길이어서 선수쳐서 고발이 최고였다.

 

조대중이 끌려가 고문을 받으면서 자기가 역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밝혀 줄 증인 들이 다 있다고

증인 신청을 하여도 아무도 들어 주는 이가 없었다, 그냥 사형에 처하고 말았다.

 

임금이라는 자리는 , 장래 유망한 젊은 이를 이렇게 억울하게 죽여도 괜찮은 가

 



초대 수사본부장 정언신 鄭彦信의 죽음.

 

정언신은 우의정이고 또 자기가 특별수사 본부장에 있으니까, 처음에 정여립의 가택수색을 하려고  금부도사를 보낼 때 단단히 부탁을 했다.

 

정여립의 집에 가거든 편지 주고 받은 거 전부 압수해서 가져 오기 전에 자기와 자기 형 정언지 명의로 된 문서가 있으면 다 골라 내서 없애 버리라고 말이다.

 

금부도사는 당연히 그렇게 했다.

정언신은 안심했고, 그간에 주고 받은 서신은 다 없어졌으니 자기는 정여립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잡아 떼었다.

 

그런데 선조가 가지고 있던 그 압수 문서 들 속에는 편지 말미에  종로  신   宗老 信 , 이라고 쓴 것도 있고,  족로 신

族老 信 이라고 쓴 것도 있었고, 동곡 東谷 이라고 쓴 것도 있었다.

 

宗老 라고 쓴 것과 族老 라고 쓴 것은 정언신이 정여립에게 편지를 쓸 때, 집안의 어른이라는 의미로 쓴 거였고, 東谷이라고 된 것은 형 정언지 의 호를 쓴 것이었다.

 

금부도사는 글이 짧어서 그걸 미쳐 알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압수해다가 선조에게 주었으니, 이게 증거가 돼서 결국은

귀양가서 죽었다. 

 

 아까운 사람들의 무죄한 피흘리기를 계속하던 조선의 임금들, 아 그 결과는 어째 되는가.

 

 

 

 

 

광복절 75 주년에

 

휴전선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평지교회   흰쾨끼리  올림.


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8-09 (일) 18:45 3년전
申 목사님!

一沐三捉(일목삼착)하고 一飯三吐(일반삼토)라
감던 머리도 말아 쥐고, 먹던 밥을 토하고 인재를 맞이했다는
중국 주공의 이야기가 있지요.

한 사람의 선비가 있기 까지
한 사람의 목사가 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기도와 뒷바라지가 있어야 합니까?

그래서 인재가 소중한 것인데.....
材木이 아니라 巨木들이
음모에 의해서 떨어진 歷史가 못내 슬프기만 합니다.

"세상은 흐린데, 나만 맑도다
 세상은 취해 있는데, 나만 깨어 있도다"라고 탄식하며
長江에 몸을 던진 屈原의 심정이
바로 申 목사님의 심정이 아닐런지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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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09 (일) 19:01 3년전
목사님,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죄한 사람들이 죽어가던 우리의 역사, 그것은 결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고, 말없는 백성들만 무수히 죽어가는 고통으로
다가오고,

더 슬픈 건 , 나라가 망하기 전 백년의 세월이
무참한 살륙의 나라였네요.


그래도 위로가 있고, 소망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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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20-08-13 (목) 07:55 3년전
"고발하면 상을 받고 , 본인은 역적과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 받는 길이어서 선수쳐서 고발이 최고였던" 아픈 역사와
"材木이 아니라 巨木들이 음모에 의해서 떨어진 歷史"를 보며 마음이 아프고, 지금도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평지의 흰쾨끼리 님 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속울음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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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13 (목) 08:57 3년전
쐐기골 세광교회  이 목사님,

넘치는 홍수 강물에 떠 내려가지 않고  있엇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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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충남노회,평지교회,목사) 2020-09-11 (금) 14:29 3년전
조선 14 대 선조 왕은 간신들에 이간질로 수많은 백성들을 억울하게 죽이고 결국 일본의 침략을 당히지만 맞서 싸우지 않고 신의주까지 도망친 선조 ...
아픈 歷史를 보면서 지금 정치하시는  분들 反面敎師 하시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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