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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교회의 목회자 선택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3-04-13 (토) 10:29 11년전 5007  
요즈음 교회 청빙서라고 하고 이력서 제출 요구를 보면 가관이 아니다.
물론 세태의 경향과 흐름에 물들지 않는다고 어떻게 볼 것인가?
아마도 대기업 입사 기준 보다 훨씬 까다롭다.
목회자의 공급과 목회지,
구직과 구인의 불균형이 현실적 문제일 것이디.
 
현실을 어떻게 외면할 것인가? 마는
여하튼지 그 기준이 너무도 세속적이고
한편으로는 추하다는 생각도 든다.
 
공개 구인이 목회지를 찾는 자에게 형평성을 이루는
것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게시판의 공개적 교역자 구인의 광고는 교회를 타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정말 자신들의 영적 지도를 위한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하는지 모른다.
대개는 정치 장로들의 놀음으로 맘에 맞는 고용인을 뽑는다.
장로들의 조직은 조폭 수준을 넘는다.
 
대개의 경우 장로님들은 순수하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적 희생을 하신다.
그러나 교권 정치에 물들은 소수는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더럽고 추한 정치 놀음에 빠져 산다.
 
목사들은 노회장
장로들은 부노회장
그리고 임원들이 마치 세상에서 벼슬을 얻는 것처럼
갖은 방법을 다 쓴다.
 
이런 교권에 물들어 사는 장로들과
함께 동거동락 하며
서로 상부상조 이용하고
교권 정치를 업으로 삼는 소수의 목사들이 있다.
글세 이들의 타고난 탈렌트인지 모른다.
 
어느 조직이나 다 그런것이지 뭐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장로나 목사들의 사고와 머리 속에는
이권에 따라서
목사의 임지를 가위질하고 칼질한다.
 
중앙의 조폭격인 두목 수장이 있고
지방의 수장들이 있다. 그들은 은퇴 후에도
이 일을 손에서 떼지 못한다.
대단한 열정과 사명으로 죽을 때까지 열심이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목사의 임지도 칼질 하지만
총대나 총회 임원 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전략적 황동을 하며
조금 더 가면 기독교 기관(ex.cbs. 성서공회. 기독교 봉사단체) 등을 확보하려 든다.
이런 자리 잡기 싸움에 크건 적건 간에 돈 봉투와 향흥이 개입 된다,
세상과 다른게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추하고 더러운 행태가 개입 된다.
 
우리는 의인화와 성화를 논한다.
학자들의 단어의 의미와 시대적 기독교 변증
목사들의 설교 등은 그들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한가지 극단적이지만 방법이 있다.
그 것은 목사가 교회를 모두 사임하고
밥벌이가 아니라 기도와 성령의 임재를 바라는 것이다.
 
성경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직장에 고용 되어 밥벌이 하는 목사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안고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목사의 길로 돌아가는
기도와 실천이 그 방법이다. 
 
기존의 썩은 교회에 고용 되려고
동료와 선후배 목회자 들이 경쟁한다.
 
박사 학위자는 아직도 프레미엄이 있다.
힘 있는 교권의 줄에 선 자도 기회가 우선적이다. 
잔꾀가 있고
잔머리 굴리는 자도 유효하다.
자리 차지하는 자는 진실로 머리도 있고 처세가 능하다.
 
묵은 암탉은 알을 낳지 않고
소리만 지른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묵은 교회가 많다.
3-4-5-6 세대가 믿음의 가정이다.
자랑할 것이 못 된다.
그들이 하는 교회가 알 낳지 못하는 묵은 교회이다.
그들이 지도자로 되어 있는 교회가 지금 이렇다.
 
희망은 진실로 예수그리스도
오직 예수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은총에 있다.
 
우리의 눈을 예수에게 고정시키고
그 눈으로 세상을 향하여 선교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게 여기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시대를 넘어가야 한다. 
 
묵은 것이 다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온고지신
좋은 옛것과 전통는 보전하고
새로운 것은 가려 새 일을 창조해야 한다.
 
묵은지는 깊은 맛이 있고
입맛을 새롭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오랫 동안
자기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술수적 전통은
새물을 더럽게 한다.
 
썩은 물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고
있는 생명도 죽게 만든다.
 
한국교회와
60 주년을 지나는 우리 교단도
고여 있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 것 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 버려야 한다.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공존한다.
알곡의 보호를 위하여 가라지도 함께 자라게 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밎는 성경 이해 일까?
 
가라지를 그대로 두면
알곡을 덮어 알곡의 생존이 위협 받는다.
 
교권을 탐하는 가라지
교권을 독식하려는 가라지
교권으로 동료의 숨통을 조이는 가라지
목회지를 교권으로 자기 패거리 심는 가라지.
이런 불의한 일을 두고도 방관하는 비겁한 가라지 
이런 침묵은 미덕이 아니다.
 
우리 교단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자기 만의 독선적 고집을 버리고
더러운 교권의 독식을 버리고
모두의 인격이 존중 되고
서로가 함께 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병휘(전북동노회,전주소망교회,목사) 2013-04-13 (토) 12:40 11년전
이런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 가운데 목회자의 호봉제실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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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3-04-13 (토) 19:18 11년전
그것 보다는  성서와 예수 정신의
회복이 근본적 해결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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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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