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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자기 감정주의!..

김창섭 (경기북노회,병산교회,장로) 2012-10-07 (일) 19:30 11년전 6387  
나는 지금보다 좀 젊었을 때 기도원에 가끔 가서 뜨겁게 찬양과 기도도 하고, 그리고 부흥강사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갈 때에는 이번에 가서는 무언가 바뀌고 문제의 응답을 받고 와야  한다고 새로운 각오와 기대감 속에서 집회에 참석을 한다.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고 집회를 마친 후 집에 돌아 올 때, 나 자신을 돌아보면 무언가 풀리지 않은 것 같고, 교회에서 말하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것 같고, 또 스스로 무언가 내가 잘못되지 않았나? 자책을 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은혜”라는 말이다. 
 
    오늘 목사님 설교에서 “은혜” 많이 받았어..
    오늘 찬양이 얼마나 “은혜”가 있었는지 몰라.. 
    또 요즈음은 아무리 기도하고 찬양해도 왜 그런지 “은혜”가 없어.   
    이런 말 보다는....
    오늘 목사님의 설교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
    오늘 찬양이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있었는지 몰라.. 
    또 요즘은 아무리 기도하고 찬양해도 마음에 “감동”이 없어...
    이런 말들이 잘 어울리지 않을 가? 생각 해 본다.
 
  은혜? 은혜?
  내가 기도원에 갔을 때 너나없이 모든 성도들이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원이 떠나가라 주여! 주여! 외치며 방언도하며 정말 은혜받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렇게 시간 시간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올 때는 대부분 만족한 표정들이다. 그러나 은혜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모두 마치고 집에 올 때, 기도원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 탈 때 보면, 내가 먼저 타서 좌석에 앉아 오려고 이리밀고 저리밀고 새치기 하면서 아우성치는 모습들을 보면,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은혜” 받은 것이 아니라 잠시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인가? 이 “은혜”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느낀다. 기독교(교회)에서 말하는 “은혜”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사랑, 변치 않는 그 언약적인 사랑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은혜”란 뜻을 생각 해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은혜”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감동이 있었다는 뜻을 나타낼 때 은혜 받았다는 뜻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교회에서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평범하고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주시는 은혜란 말의 뜻을, 감동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면, 자칫 감정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적 잘못 된  신앙으로 빠져들까 염려가 된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의 이성, 감정, 의지의 삼대 요소를 고루 갖춘 교회(신앙)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느 젊은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내가 신학교 다닐 때, 지 교회에 와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저것도 설교인가? 할 정도로 성경 본문과 아무 상관없는 설교를 삼,사십분, 길게는 사,오십분 하다가 끝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막상 목회현장에 나와 보니,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조금 이해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은혜가 없다고  생각하여 목회자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들이 한국교회가 자기 감정주의로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 해 본다.  한국교회가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 어떠한 계시만을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으나, 대체로 감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전인적 신앙교육
  성도들의 신앙은 지(知) 정(情) 의(意)의 신앙을 고루 갖춘 삼위일체의  신앙이어야 한다. 또한 지, 정, 의, 어느 한 부분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각자 신앙생활 정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러나 우선순위가 바뀔 수는 있어도 어느 한 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성도들을 튼튼한  신앙인으로 양성 할 수 없다고 본다.  즉, 이성이나, 감정이나 의지,  하나만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하고 중시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 인간 역시 어느 한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그 모습 전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또 인간을 영과 육으로 구별하여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가늠하는데 전적으로 자신의 감정적인 부분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또 내가 기쁘고 감동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신 것이고 나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무관심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는 아닌지?  성도들은 자기 자신을 깊이 있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들을 보면,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서 나타나는 자기 감정주의”라고 말 할 수 있다.  자신의 신앙이 정적이고 주관적인 확신이 흔들리거나 약해지면 신앙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지 않고 튼튼한 성도는 신학과 신앙을 고루 가춘 성도라고 말하며, 신학이 우리 몸의 뼈라고 비유하면, 신앙은 우리 몸의 뼈를 둘러싼 살과 같다고 말한다.      이것은 뼈와 살이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사람이 보기 좋고 튼튼한 것과 같이, 튼튼한 신앙인은 신학과 신앙을 겸비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과 의지가 확실한 신앙인이어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사탄의 궤술에 넘어지지 않는 튼튼한 성도라고 말한다.
 
  나는 교회가 이러한 전 인적 신앙교육으로 어느 한 면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성도들에게 지(知) 정(情) 의(意)의 신앙을 고루 갖춘 삼위일체의 신앙인을 양성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감정만 북돋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경에 관한 지(知)적인 면도 깊이 있게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마음을 움직이고 감화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중심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지(知)적 능력을 향상하므로 기독교 신앙에서 나타나는 “자기감정 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불안전한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격체이시며 우리를 항상 지켜보시는 하나님께 의(義)로운 자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박일남(경기북노회,의정부 송암교회,장로) 2012-10-07 (일) 20:19 11년전
의정부 송암교회 박일남 장로 입니다.
김 장로님 반갑습니다. 이곳 게시판에서 이렇게 만나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장로님의 글 저역시 공감하는바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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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윤(전북동노회,전주금암교회,) 2012-10-08 (월) 09:22 11년전
김 장로님!

장로님의 글을 보며 여름이 가고 기온이 좀 싸늘해 지면
아! 벌써 가을인가?  하며 누구나 긴 밤 잠을깨어 인생,
 신앙,  세상 일은 스쳐가지만 사랑하는 교회, 교인들을
 떠 올리며 이런 저런 깊은 생각를 하지요 ------

누구나 돌아본 신앙생활 속에서 그런 생각도 자기 발전의
기회가 됩니다. 항상 우리는 죄인이라 고백할 때 보다
성숙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가는 그런 과정을 장로님의
글에서 나는 느껴 봅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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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수(경기노회,밀알교회,목사) 2012-10-08 (월) 13:55 11년전
장로님의 정확한 지적, 공감하며 감사드립니다.
곁다리로 한 마디만 거들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미 다 받은 것이겠지요.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복음성가는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온 사랑을 다 주셨는데,
더 받을 것이 무엇이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다 받은 은혜를 더 받겠다고 떼를 쓰고 있으니..........

지, 정, 의에 대한 말씀도 전체적으로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사람이나 세상(cosmos)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지, 정, 의가 아니면
이 마저도 무의미한 논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장로님의 성숙한 신앙의 여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경주에서 문동수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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