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에서 별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냥 슬쩍 지나가는 사건인데, 알고 보면 그 속에
조선 600 년의 모든 걸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비밀의 커튼을 한 번 열어 보시지요.
기묘사화 己卯士禍 라 하는 건 1519년, 중종 10년 에 있었던 슬픈 살육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피해를 입고 죽거나 귀양간 사람들을 기묘명현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대표자가 조광조 趙光祖였고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은 수백명이 됩니다.
그 전에 이미 연산군 때에 두번의 사화가 있었고 , 그 뒤에도 을사사화 라는 게 한 번 더 있어서 4대 사화라고
쉽게 부르는데, 기묘사화는 다른 사화 에 비하여 볼 때, 성격이 다릅니다.
정결한 개혁자들을 때묻은 것들이 죽인 것, 하늘과 땅이 진노할 만한 범죄였습니다.
그 참혹한 사건을 보면서 가슴 이 아픈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이조 판서를 지나서 정승의 자리에 올라가 있었던 안 당 安 塘 이라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나라의 책임자의 자리에도 있었고, 또 정의로운 일을 하려는 젊은 이들을 해치려고 하는 무리들이 불합리한 것을 막으려고 조광조의 처형을 극력 반대하였지마는 대세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힘을 쓰지 못한 걸로 끝난 게 아니고 그 뒤로 현직에서 밀려 나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걸 보면서 그 집 자손들 : 아들 3형제가 억울한 아버지의 얘기를 이리 저리 하게 되었는데, 그 얘기를 듣는 이가 있었지요. 바로 안당 의 배다른 매제 송사련 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당의 아버지 安敦厚는 여종에게서 딸을 낳았는데, 이름이 감정 甘丁 이고 , 커서 결혼을 하니 그 남자가 송사련입니다 . 안 당 에게는 여동생이고 매제가 됩니다. 매제라고는 하지마는 , 안당 과는 천지와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안당은 양반의 자손으로 시험에 합격하여 이조 판서가 되었고, 송사련은 천한 여종의 자손이니, 천한 종일 뿐이지요.
이것이 조선이라는 사회였답니다. 같은 자손이라도 한 사람은 판서가 되고, 한 사람은 그 집의 종이 되고,
그런데 송사련은 현직 판서 집의 추천으로 관상감 觀象監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조선시절의 추천제도는 기술직 , 잡직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길이 열려져 있었지요. 대체로 중인 들이 하는 일.
관상감은 지금처럼 일기예보 만을 맡아 보는 게 아니고, 나라의 중대사를 할 때 마다 택일, 택지 여러가지 점을 치는
일도 하였는데, 머리가 좋은 송사련은 일을 잘 해서 승진 승진하여 더 올라갈 수 없는 한계까지 승진 하였는데요,
여기서 부터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관상감의 주부 主簿자리에서 , 신분의 제약으로 더 올라 갈 수 없는 자기의 형편에서는 , 평범한 일 가지고는
할 수가 없고, 혁명적인 사건이 필요한 데, 그건 공신 功臣 이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공신이 되는 방법은, 전공을 세우거나, 역모사건을 고발하여 공신의 칭호를 받는 길 밖에는 없지요.
그 때 쯤 마침 안당의 처가 세상을 떠나서 장례를 지내는 데, 조문객들이 다녀 가면서 작성한 방명록 이 좋은 증거가 됩니다. 거기 왕래하던 사람들이 상제되는 안당의 자제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정부의 실세들을 비판하는 소리를 송사련이 다 들었거든요.
송사련은 조문객들의 방명록을 훔쳐서 곧바로 정부 실세들을 찾아 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심정 沈貞 과 남곤 南袞 은 곧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된것이 安處謙의 형제들이 전부 죽임을 당하고 안 당의 가족은 전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됩니다.
안처겸의 동생 하나는 마침 거기에 없어서 화를 면했습니다.
安處함 .
오늘은 여기 까지 요.
다음에 더,
일년 중에 제일 더운 날, 대서 에
평지교회 흰쾨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