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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 째 이야기 : 송사련의 무고 임이 밝혀지다.

신흥식 (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02 (일) 18:31 3년전 2129  

 

 

  무고 誣告 였다는 걸 확인 받다.

 

죽임을 면하고 살아 남은  안당의  아들 안처함  安處 言+咸은 시골에 숨어서 소리없이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끔찍한 사건에서 받은 충격도 컷고,  무엇보다도 가까운 집안에서 고변한 것이 더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서울이 정 떨어져서 먼 데로 갔다.

지리산 가까운 곳에 , 더 갈 수가 없어서 거기 머문다.

 

 그냥 숨어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거 만도 천만 다행이었다. 근 오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기에서 난 아들, 안 윤 安 玧 이 임금에게 글을 올렸다.

임금이 여러 차례 바뀌어 선조 宣祖가 위에 있을 때였다.

 

자기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역모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혀 달라는 호소였다.

 

 기묘사화로 죄없는 인물 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 1519년,  안씨 네가 역모로 처형 된 것이 1521년인데,

안 윤 이 상소를 한 것은 1566년이었으니, 45년이 지난 후 였다.

 

이걸 어떻게 밝힐 수 있나.

지금 같으면 여러가지 증거를 찾아내어서 합리적인 판결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난

사건을 어떻게 밝히는가.

 

고심하던 선조는 주변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 사건의 내용을 알만한  증인 들의 말을 취합하여

보니 잘못된 고발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늦었지마는 억울한 처형이었다는 걸 공표하고, 안 당 에게 신분이 다시 회복 되게 하여 주었다.

삭탈 된 관직도 회복하고 당연히 자손들도 복권 되었다.

 

그런데 법의 판결은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안 당의 자손들 중에서 두 번 째 솟 장이 올라왔다.

 신분 복권 판결을 받은 지  이십년이 지난 뒤였다.

1586년,

 

솟 장에는 안 씨네  ' 노비안 奴婢案'  이라는 것이 첨부 되어 있었다.

노비들의 명단을 적은 것이 노비안이다.

 

노비는 사람이 아니고, 재산이었다.

부잣집에서 재산을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는 분재기 分財記 에는 노비들도 같이 나누어

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저 유명한 선생으로 행세하고 다니는 송익필과 그  형제들은 안씨네 노비의 자손이라는 걸 확인 하여

달라는 솟 장이었다.

 

원고는 안 당의 손자 며느리 윤 씨 명의로 올라 왔는데

이 소송은 전 소송보다 몇 갑절 더 어려웠다.

 

이 사건에는 조선의 선비들이 다 한 마디씩 하게 된다.

동인들은 동인들 대로 , 서인들은 서인들 대로

 

원고는 東人들의 후원을 받으며 소를 진행 하였고,  피고네 송익필과 그 형제들은 당연히 서 인 西人들이

지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싸움은 쉽게 끝날 수가 없었다.

 

 

전 조선 지식인들이 이 사건에 손을 대었다.

판결하기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이미 천인이 면천 된 지가 65년이 지났으니, 그 세월 만으로도 다 시효가 완성 됐다는 게 西人들의 의견이

었다. 그 말은 지금도 현행 법에서 받아 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시효가 완성 됐다는 의견 보다도 더 휴머니즘 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미 면천 된 지가  두 세대 를 지난 일이니,  그걸 지금 들고 나와서 재론 할 수 없다는 말,

 

그 예학의 대가요 조선의 모든 지식인들의 선생이신 김장생도, 송시열도, 김집도,

송익필에 대한 노비 건은 천부당 만 부당하다고 절절이 호소하였다.

 

그렇게 전 조선의 선비들이 다 달라 붙어서 왈가 왈부하던 사건은

법대로, 규정대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3년동안을 전 국의 모든 이들이 싸우던 사건은 결국,

 

송익필 형제들이  안씨네 노비임을 다시 선언하였다.  

노비안에 있는 대로 하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 판결이 내려 진 후에 송익필 형제들, 그 자손들 칠십여 명은 전국으로 도피하였다.

문장의 대가로, 조선의 대 스승으로 , 서인의 지도자로 있던 사람을 다시 안씨네 노비로 삼으라니,

 

그건 피고들이 도저히 받아 들여 질 수 없는 판결이었다.

 

변성명을 하고 도피하였지마는 구봉 龜峰 선생 ( 지난 번에 九봉 선생이라 표기는 잘못 된 것임 )은

서인들의 명사들 집에서 비호를 해 주어서 잘 숨어 있었는데, 그 중에 정 철  鄭 澈 선생네 집에서

많은 신세를 졌다.

 

송익필은 그렇게 숨어 다니면서 ,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자기를 이렇게 파멸로 몰아 넣은 놈들을 복수 하고 싶었다.

 

원고의 뒤에서 원고를 부추겨서 나를 죽이려는 이 놈들,

 

이 동인 놈들을 다 죽이고 싶도록 분이 풀리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숨어서 동인 몰살 꾀를 낸 것이, 정 여립   鄭汝立 사건이었다.

 

 

 

 

입추 立秋 가 가까운 날,

 

잠시 비가 멈춘 사이에 마당에는

고추 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고,

 

 

 

평지교회   흰 쾨끼리   올림.

 

 

 

 


윤여삼(경남노회, 무림교회,목사) 2020-08-02 (일) 20:23 3년전
아버지 송사련이 뿌린 씨를
아들 송익필이 거두다니 ......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天網(천망)은 恢恢(회회)하나 疏而不失(소이불실)이니라 !!!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긴 것 같지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느니라.

아!
무슨 말을 하리요!
笑而不答心自閑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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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식(충남노회,평지,목사) 2020-08-02 (일) 21:33 3년전
윤 목사님의 글이 명문이네,

멋진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


입추에 새 소식이 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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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충남노회,평지교회,목사) 2020-09-07 (월) 23:30 3년전
샬롬!
      宋翼弼 의  誣告 였다는 것을  확인 받다.
      존경하는 신목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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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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