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련은 이제 공신이 되고 , 철천지 한이었던 신분의 멍에를 벗었다.
본인도 출세해서 당상관이 될 수 있었고, 덕분에 그 아들들은 대성하게 된다.
큰아들이 송익필 宋翼弼 그 동생은 송한필 宋翰弼 , 그 아래로 동생이 하나 더 있고,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아버지 덕분에 공부를 잘하게 된 아들들은 다 잘 됐는데 과거 科擧 라는 출세의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사관 史官 이 문제를 삼는 바람에 , 응시 자격이 되지 못해서 시험을 보려고 하다가 포기하였다.
조선의 과거 제도는 응시자가 자기의 신분을 원서에 기록하는데, 4祖 를 써야한다.
4祖 라는 건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다가 외조부 까지를 밝혀야 하는 데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송익필의 조상을 떠들어 보면 거기에는 걸리는 게 줄줄이 기다린다. 아버지는 공신이 됐으니까 괜찮다고
하더라도 그 위 3조상들은 뭐라고 할 수가 없게 된다. 아버지가 공신을 받으면 그 위 조상들도 차례대로
공훈을 받아서 면천이 되는데, 노예 신분인 할머니가 걸린다.
법으로 따져서 이기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라서 송익필 형제들은 과거를 포기하고 선생의 길로 나선다.
그 때의 그 심정은 지금이라도 이해 할 만하지 않은가. 그 절망감, 아 아 세상이 원망스럽도다.
그런데 그 송익필의 능력은 너무나도 뛰어나서 당대의 선비들 중에 소문이 알려져 천하의 명사가 되었다.
송익필의 위상은 율곡 李 珥 와 우계 成 渾 과 같은 반열에 서게 되었고, 그 제자들은 다 출세해서 정부의
요직에 가게 되었다.
송익필의 안광 眼光은 얼마나 무서운지 보는 이들이 감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고 한다.
그 제자들이 바로 金長生과 金 集이요, 또 조선의 후기를 주름잡는 宋時烈 이니, 더 뭐라고 하겠는가.
이렇게 九峰선생 송익필은 존경을 받으며 조선의 대가가 되어서 잘 지내고 있었고, 그 교유하는 친지들은
주로 서인 西人들이어서 서인의 영수 領袖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반세기 경이 지나고 , 이제는 모든 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일 때였다.
멸문지 화를 당해서 다 죽은 줄 알았던 그 주인 집, 안 당 安 塘 의 집에서 솟 장 訴 狀 을 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게 뭔 소리여,
오늘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 , 마지막 주일
중복 날 저녁에 ,
평지교회 흰쾨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