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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라지 꼴 값

문동수 (경기노회,밀알교회,목사) 2013-02-24 (일) 15:38 11년전 3089  
꼬라지 꼴 값
                                              (경주 한맘교회 문동수 목사)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10:21)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묻다. 무릎은 꿇고 물으니 얼마니 진지한 것인지 모른다. “선하신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질문을 하고 있는가? 한 사람처럼 그래도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이 질문이 사라진지 너무 오래다.
 
예수님은 선문답을 한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질문에는 대체적으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반드시 자기과시가 들어 있다. 한사람은 선하다, 악하다는 판단 기준이 있다. 사실 선하다, 악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묻는다.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등의 율법 조항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자른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더 들어 볼 필요도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자신이 의로운 자임을 확인하면 된다. 그것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예수님은 그런 그를 응시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다. 그리고 청천병력 같은 말을 한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성경은 이 사람이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났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절망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절대적인 교리가 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 교리는 너무 천박해졌지만, 나는 이 교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교리가 천박해 진 이유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세상이 쓰는 용법으로 독해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믿음이란 그렇게 생각하거나, 확신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성경의 용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이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을 누가 왜곡시켰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예수님처럼 살기 싫은 사람들의 소행이다. 그들은 주로 권력자와 부자들이다. 예수님처럼 살기에는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을 왜곡시킨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예수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다 주고 죽으면 영생하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동의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다.
 
더하거나 빼려고 하지 말라. 만약 그런 의도가 있다면, 더 이상 예수님을 언급하지 말고 살라.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다. 예수님을 왜곡 시키면서 그리스도교에 남아 있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다른 종교로 가든가, 당신의 종교를 창시하라! 반드시 그리스도교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특히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 우리들이 이리요, 노략꾼임을 명심하라! 뭐 먹고 살게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등을 쳐서 먹고 살려고 하는가?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라고, 웃기는 소리 좀 그만 하자. 사순절은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주간이다. 묵상을 하니까, 우울하고 슬프지 않은가? 사순절은 기쁘고 즐거운 주간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내가 따라가는데, 이 어찌 슬픔으로 위장하려고 하는가?
 
최소한 이 절기만이라고 욕심 좀 버리고,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은 절망을 한다. 어떻게 다 팔아 줄 수 있겠느냐고 항변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기 싫으니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열거하며 자신을 피해가려고 한다. 복지가 어떠니, 나눔이 어떠니, 부익부 빈익빈이 어떠니, 이런 말들 사실, 모두 하기 싫어하는 말 아닌가?
 
왜 다 팔아 줄 수 없는가? 챙겨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피붙이도 챙겨야 하고, 노후도 챙겨야 하고, 품위 생활 할 것도 고려해야 하고........ 꼬라지 꼴값 떠느라고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려면 하고, 말라면 떠나라! 그러면 최소한 정상참작은 될 테니 말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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